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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3 (일)

“돈 못벌어도 국민사랑 받을것”… 한국 美 키워낸 녹차사업 집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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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한류, K-헤리티지로] 〈5〉 ‘오설록’ 일군 아모레퍼시픽

제주 3.3㎢ 차밭서 年 130t 생산… 화장품 원료 품종개량 44만번 실험

꽃-씨앗 활용한 제품들 인기몰이… ‘설화수’ 브랜드 세계서 러브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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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시에 있는 오설록의 한남차밭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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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방문한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의 오설록 한남차밭. ‘한남다원(茶園)’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제주도에서 가장 큰 차 재배지 중 하나다. 붉은 빛깔의 낮은 공장 건물에서는 차 향기가 흘러나왔다.

아모레퍼시픽그룹 산하 차 브랜드 ‘오설록’은 한남차밭, 서광차밭, 돌송이차밭 등 3곳을 운영하고 있다. 총면적은 3.3㎢(약 100만 평)가 넘는다. 여의도(2.9㎢)보다 큰 규모다. 한남차밭에 자리한 공장, ‘오설록 티팩토리’는 식용 차(茶)와 화장품에 쓰이는 원료용 차 등을 연간 130t 생산한다.

화장품 기업 아모레퍼시픽에 녹차는 하나의 사업부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평가가 많다. 80년 가까이 ‘아름다움’을 추구해 온 그룹 헤리티지가 사업 곳곳에 반영돼 있어서다. 녹차는 특히 주력사업인 화장품 원료로도 활용되면서 그룹 정체성을 더욱 뚜렷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일부 경영학자는 “외연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화장품과 내면의 아름다움과 연결되는 차 사업은 아모레퍼시픽이란 기업의 헤리티지를 상호 보완하고 있다”는 해석도 내놓는다.

● “돈 안 되지만, 이건 문화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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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아모레퍼시픽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오설록 매출액은 462억 원으로, 그룹 전체 2조125억 원의 2.3%에 불과하다. 작년 연간 매출액 기준으로도 같은 비중(전체 3조6740억 원 중 오설록 838억 원)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실적만 보면 오설록은 아모레퍼시픽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진 않다는 얘기다. 서성환 창업주 역시 이를 예견했다. 2015년 출간된 그의 평전 ‘나는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이다’에서 서 창업주는 “이것(차 사업)은 문화사업”이라며 “돈을 못 벌지도 모르지만 성공하면 태평양(아모레의 전신)은 국민에게 사랑받을 것”이라고 했다.

평소 차를 좋아했던 서 창업주는 일제강점기 사라진 한국 고유의 차 문화를 되살리겠다는 의지를 자주 나타냈다고 한다. 그는 1960년대 프랑스 출장 당시 남부 도시 그라스의 초지를 눈으로 본 후 차 사업의 청사진을 그렸다. 1979년부터 제주도의 황무지 개간에 나섰는데, 차 문화가 발달한 일본과 대만이 훌륭한 교재가 됐다.

하지만 개간 과정에서는 주변 농민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았다. 땅 투기를 의심한 국세청의 세무조사 대상이 되기도 했다. 차를 키우는 데 필요한 퇴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인근 주민들의 돼지 사육을 지원해야 했다. 아모레퍼시픽의 한 고위 임원은 “녹차 사업은 한마디로 ‘아름다운 집념’으로 설명된다”고 말했다.

● 녹차를 화장품 원료로 품종 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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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1983년 첫 수확을 시작했다. 이후 ‘설록’을 포함한 자체 녹차 제품들을 선보였다. 1990년대에는 캔 설록차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외환위기 등을 겪으면서도 수익이 나지 않는 차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녹차 잎은 화장품 원료로도 사용됐다. 1989년 녹차를 원료로 한 첫 화장품 ‘미로(美露)’를 선보인 것. 2000년대 들어선 아예 화장품을 위한 신품종을 개발하기로 하고 투자를 시작했다. 10여 년간의 품종 개량 끝에 2015년 ‘장원 1호’를 내놨다. 하지만 첫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대를 거듭할수록 열성 형질이 발현돼 화장품 원료로 쓸 수 없는 품종이 됐다.

오설록은 이에 굴하지 않고 개체 확보 및 선발, 재배, 지역 적응성 실험으로 이어지는 품종 개발을 수없이 반복했다. 재배법에도 여러 번 변화를 줬다. 결국 이니스프리, AP뷰티 화장품의 원료가 되는 장원 2호, 3호를 각각 2017년, 2018년 개발했다. 이 과정에서 진행된 교배법 등에 대한 실험만 44만 회에 달한다. 이민석 오설록연구소장은 “오설록 자체가 아무것도 없던 땅을 일궈 만든 사업”이라며 “신품종 개발에 실패했을 때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했다.

찻잎 외 다른 부분도 화장품 원료로 쓰고 있다. 차나무 꽃의 항산화 성분을 살려 2008년엔 ‘아모레퍼시픽 타임 레스폰스 세럼’을 선보였다. 2010년엔 녹차 씨앗에서 수분 강화 성분을 추출한 에센스 ‘그린티 씨드 히알루론산 세럼’을 내놨다. 이 중 차 씨앗에서 추출한 세럼은 올해 9월까지 약 3300만 개가 팔린 베스트셀러로 거듭났다. 차에 대한 연구는 이제 본업인 화장품 사업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 그룹 창업 전부터 시작된 ‘화장품’의 역사

녹차 사업은 그룹 헤리티지가 낳은 또 하나의 유산이라면 화장품은 철저히 정통성을 계승해야 하는 사업이다. 대표 브랜드 설화수의 정체성은 아모레퍼시픽 창업 이전인 193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 창업자의 어머니 윤독정 여사가 개성에서 동백기름을 직접 만들어 판 게 그 시작이었던 것. 100년이 가까워오는 현재의 설화수는 한국 전통의 미를 담아낸 프리미엄 브랜드로 세계 곳곳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런 브랜드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2021년 11월 서울 종로구 북촌에 ‘설화수의 집’을 열었다. 1930년대 한옥과 1960년대 양옥이 합쳐진 공간은 세월을 거슬러 헤리티지를 이어온 브랜드 정통성을 강조하는 장치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가장 한국적인 미로 세계 시장에서 승부한다는 것이 설화수의 핵심 전략”이라며 “대표 브랜드의 정체성이 곧 그룹 헤리티지인 셈”이라고 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화장품이든, 녹차든 아름다움에 천착하는 그룹 본연의 유산이 아모레퍼시픽만의 브랜드 컬러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귀포=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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