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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상속세 낮춘다고요? 그럼, 소득세 올릴 각오 하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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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올해 세법 개정안에 종합부동산세 다주택 중과 폐지가 검토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일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붙어 있는 부동산 관련 세금 상담 안내문.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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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으로 설정한 오래된 친목 모임이 있다. 처음엔 그냥 수입이 많은 선배가 돌아가며 밥값을 내다가 명문화된 회비 규칙을 정했다. 연봉이 높으면 회비를 많이 낸다. 단, 백수와 학생은 열외다. 몇몇 회원이 집값이 수억원 올랐다고 특별회비를 냈다. 10억원을 상속받은 회원도 특별회비를 냈다. 이참에 비싼 집에 살거나, 많은 돈을 상속받은 사람도 특별회비를 내기로 규칙을 정했다. 그런데 분란이 생기기 시작했다.





소득세 최고 세율 49.5%





“내 집이 20억원이 되었다고 특별회비를 냈는데 좀 억울해. 집값이 올라도 현금은 없어. 난 이제부터 집값 특별회비는 안 낼 거야.”



불행 배틀이 시작됐다.



“난 상속받은 집이 20억원이 안 돼. 20억원짜리 집을 가진 갑이 특별회비를 안 낼 거면 내 특별회비도 돌려줘야지.”



“난 연봉이 1억원이 훌쩍 넘는다고 회비를 많이 내는데… 나는 빚이 10억원 있잖아. 버는 돈으로는 빚만 갚고 끝나. 나도 회비 안 낼 거야.”



“내가 연봉 높다고 회비를 많이 냈지만 기본급은 적어. 열심히 일해서 야근수당과 상여금이 많은 거야. 야근수당과 상여금은 빼줘야 하는 거 아니야?”



“난 애가 셋이잖아. 연봉 7천만원으로는 애 셋 키우기 빠듯해. 기씨는 주식으로 2억원이나 벌었으면서 백수라고 한푼도 회비를 안 냈잖아?”



“원래 우리 모임은 주식으로 번 돈으로 회비 내는 규정은 없었어. 나는 앞으로도 안 낼 거야.”



불행 배틀을 하자면 끝이 없다. 억대 연봉자도, 로또 1등을 맞아도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사연 하나씩은 있게 마련이다. 그럼 어떤 소득에 세금을 내는 것이 좋을까?



근로소득, 사업소득, 자본소득, 상속을 통한 소득 등 여러 가지 소득 종류가 있다. 어떤 소득을 우대해야 할까? 가치관이 모두 다르니 정권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 그래서 생긴 원칙이 ‘조세 중립성’이다. 소득 종류를 차별하지 않고 동일하게 과세하자는 것이다. 특정 소득에만 차별적으로 과세하면, 수요-공급이 왜곡된다. 수요-공급 왜곡은 시장 효율성을 저해해 국민 후생 수준을 감소시킨다. 국가가 시장에 미치는 가장 큰 해악이다. 적어도 윤석열 대통령이 좋아하는 자유시장 경제 이론에서는 그렇다.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 세율은 50%다. 소득세 최고 세율도 지방소득세까지 포함하면 49.5%로 비슷하다. 상속을 통한 소득과 근로를 통한 소득은 차별 없이 조세 중립성 원칙이 작동한다. 나는 과거 상속세율을 높이자는 한 진보정당의 정책을 반대한 적이 있다. 형평성을 추구하는 진보정당은 상속세율 인상을 추구할 만하다. 그러나 조세 중립성 원칙은 더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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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장 왜곡하는 과세 정책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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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상속세율을 30%까지 낮출 것을 주장한다. 왜 상속세 최고 세율을 소득세 최고 세율보다 낮춰 조세 중립성을 위배해야 할까? 국민이 근로소득보다 상속소득을 더 추구하기를 국가가 정책적으로 조장할 필요가 있을까? 이 과정에서 시장의 효율성은 떨어진다.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비 상속세 부담이 높으니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득세수와 상속세수는 역의 상관관계가 있다. 즉, 소득 단계에서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유럽 국가는 상속세수가 낮은 경향이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처럼 소득 단계에서 세금을 덜 부과하는 나라는 상속세수가 높은 것이 자연스럽다. 만약, 상속세 부담을 낮추려면, 반대로 소득세 부담은 높여야 한다.



주식으로 돈을 벌어도 세금을 내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는 조세 중립성을 가장 많이 해친다. 주식으로 수억원을 벌어도 세금을 내지 않기에, 힘들게 노동을 해서 번 돈에는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주식에 세금을 부과하면 주식시장이 나빠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식시장은 미래 가치를 선반영하는 시장이다. 2025년부터 주식 투자 이익에도 세금이 부과된다는 사실은 이미 반영됐다. 주식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다. 주식시장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이는, 이미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해 여야가 합의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반대하는 윤 대통령이다.



종합부동산세(종부세)와 같은 보유세도 조세 중립성 원칙에서 부과해야 한다. 내가 20억원의 돈으로 사업을 할지, 집을 살지 선택할 수 있다. 20억원을 가지고 주거 문제까지 해결해야 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20억원을 사업에 투자해 수익 1억원(상장회사 평균 자기자본이익률 약 5%)을 냈다면 그 돈으로 연 1억원짜리 월셋집에 살 수 있다. 또는 사업에 투자하지 않고 20억원으로 주택을 사고 거주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세금은 어떤 차이가 날까? 사업해서 1억원을 벌면 1500만원 정도는 세금으로 내야 한다. 그러나 20억원 주택을 구매하면 종부세 300만원을 포함해서 내는 보유세는 약 800만원이다. 세금이 거의 절반으로 준다. 여기서 수요-공급의 효율성이 깨지고 자유시장이 왜곡된다. 20억원으로 사업을 해서 그 돈으로 월세를 낼지, 아니면 사업을 하지 않고 주택을 구매할지의 시장에서 자유 선택을 국가 조세 체계가 조세 중립성을 어기고 왜곡하면 안 된다.



윤 대통령은 말끝마다 자유시장을 강조한다. 자유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는 조세 중립성과 세수 중립성 확보다. 상속세 부담을 낮추려면, 중장기적 소득세 부담 인상 계획 안에서 논의해야 한다. 종부세 부담을 낮추려면, 중장기적 보유세 실효세율 목표를 놓고 논의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중장기적 목표는 전혀 없고 기획재정부도 몰랐던 감세 정책을 ‘기재부 패싱’으로 발표한다. 산업통상자원부도 몰랐던 유전개발 계획을 발표한다. 정부 간의 거버넌스도 없고, 중장기적 국가 계획도 없다. 우리나라를 이끄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단편적인 인기몰이 공약으로 점철된 선거캠프로 보인다.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서, 결산서 집행 내역을 매일 업데이트하고 분석하는 타이핑 노동자. ‘경제 뉴스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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