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회원국 지도자 가운데 유독 친러시아 성향을 보이는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가 법치주의 훼손 논란으로 유럽연합과 갈등을 빚고 있다. 11월 24일 슬로바키아 코시체에서 열린 ‘비셰그라드 그룹’ 정상회의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오르반 총리. 코시체/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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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헝가리가 부패를 해소하고 법치주의를 강화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며 이 나라에 대한 지원금 지급 동결을 제안하고 나서, 유럽연합과 헝가리의 갈등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헝가리는 유럽연합의 러시아 제재에 대해서도 잇따라 제동을 걸면서 회원국들과 갈등을 빚어왔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30일(현지시각) 헝가리에 할당된 코로나19 회복 기금 58억유로와 경제개발 기금 75억유로 등 모두 130억유로(약 17조6천억원)의 지원금 집행을 일시 중지할 것을 회원국들에게 제안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보도했다.
요하네스 한 유럽연합 예산 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기자들에게 “헝가리가 불행하게도 (부패 방지를 위한) 개선 조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개선 조처는 지난 9월18일 유럽연합이 헝가리에 대한 75억유로의 경제개발 기금 지급 중단을 제안하면서 요구한 반부패 관련 17가지 조처를 뜻한다. 유럽연합은 부정부패 때문에 헝가리에 대한 지원금이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을 우려가 있다며 기금 집행을 감독할 독립적인 반부패 감독 기관 설치를 요구했다. 또, 공공 기금 집행 과정에서 이해 충돌을 피하기 위한 법률 제정도 조건으로 내세웠다.
집행위원회는 이날 헝가리에 대한 코로나19 회복 기금 58억유로를 승인하면서 법치주의 강화 관련 10개 조처를 추가로 요구했다. 집행위원회가 요구한 조처는 대법원의 독립성 보장, 사법부의 자치 기구인 ‘국가 사법 위원회’의 권한 강화 등이다.
유럽연합 관계자들은 코로나19 회복 기금이 올 연말까지 최종 승인되지 못하면 헝가리가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되기 때문에 지금이 개혁을 압박할 적기로 판단하고 있다. 헝가리는 공공 투자의 80% 이상을 ‘유럽연합 결속기금’ 등에 의존하는 등 유럽연합으로부터 많은 재정 지원을 받는 나라다. 게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경제 위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유럽연합의 지원이 절실하다. 2010년 집권한 이후 지난 4월 4연임에 성공한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유럽연합이 요구한 개혁을 약속하면서도 사법 시스템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강화하고 독립 언론 규제도 늦추지 않고 있다.
핀란드 출신의 페트리 사라바마 유럽의회 의원은 이번 결정이 “유럽의 법치를 보호하기 위한 역사적인 결정”이라며 유럽연합 회원국들에게 집행위원회의 제안을 수용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유럽연합 시민들의 돈을 비리로부터 보호하지 못한다면 사용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금 집행 중단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회원국 3분의 2의 찬성과 찬성 국가들의 인구가 유럽연합 전체 인구의 65%를 넘는 두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친러시아 인사로 꼽히는 오르반 총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응한 유럽연합의 제재 방안에 잇따라 제동을 걸고, 최근엔 우크라이나에 대한 180억유로 지원 계획에도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위협하면서 회원국들의 반발을 사왔다. 코바치 졸탄 헝가리 총리 대변인은 최근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좌파’가 유럽연합 기구들을 인질로 삼고 있다며 “그들이 정치적 압력과 협박을 가하고 이중 기준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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