[빌라왕-국] ① 빌라왕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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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왕, 빌라의 신, 빌라황제, 빌라 대마왕..
무자본 갭투기로 수백, 수천 채의 깡통주택을 모은 뒤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아 세입자들의 눈물을 쏟게 한 임대인들에게 붙은 이름입니다. 지난해 10월 1,139채의 주택을 가진 김 모 씨가 숨지면서 ‘빌라왕’이란 이름이 널리 알려졌습니다. 이후 전세사기범이 등장할 때마다 언론사들은 새로운 수식어를 만들어냈는데, 전세사기범이 대량으로 출몰하면서 이제는 취재기자도 누가 누군지 구분하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그래서 빌라왕이 누구인지, 어떻게 전세사기가 돈이 되는 것인지 헷갈리는 분들을 위해 정리해 봤습니다.
빌라왕, 이미 잡혔다고요? :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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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왕은 한 명이 아닙니다. 뉴스에서 악성 임대인 이름을 시원하게 공개할 수 없다 보니 “빌라왕 구속” “빌라왕 배후 잡았다” 등의 기사를 보고 전세사기 문제가 다 해결된 줄 아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빌라왕’으로 악명을 떨치다 지난해 숨진 김 씨의 경우,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고 금액 기준으로 하면 악성 임대인 블랙리스트 8위 수준에 불과합니다. 빌라왕을 수백 채의 집을 산 뒤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은 악성 임대인으로 정의하자면 이미 전국 각지에 수십 명의 빌라왕이 판치고 있습니다. 돈 없는 노숙인, 사회 초년생을 꼬드겨 명의를 빌리는 경우까지 고려하면 수천, 수만 명의 빌라왕이 있을 수 있겠네요.
빌라왕은 이름과 달리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가 아닙니다. 대개 명의를 빌려주고 깡통주택을 떠안았을 뿐, 건설사-컨설팅업체-공인중개사-명의임대자로 구성된 범죄 생태계의 꼬리에 불과합니다. 빌라왕 뒤에 숨은 배후 조직이 있을 거란 의미에서 ‘바지사장’이란 표현도 쓰이는데, 이 또한 항상 들어맞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숨진 김 씨는, 건당 수수료를 받기 위해 이곳저곳에 자신의 명의를 적극적으로 판매한 일종의 프리랜서 업자에 가까웠습니다. 세입자가 준 전세금을 리베이트라는 이름으로 나눠먹는 범죄의 왕국이 만들어져 있다고 보는 게 보다 정확합니다.
빌라왕, 빌라의 신 같은 표현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에 동의합니다. 이런 수식어는 범죄 생태계의 꼬리에 불과한 몇몇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이미 전세사기 사태가 구조적으로 해결된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사회적으로 이미 통용되는 표현이라 뉴스 수용자의 이해 편의를 돕기 위해 빌라왕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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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누구나 전세사기를 당할 수 있습니다. 최근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어떻게 하면 전세사기를 피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받았는데요, 국토부가 만든 체크리스트를 제시하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 전세사기꾼들이 작정하고 달려들면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계약 전 등기부등본 확인 등이 중요하지만, 집주인이 유명 빌라왕이 아니라면 반환 능력을 알기 어렵고 전세 계약 후 집주인이 바뀌면 대응할 방법이 없습니다. 오히려 체크리스트만 강조하면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일이 되겠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전세를 구할 때는 주변 매매가와 비교해 전세가가 지나치게 높은 경우, 이자 지원 등 혹할 만한 제안을 하는 경우 일단 피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빌라왕은 어떻게 돈을 버는가 : 악의 생태계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빌라. 집주인이 공시지가 1억 6천만 원, 시가 2억 원의 빌라를 팔려고 내놓자 부동산컨설팅 브로커가 집을 금방 팔아주겠다며 접근합니다. 공시지가 최대 150%까지 안심전세대출이 가능한 점을 이용해 매가와 전세가를 2억 4천만 원까지 높여 적은 뒤, 부동산업자들이 보는 앱에 “전세 2.4억, 리베이트 1천만 원”이라고 광고합니다. 세입자를 물어오면 1천만 원을 주겠다는 건데, 그래도 일단 3천만 원이 남습니다.
광고를 본 공인중개사(전세 컨설팅업자)는 부동산 앱과 각종 블로그에 멋진 사진과 함께 “안심전세대출 90% 가능” “전세보증보험 가입 가능” “2년치 이자 지원” 등 혹할 만한 문구를 넣어 세입자를 불러 모읍니다. 신축 빌라 시세를 파악하기 어려운 점을 이용해 원래 시세가 비싸다며, 특별히 대출이자 2년치 500만 원을 지원해 주겠다고 제안하는 거죠. 어차피 받을 리베이트가 1천만 원이니 500만 원은 남는 장사니까요. ‘안심전세대출’ ‘전세보증보험’ 같은 말에 현혹된 세입자는 덜컥 계약을 하고, 나중에야 집주인이 바뀐 사실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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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어떤 사람이 시가 2억 원, 전세 2.4억 원의 ‘깡통전세’ 집을 사들인 걸까요? 바로 빌라왕입니다. 부동산컨설팅 브로커는 다른 업체나 브로커까지 동원해 노숙인, 신용불량자 등 반환 능력이 없는 이들을 바지사장으로 끌어들입니다. 숨진 김 모 씨 같이 검증된 빌라왕은 여러 업체가 활용하기도 합니다. 브로커 입장에선 이런 비용과 세금까지 다 빼도 2천만 원 정도 남는 장사입니다.
숨진 김 씨와 같은 빌라왕들은 어떻게 수익을 남기는 걸까요? 일단 건당 200만 원 수준의 명의임대료가 수중에 들어옵니다. 빌라 시세가 오르는 시기에는 시세 차익도 볼 수 있습니다. 2년 뒤 전세금 5%를 올릴 경우 1,200만 원인데, 빌라 천 채라면 2년마다 120억 원이 생기는 셈입니다.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돈이 없어도 이들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세입자에게 “신용불량자라 돈이 없다. 괜히 전세금 날리지 말고 집을 매입하라”고 압박할 뿐입니다. 법적 절차를 거쳐 경매를 진행하더라도 입찰금액이 낮고, 체납된 세금을 떼면 실제 피해자에게 가는 돈이 적다는 점을 악용한 겁니다.
모두가 협력해 악을 이루는 생태계 속에서 오직 세입자만이 피해를 떠안습니다.
빌라왕들의 족보 : 막을 수 있었다
문제는 최근 문제되고 있는 빌라왕 사태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SBS 전세사기 특별취재팀은 김승남 의원실, 공간AI업체 빅밸류와 함께 2015년부터 이어지는 등기 내역 수만 건을 확인해, 빌라왕들의 등장 시기를 1세대와 2세대로 구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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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반석 기자(jbs@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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