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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이슈 물가와 GDP

[박용범 특파원의 월스트리트 인사이트] 美 경기 침체 수준, 약한 감기? 독감? 폐렴? “공급망 위기 후 저금리-저물가 시대 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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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감기에 그칠 것인가? 독감, 폐렴 수준까지 증상이 혹독해질 것인가?’

미국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무제한적으로 풀었던 돈을 조여가자 미국 경제 앞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 미국이 어느 정도 수준의 경기 침체를 겪게 될지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정책 수위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의지는 확고하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충분히 제약적인(sufficiently restrictive)’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높이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이선 해리스 뱅크오브아메리카 글로벌연구소장은 “기저 인플레이션이 놀랍도록 빠르게 하락하지 않는 한 연준은 경제를 침체로 밀어 넣을 것이고, 파장은 사람들이 전망하는 것보다 약간 클 것”이라고 말했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역대 최고급으로 높여가고 있지만 노동 시장은 여전히 견조하다. 금리 인상에 따른 여파가 노동 시장에는 아직 잘 전달되지 않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10월부터 다소 누그러지는 모습이 나타났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연준의 판단이다. 이 때문에 연준 내 매파 인사들은 또다시 초강경 대응을 주장하고 나섰다. 연준 피벗(방향 전환)에 대한 기대를 여지없이 잘라 버렸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연방준비은행 총재는 “기준금리를 최소 5.0~5.25%까지는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강연 자료를 통해 ‘충분히 제약적인’ 수준이 되려면 기준금리를 7%까지 올려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여전히 시장에는 일자리가 넘쳐난다. 미국 노동부가 공개한 구인·이직보고서(JOLTS)에 따르면 9월 채용 공고는 1072만 건을 기록했다. 최근 들어 채용 공고가 소폭 감소했지만 여전히 사람을 구하기 힘들다. 실업자 한 명당 채용 공고 비율은 1.9건을 기록하고 있다. 실제 현장에서는 달라진 것이 없다는 목소리다. 뉴욕에서 중견기업을 경영 중인 A 씨는 “해고를 시작한 빅테크 기업은 다른 나라 이야기며 중견기업은 사람을 구하기가 여전히 하늘의 별 따기”라며 “7만~8만달러 연봉을 받던 관리자직에 10만달러를 준다고 해도 지원자가 없다”고 푸념했다.

매일경제

미국은 여전히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대형 유통체인인 타겟의 뉴욕 매장에 시간당 16.75달러에 채용을 한다는 광고가 붙어있다. <사진 박용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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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편에서는 정리해고 계획이 연쇄적으로 발표되고 있다. 메타(1만1000명), 아마존(1만 명), 트위터(3700명) 등 한때 잘나가던 미국 테크 기업들이 11월에 단행한 감원 규모다. 경기 둔화 조짐이 여러 경로로 전달됨에 따라 빅테크 기업들부터 군살 빼기에 나섰다. 11월에 발표된 IT 기업들의 인력 구조조정 규모는 3만4000명에 달한다.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빅테크 기업들의 정리해고는 위기의 서곡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 경험에 비춰볼 때 IT 분야의 인력 구조조정이 경기 침체의 신호탄이라고 볼 수 없다는 해석도 있다. 골드만삭스는 “빅테크 기업은 S&P500 시장 규모의 26%를 차지하지만, 인터넷 출판 및 방송, 웹 검색 포털 기업들의 고용 건수는 전체 고용의 0.3%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이 분야의 고용 동향이 세상의 큰 관심을 받지만, 실제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는 뜻이다. 또한 빅테크 기업들의 고용 규모는 여전히 팬데믹 이전보다 높은 수준이다. 골드만삭스는 “빅테크 기업들의 정리해고는 역사적으로 전반적인 고용 시장 악화의 선행 지표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상황을 떠올리면 맞는 말이다.

이제는 상황이 좀 다르다. 그 당시와 다르게 빅테크 기업들이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이들이 해고에 시동을 걸면, 도미노처럼 산업 전반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물가’ 시대 지속 가능성


노동 시장과 함께 연준의 정책 판단을 좌우할 양대 축은 인플레이션이다. 지난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7.7% 상승했다. 지난 6월 9.1%를 전후해서 8%대 고공행진을 하던 물가가 고점을 통과한 것이 아니냐는 낙관론이 나왔다. CPI에 이어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년 같은 달 대비 8.0% 상승했다. 시장 예상치보다 낮았고, 상승률이 0.4%포인트 하락했다. 지난 3월 11.7%나 상승하며 우려를 야기했던 PPI도 이제 서서히 잡혀가는 추세다. 하지만 파월 의장은 “한두 번의 통계를 보고 인플레이션 추세를 판단하지 않겠다”고 누누이 강조해왔다. 추세적으로 물가상승세가 꺾였다고 판단할 때까지 긴축적 통화정책의 수위를 낮추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다.

CPI 상승률이 둔화됐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우려스러운 면이 있다. CPI에서 약 30% 비중을 차지하는 주거비가 전월 대비 0.8% 올라 전월 상승폭(0.7%)보다 오히려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9% 상승했다. 주거비와 임금은 한 번 오르면 내리지 않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물가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주택 매매 시장은 하반기 들어 완연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렌트 시장은 아직 상승세가 꺾였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주택을 매매하려던 수요까지 렌트 시장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기자가 살고 있는 뉴저지주의 테너플라이의 경우 월세 4000~5000달러 수준의 단독주택은 렌트를 내놓기가 무섭게 소화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전반적인 부동산 시장의 약세장이 렌트 시장까지 안정시키는 데는 6개월~1년이 소요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년까지도 물가가 쉽게 3~4%대로 하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대안정기’라고까지 불리는 ‘저금리, 저물가’ 시대는 끝났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제 미국도 5% 안팎의 금리와 물가상승률이 당분간 지속되는 ‘중금리, 중물가’ 시대에 접어들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하지만 연준은 물가상승률을 2% 안팎으로 관리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중금리, 중물가’가 엔데믹 시대의 ‘뉴노멀’이라면 연준이 방향을 잘못 잡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리틀 워런 버핏’으로 불리는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캐피털 CEO는 “인플레이션이 구조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본다”며 “연준이 인플레이션 수준을 2%로 낮춰서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공급망 붕괴 이후 미국 기업들의 생산 기지를 다시 미국으로 가져오는 것이 물가의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팬데믹 이후 경제는 교과서의 경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전례 없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달라진 상황에서는 보다 열린 사고로 경제현상을 보는 통찰력이 중요해졌다. 파월 의장은 지난해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 것이라고 확신했다가 긴축 대응의 시기를 놓쳤다는 비판을 받았다. 노동 시장과 인플레이션은 새로운 영역에 진입했다. 옛날 잣대로 또다시 ‘뒷북 대응’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지 않을까 우려된다. 전 세계 경제 대통령 역할을 하고 있는 파월 의장이 오판을 할 경우 미국 경제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 커다란 충격을 야기할 수 있다. 이런 뉴노멀 시대에 각 중앙은행들의 역할도 새롭게 정립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박용범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7호 (2022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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