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눈물, 블라인드에 올려 공론화
감찰 결과 폭로 글 대체로 사실 확인
해당 부장, 부하에 “블라인드 글 신고해 지우라” 지시까지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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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4대 시중은행 중 한 곳의 어느 간부 직원이 부하 직원을 상대로한 부당 행위로 최근 감찰을 받았다. 감찰에서 드러난 실태는 ‘갑질’을 넘어 ‘범죄’에 가까운 경우도 많았다. 현금 갈취, 폭행, 협박 등이 벌어졌다는 증언이 나왔다. 은행 측은 해당 간부를 대기발령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A은행은 내부 감찰을 통해 지난 3일 ‘부당한 업무 지시’ 등의 혐의로 모 부서 부장 B씨를 대기발령 조치했다.
B씨의 갑질은 부하직원의 아내인 C씨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에 남편 명의로 접속해 관련 내용을 폭로하면서 알려졌다. 블라인드는 회사 이메일로 본인 인증을 해야만 글과 댓글을 작성할 수 있다.
C씨의 글은 “저희 남편 오늘 술에 완전히 취해서 들어왔네요” “자기네 부장이 발령이 안났다네요. 저희 남편 엄청 기대했었거든요… 며칠만 기다리면 된다고, 이제 이런거 안당해도 된다고… 저희 남편 그동안 정말 힘들어했어요. 저도 남편을 오해해서 아마도 더 힘들었겠죠”라는 말로 시작한다.
C씨는 “어느 날 남편이 부장이랑 스크린골프를 치러갔는데 내기를 해서 잃었다면서 100만원만 달라고 하더라”며 “며칠 지나서 또 실적을 채워야 하는데 (못 채워서) 벌금으로 100만원을 내야 한다고 했다”고 적었다. 이어 “그 뒤로도 남편은 부장 때문에 힘들어서 술 마시고 집에 늦게 들어오는 일이 잦았다”며 “남편은 어느 날은 뺨을 맞고, 또 어떤 날은 입에 담지도 못할 말을 듣고 귀가했다”고 덧붙였다.
B씨는 부하들에게 ‘돌아가면서 김밥을 싸오라’는 지시도 했다고 C씨는 말했다. B씨 자신이 김밥을 좋아하는데, 밖에서 사먹는 게 질린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 지시의 피해자는 남편이었다. C씨는 “얼마 전에 남편이 퇴근하고 와서 ‘정말 정말 미안한데 김밥을 좀 싸달라’고 했다”며 “그래서 ‘갑자기 무슨 소리냐. 점심때 식당 가지 않냐. 김밥을 왜 싸가서 먹냐’고 물었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이같이 말하더라”고 했다.
B씨의 갑질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퇴근 후 업무 시간 외에 ‘블라인드’에 올라오는 특정 글을 신고해 내리도록 지시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C씨는 “남편에게 ‘신고하라’ 했더니 ‘부장이 힘이 있는 사람이라 다 소용없다. 괜히 걸렸다가 자기만 더 보복당한다’고 하더라”며 “이런 일들이 정상적인 회사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냐”고 물으면서 글을 마쳤다.
이 글이 결국 은행 감찰팀을 움직여 남편을 구한 것이다.
[박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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