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터통신은 지난 2일(현지시간) EU가 이르면 5일부터 배럴당 60달러로 러시아산 유가 상한제를 시행한다고 보도했다. 미국 등 주요 7개국(G7)과 호주도 EU와 함께 제도에 동참한다.
이번 제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흘러 들어갈 수 있는 러시아의 원유 수출 수익을 제한하려는 취지에서 이뤄졌다. 상한가를 일정 범위로 제한해 러시아가 유가 상승으로 큰 이익을 보지 못하게 한 것이다. EU가 정한 배럴당 60달러는 러시아산 원유의 최근 가격보다 낮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러시아산 원유의 가격대를 보여주는 ESPO 지수는 지난 2일 기준으로 배럴당 73달러, Solol 지수는 77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가격 상한선이 너무 높아 제재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산 원유가 유가 하락 국면에서 배럴당 60달러 이하로 내려가면 제재 효과가 사실상 없어지기 때문이다. 러시아산 원유 가격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인 우랄 지수는 지난달 말 58달러까지 떨어진 바 있으며, 실제 거래에서는 더 낮은 가격으로 거래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가격 상한선이 소극적으로 잡힌 것에는 러시아산 원유 공급에 과도한 타격을 줘서는 안 된다는 서방의 판단이 반영됐다. 공급 부족 사태를 방지하고 유가 급등을 예방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EU의 논의 과정에선 적잖은 논쟁이 있었다. 폴란드 등 일부 국가들은 제재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가격 상한선을 20~30달러까지 크게 낮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EU는 향후 가격 상한을 2개월 단위로 재검토하고 러시아산 원유가 배럴당 60달러 아래로 내려가면 가격 상한을 이보다 최소 5% 아래로 유지하는 체계를 제시해 합의를 이끈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 “미흡하다”…러 “석유 안 팔 것”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3일 “테러 국가(러시아)의 예산에 꽤 편안한 수준으로 석유 가격을 제한한 것을 두고 심각한 결정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이번 기회를 놓치게 돼 유감”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우리는 이 상한선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하일 울리야노프 오스트리아 주재 러시아 대사는 “올해부터 유럽은 러시아 석유 없이 살게 될 것”이라며 석유 공급을 아예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거론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유가 상한제를 회피하는 운송 체계를 구축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이번 제도에 참여하는 국가들은 향후 상한액을 넘는 가격에 수출되는 러시아 원유에 대해서는 보험과 운송 등 해상 서비스를 금지할 예정인데, 이에 구애받지 않는 별도의 선단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가 올해 100척 이상의 선박을 구했으며, 이들을 자국 원유의 주요 구매자인 인도와 중국, 튀르키예 등에 공급하는 ‘그림자 선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주요 산유국으로 이뤄진 OPEC+는 4일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에 따른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자 산유량을 현 상태로 동결키로 했다. 국제 유가 하락으로 일각에선 원유 생산국들이 추가 감산에 나설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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