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의 방주 |
환영의 방주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92쪽 | 1만5000원
잠수함 어디선가 들려오는 총성. 함장의 방이다. 표제작은 함장의 자살로 시작한다. 적국에 핵미사일 발사를 명령했고, 추적을 피하려고 심해에 숨어 지내던 중이었다. 남은 일은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뿐. 자살 배경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부장은 과거를 회상한다. 함장은 핵 공격 이후 잠수함에 추적이 붙자, 적국에 추가 미사일 발사를 명령했다. 부장은 아직 살아있을 민간인을 걱정했다. “군인이기 이전에 인간”이라고 맞서지만, 결국 명령에 복종했다. 그날의 기억이 함장을 괴롭혔으리라. 며칠 뒤 추가 미사일이 발사된 장소에서 함장의 영혼이 나타난다. 이들은 무사히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작품 활동 12년 차에 접어든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각각 다른 얼굴로 현재와 미래에 대해 말하는 단편 7개를 묶었다. 블랙코미디, SF 등 형식에 개성 있고 유머 넘치는 문장이 돋보인다. 작품의 소재 역시 다채롭다. 리얼돌을 들고 다니는 남성을 배에서 만나며 전개되는 이야기(‘히카리’), 2002년 종로에서 아이팟을 산 트랜스젠더의 이야기(‘퍼스트 제너레이션’) 등이다.
작가의 유머를 따라가다 보면, 그 속에서 암울한 우리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단편 ‘들림 받은 자들’은 화자의 독백을 따라 전개된다. 인간에 의해 생명체가 멸종될 것이고, 깨어 있는 이들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내용. 화자가 자신이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황당한 주장이지만, 그저 웃어넘기기만은 어렵다. 그가 ‘작가노트’에 쓴 말을 곱씹어볼 만하다. “가볍게 출발한 것 치고 꽤 결과물이 무거워진 것은 아마도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가볍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이영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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