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학교 신설” 홍보했는데, 교육부는 “안된다”… 학부모 반발
지난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율현동 자곡사거리 일대엔 이런 내용이 적힌 형형색색 현수막 10여 개가 줄줄이 걸려 있었다. 이곳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조성 중인 597가구 규모의 수서역세권 신혼희망타운(신혼타운) 부지 앞이다. 내년 6월 입주를 앞두고 지난 4월 신혼타운 부지 안에 계획돼 있던 초등학교 신설이 무산되자 입주 예정자들이 모임을 만들어 반발하기 시작했다.
이 단지에서 200m 거리에 율현초등학교가 이미 있는데, 이 학교도 이미 포화 상태라 아이들을 많이 받을 수 없는 상태다. 입주 예정자 가정의 초등학생은 240명 안팎으로 알려졌는데, 최소 70여 명이 여기서 1㎞가량 떨어진 학교로 가게 될 가능성이 높아 입주 예정자들의 불만이 크다. 초등학생 걸음으로 약 20~30분 안팎 걸리는 데다 역세권 개발이 진행 중이라 공사 차량이 수시로 다녀 위험하다는 것이다.
윤진수 신혼타운 입주예정자협의회장은 “LH가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이라고 홍보해서 믿고, 아이 키우는 젊은 층이 많이 들어왔는데, 결과적으로 위험한 등하교를 하게 생겼다”면서 “초등학교가 들어올 거라 믿은 입주 예정자들에게 LH는 이제 와서 교육부 탓을 하고, 교육부는 ‘인구가 줄어 학교 만들기가 어렵다’며 서로 발뺌한다”고 말했다.
이런 ‘통학 갈등’은 비단 이곳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정부와 LH 등은 최근 수년간 수도권 곳곳에 집값을 잡고, 동시에 젊은 층이 안정적으로 집을 구할 수 있도록 ‘미니 신도시’를 잇따라 조성했다. 집값이 치솟는 동안 민간 주도로 조성된 새 아파트 단지도 많다. 하지만 막상 입주가 이뤄질 쯤에 어린이·청소년을 키우는 젊은 부부들이 잇따라 ‘학교 부족’이라는 새로운 문제와 맞닥뜨리면서 곳곳에서 갈등이 생기고 있다.
교육부나 교육청 등에서는 학령인구(6~21세)가 앞으로 계속 줄어든다는 이유로 학교를 새로 만드는 걸 주저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다 보니 집 근처 학교가 없거나, 학교가 있더라도 이미 포화 상태라 어린 학생들이 몇㎞ 떨어진 곳으로 등하교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거기다 이달 초 하굣길에 초등학생이 음주 운전 차량에 치여 숨지는 사고까지 생겨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장거리 통학이 너무 불안하다”는 반응이 많다.
경기 여주시의 경우 교동의 여주역세권 개발지구에 내년 상반기 약 1900가구 아파트 단지 입주가 예정돼 있는데, 이 단지 초등학생들도 단지 바로 앞 학교를 두고 3㎞가량 떨어진 초등학교로 배정받게 돼 학부모들이 반발하고 있다. 경기 용인시 기흥구의 한 초등학교도 인근에 대단지 아파트가 있어 이미 한 학급당 학생 수가 25명이 넘는 과밀 학교라고 한다. 이 주변에서도 집 앞 학교를 두고 멀리 떨어진 학교로 등하교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는 중이다.
인천의 신도시인 송도국제도시, 영종국제도시 등도 최근 10년 새 개발이 이뤄져 새 아파트 단지가 잇따라 들어서며 최근까지 인구가 빠르게 늘었는데 몇 년째 학교 부족 문제로 주민들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영종도의 한 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너무 많아 임시 조립식 교실인 ‘모듈러 교실’까지 두고 있다. 송도에서 중학생 자녀를 키우는 한 학부모는 “집 바로 앞에 중학교가 있는데도 4.5㎞ 떨어진 곳에 배정을 받아 통학 시간만 40분 걸린다”며 올해 초 민원을 냈다고 했다.
교육부도 현실적으로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학령인구가 가파르게 줄면서 한쪽에서는 폐교하는 학교가 잇따라 나오는 상황에서 재정을 투입해 특정 지역에 학교를 여럿 지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주거지 주변에 있는 기존 학교에 학생을 분산하는 게 현재로선 최선이란 입장이다. 하지만 기존 학교 학부모들은 “아이들 숫자가 지나치게 늘어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고 여기에 대해서도 반발한다.
고육지책으로 일부 지자체는 예산을 투입해 통학버스 사업을 시작했다. 경기도의 경우 도의회에서 조례를 만들어 지난 3월부터 9개 시·군의 52개 초등학교에 예산을 들여 통학버스를 지원해주고 있다. 일종의 공공 스쿨버스인 셈이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학교를 더 짓기는 어렵지만 멀리 통학하는 아이들의 안전 등을 위해 도입한 제도”라면서 “반응이 좋아 앞으로 더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오주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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