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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트러스의 무능·독선·무공감…감세안 ‘역풍’에 자멸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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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감세안에선 한발 물러나

한겨레

2일 영국 버밍엄에서 열린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리즈 트러스 총리가 입장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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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한 지 한달이 못 돼 ‘어설픈 감세안’으로 커다란 금융위기를 불러온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결국 한발 물러섰다. 집권 보수당 내에서도 큰 반발이 일고 있는 ‘부자 감세’ 부분에 대해선 열흘 만에 철회 뜻을 밝혔다.

쿼지 콰텡 재무장관은 3일 트위터를 통해, 지난달 23일 내놓은 대규모 감세안 가운데 가장 많은 비판이 이어져온 소득 상위 1%에 대한 최고 세율 인하안(연 수입 15만파운드 이상 분에 대해 45%에서 40%로 인하)에 대해 “우리 성장 정책의 다른 중요한 부분을 실행하는 데 집중하기 위해 이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후 별도 성명을 내어 “45% 세율 철폐안이 우리 경제가 직면한 도전에 대응하려는 우리의 중요한 임무에 방해 요소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발표가 나온 뒤 파운드화 가치는 전 거래일보다 다소 올랐다.

영국 경제를 휘청거리게 한 이번 위기는 트러스 총리가 열흘 전 공개한 감세안에서 시작됐다. 그는 8월 보수당 대표 경선에서 300억파운드(약 48조원) 규모의 감세안을 주장했다. 부자의 세금은 깎아주고, 중산층 이하의 복지 혜택은 줄이는 내용이었다. 보수당 내에서도 소비자물가가 두자릿수(7월 10.1% 상승)까지 치솟은 상황에서 감세는 보수주의의 핵심 덕목인 ‘재정적자 감축’에 역행한다는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트러스 총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후 ‘2022년 예산안’이 공개되자 시장과 정부에 폭풍이 몰아쳤다. 감세 규모는 애초 계획보다 50% 많은 450억파운드(약 72조원)로 늘어 있었다. 더 큰 문제는 감세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가 빠져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정부가 엄청난 금액을 국채로 차입해야 함을 의미했다. 이 충격으로 국채 금리가 치솟았다.

파운드화는 폭락하고, 국채 금리는 치솟는데, 트러스 총리는 ‘감세안을 고수할 것’이라는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그는 지난달 29일 <비비시>(BBC) 라디오에 출연해 “전세계적으로 금리는 오르고 있다”며 이 위기를 우크라이나 전쟁 탓으로 돌렸다. 그러자 한 출연자가 “거꾸로 된 로빈 후드”라 부르며 가난한 사람들을 등치고 있다며 분개했다.

그 여파는 보수당에 몰아쳤다. 영국 여론조사 기관인 ‘유고브’는 지난달 29일 여당 보수당의 지지율이 지난달 12일 32%에서 21%로 급락했다고 밝혔다. 최대 야당인 노동당의 지지율은 같은 기간 40%에서 54%로 급등했다. 두 정당의 지지율 격차(33%포인트)는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출범하던 1997년 이후 가장 크게 벌어진 상황이다. 2~5일 버밍엄에서 열리는 보수당 대회에서 트러스 총리의 책임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트러스 총리는 2일 <비비시>(BBC) 회견에선 예산안의 근거를 더 잘 마련해야 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하지만 큰 비난을 받고 있는 최고 소득세율 인하에 대해선 콰텡 장관의 결정이라며 떠넘겼다. 역대 내각에서 주요 각료를 역임한 마이클 고브 의원이 부자 감세안이 “잘못된 가치”라며 강경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결국 ‘고집불통’ 같았던 트러스 총리도 한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매슈 굿윈 켄트대 교수(정치학)는 “트러스처럼 취임 몇주를 엉망으로 만든 영국 총리를 본 적이 없다”고 <뉴욕 타임스>에 말했다. 독일 <빌트>는 “먼저, 존슨이 몰락하고, 다음에는 여왕이 죽고, 이제는 영국 금융 시스템이 흔들리고 있다”고 조롱했다.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파티 게이트’와 그 뒤를 이은 트러스 총리의 무능으로 보수당은 2025년 1월께 열리는 다음 총선에서 참패가 예상된다. 하지만 상황을 반전시킬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트러스 총리를 끌어내리려면 지난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그동안 당과 정부는 더 망가질 수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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