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명조끼 안 입고 수영 힘든 기상
자진 월북 가능성은 낮다” 판단
“발견사실 알고도 구호조치 안 해
남북관계 우려 국가기관 월북 몰아”
월북과 배치 첩보 삭제 지시 혐의
박지원·서욱·노은채 불구속기소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왼쪽),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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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검사 이희동)는 2020년 9월22일 서해상에서 실종돼 북한군에 피격·소각된 이대준씨의 월북 가능성이 작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씨가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에서 이탈할 때 구명조끼나 개인 방수복을 입지 않은 점 △유속(시속 2.92∼3.51㎞)이 성인 남성의 평균 수영 속도(시속 2㎞)보다 빨랐던 점 △수온이 22도 수준으로 낮아 장시간 수영이 어려웠던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검찰은 사건 발생 초기 다른 국가기관도 동일한 정보를 가지고 자진 월북의 근거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고 전했는데, 이 기관은 국정원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수사를 통해서 규명할 실체는 이씨가 실족했는지, 극단 선택을 했는지 등을 따지는 게 아니라 당시 국가기관이 자진 월북했다는 취지로 발표한 것을 비롯해 국가안보실 등 국가기관의 조치가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는지 따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정부가 국민을 구하지 못했다는 비난이나 남북관계에 미칠 악영향을 피하기 위해 이씨의 월북 가능성을 제기했다고 보고 있다. 피격 이튿날 문재인 전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촉구하는 유엔총회 화상 연설을 앞둔 점도 사건 은폐에 나선 배경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 등이 보안 유지라는 미명하에 진상을 은폐할 필요가 있어 자진 월북으로 몰아갔다”고 했다.
검찰은 사건 관련 첩보를 삭제한 혐의를 받는 박 전 원장과 노은채 전 국정원장 비서실장을 국가정보원법 위반, 공용전자기록등손상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박 전 원장과 노 전 실장은 이씨 피격 이튿날 국정원 직원들에게 피격·소각 등과 관련한 첩보 및 보고서를 삭제하게 함으로써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을 받는다.
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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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당일 오전 1시 청와대에서 열린 1차 긴급관계장관회의 이후 박 전 원장이 노 전 실장에게 직접 ‘통신첩보 일체를 삭제하라’는 지시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오전 9시 국정원에서는 박 전 원장이 불참한 채 노 전 실장 등이 참석한 정무직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삭제 지시가 전달됐고 이후 첩보 보고서 50여건이 삭제됐다는 게 검찰 주장이다. 박 전 원장은 이날 “기소에 대한 부당함이 재판 과정에서 밝혀지길 기대한다”고 반박했다.
서 전 장관에 대해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용전자기록등손상, 허위공문서작성 및 동행사 혐의를 적용해 함께 재판에 넘겼다. 서 전 장관 역시 관계장관회의 직후 국방부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MIMS·밈스)에서 정부의 월북 판단과 배치되는 내용을 삭제하거나 합동참모본부 보고서에 허위 내용을 쓰도록 지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국방부와 예하 부대에서 삭제된 첩보 및 보고서가 5600여건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관계장관회의에서 박 전 원장과 서 전 장관 등에게 첩보 삭제를 지시한 당사자로 지목된 서 전 실장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지난 9일 기소된 상태다. 검찰은 당시 공소장에서 제외한 첩보 삭제 지시 의혹을 비롯한 여죄 등에 대해 보강 수사를 벌일 방침이다.
이종민·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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