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경찰은 강도 수준으로 봐
지난 9월18일 서울 중구 신당역에 마련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추모 공간에 시민들이 적은 추모 메시지가 붙어 있다. 같은 달 14일 신당역에서 순찰 중이던 여성 역무원을 남성 직장 동료가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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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스토킹 범죄를 강간과 같은 성폭력 범죄 수준의 위협으로 인식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스토킹은 성폭력 범죄에 포함하지 않지만, 여성들은 스토킹에 성범죄와 맞먹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경찰청과 국회 여성·아동인권포럼 공동 주최로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스토킹 처벌법 시행 1년 평가 세미나’에서 이런 내용의 인식 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강소영 건국대 교수(경찰학과)는 지난 9월 온라인 조사 전문기업 데이터스프링코리아에 의뢰해 전국 20살 이상 국민 1039명, 현장 경찰관 1874명을 대상으로 인식 조사를 했다.
조사에서 스토킹을 폭행과 협박, 강도, 강간 등 성폭력, 살인(갈수록 위험도가 높음)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위험한 범죄로 인식하는지를 5점 척도(1점 폭행·5점 살인)로 조사 참가자들에게 물었다. 그 결과를 보면, 일반 국민 가운데 여성 응답자(3.75)는 스토킹을 성폭력 수준(4점)의 위험성을 가진 범죄로 여겼다. 일반 국민 남성(3.21점)과 여성 경찰관(2.95점), 남성 경찰관(2.76)이 강도 수준(3점) 위험으로 인식하는 것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강도 범죄자는 주로 모르는 사람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지만, 성폭력 범죄자는 대부분 아는 사람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른다는 차이가 있다. 이처럼 성폭력이 ‘면식 관계’에서 일어난 범죄가 많아 여성들은 더욱 큰 위협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최근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2017∼2021년 강력범죄(살인, 강도, 강간·강제추행, 방화) 피의자 현황 자료를 보면, 강도 범죄는 피의자와 피해자와 모르는 관계인 비중이 전체의 65%였고, 성폭력 범죄는 면식범 비중이 전체의 60%에 이른다. 성폭력 범죄자 가운데 면식범 비중은 2017년 47.3%에서 2019년 55.4%, 2021년 59.7%로 해마다 늘었다. 경기남부해바라기센터는 2015년 성인 성폭력 피해자가 겪는 전반적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는 가해자가 아는 사람일 때 더 심각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경찰청과 국회 여성·아동인권포럼 공동 주최로 1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스토킹 처벌법 시행 1년 평가 세미나’에서 토론자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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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스토킹 가해자도 대부분 면식범이라는 점이다.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된 지난해 10월21일부터 올해 9월30일까지 검거된 스토킹 범죄 피의자(7982명) 가운데 면식범 비중은 81.4%(6499명)에 이른다.
스토킹 범죄 자체의 심각성에 대한 판단도 성별 등에 따라 달랐다. 스토킹 범죄 심각성을 10점 척도(1점 전혀 심각하지 않다·10점 매우 심각하다)로 조사했더니, 여성 응답자의 심각성 인식이 8.21점으로 남성 응답자(7.38점), 남성 경찰관(7.58점), 여성 경찰관(7.37점)보다 높았다. 온라인 스토킹 범죄도 여성 응답자(8.22점)가 가장 심각하게 인식했다.
응답자들은 스토킹이 발생했을 때 가족·주변인에 대한 피해(77.1%)를 가장 많이 우려했다. 효과적인 스토킹 근절 대책(복수 응답)으로는 스토킹 가해자 치료감호명령 제도 도입(51.7%)과 경찰의 현장 대응력 강화(38.9%)가 주로 꼽혔다. 치료감호는 재범 위험성이 있는 범죄자를 치료감호시설에 수용하는 처분이다.
강소영 교수는 “스토킹 범죄 피해자 주변인과 지인에게도 (긴급응급조치와 잠정조치 등의) 보호조치가 가능하도록 그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긴급응급조치 위반 시 과태료 부과는 범죄 억제 효과에 전혀 실효성이 없으므로 형사처벌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또 “법원의 잠정조치 결정은 스토킹 가해자에 대해 검사가 불기소 처분을 하거나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할 때 그 효력이 상실하게 되어 있는데, 이 경우 피해자 보호에 공백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이런 경우 피해자가 불복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규정 마련이 필요하다”며 “스토킹 범죄 재범자에 대한 가중처벌 규정을 신설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국회는 피해자 보호에 한계를 드러낸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등이 발생하자 법 시행 1년여 만에 스토킹 처벌법 및 피해자 보호법과 관련한 논의를 하고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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