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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말글살이] 위협하는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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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성적표와 학교생활기록부 속 알쏭달쏭한 입시 용어의 뜻을 제대로 알아두면 복잡한 대입 지형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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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총을 내려놓는다고 저절로 평화가 오지 않는다. 회초리를 내려놓는다고 인권이 넘치고 행복한 학교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수업 방해, 비아냥과 모욕, 동영상 촬영과 유포가 난무했다. 학생은 선생을 욕하고 놀릴 수 있지만, 선생이 그러면 아동학대다. 학생이 무슨 짓을 해도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교사들은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고 하소연한다(얼마 전 국회 교육위원회에서는 교장에게만 주던 생활지도권을 교사에게도 부여하는 법안을 의결했다).

11월30일 교육부 주최로 ‘학교 교육활동 보호 강화 방안 마련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교육부 시안에는 중대한 교권 침해를 범한 학생은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에 기록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기왕에 학교폭력도 기록하고 있으니, 교원에 대한 학생의 폭력도 기재하는 게 ‘형평성’에 맞다는 논리다. 예방적 차원에서 학생들에게 ‘경각심’을 줄 것이라 기대하는 눈치다.

‘떠든 사람’을 칠판 귀퉁이에 적는 건 ‘조용히 하라’는 일말의 계몽적 역할이라도 했다. 학교 문턱을 넘어가지도 않았다. 생기부에 ‘교사 폭행으로 전학 조치했음’이라고 적는 건 다르다. 교사에게도 ‘한번 당해봐라. 넌 이제 끝이야’라는 응징의 마음을 심어준다. 생기부는 이미 학생 지도보다는 대입 지원을 위한 서류다. 거기에 교권 침해를 기록하는 건 학생을 위협하는 일이자, 고등학교가 대입 준비 말고는 다른 역할을 할 마음이 없다는 걸 선언하는 것이다. 교사의 손에 만사형통의 무기가 주어지겠지만, 학교는 더욱 차갑고 황폐화할 것이다. 위협하는 기록으로 배움의 공동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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