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지배권 위해 계열사 동원…1심에서 징역 10년 법정구속
솜방망이 판결 익숙하다가 내심 놀라…법원 “사익추구” 판단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지난 17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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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구 전 금호그룹 회장, 징역 10년 선고.’
지난 17일 뉴스 속보를 보고 내심 놀랐다. 검찰이 10년을 구형한 재벌 총수 횡령 배임 사건에 1심 재판부가 똑같이 10년을 선고했다. 재벌 사건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선고량은 구형량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해왔다. 법원이 보도 참고자료를 냈다기에 구해서 읽어봤다. 재판부는 쟁점이 된 기소 사안을 대부분 유죄로 판단하면서 양형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피고인들은 금호그룹 계열회사들 또는 금호그룹의 이익 여하와 관계없이 오직 피고인 박삼구와 그 가족의 금호그룹 지배권 회복만을 목적으로 계열회사 자금을 마치 총수 개인의 소유인 것처럼 임의로 사용하고, 계열회사 우량 자산들을 피고인 박삼구가 지배하는 회사의 소유로 옮기고, 계열회사 손해를 바탕으로 피고인 박삼구가 지배하는 회사 채무를 변제하거나 피고인 박삼구에게 이익이 되는 거래를 한 것인바 (…) 피고인은 이 사건 일련의 범행이 금호그룹을 위한 것이었다는 취지로 강변하나, 그 행위의 본질은 일부 계열회사들의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피고인 개인의 금호그룹 지배권을 회복하겠다는 사익 추구에 지나지 않았다.”
계열사 동원해 사익 챙겨
필자가 생각하기에 박 전 회장의 사익 추구에 가장 큰 피해를 본 기업은 아시아나항공이다. 금호그룹은 2006년에 대우건설, 2008년에는 대한통운을 인수하는 등 무리하게 외부 자금을 끌어들여 대형 인수합병을 진행했다가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결국 2010년 그룹 지주회사 격인 금호산업 등은 채권단과 워크아웃 협약을 체결한다. 박삼구 전 회장은 당시 대주주 100 대 1 감자에 따라 금호산업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다. 채권단은 출자전환으로 대주주가 되었다.
2015년 초 채권단이 금호산업 매각에 나서자 박 전 회장은 채권단 보유 지분 46%를 6700억원에 사겠다며 우선매수권을 행사한다. 금호산업 구조조정 때 산업은행이 부여해준 권리였다. 산업은행은 금호그룹 계열사 자금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박 전 회장은 엔에이치(NH)투자증권으로부터 3300억원, 외부투자자로부터 나머지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제출하여 승인받았다.
금호산업 지분 인수에는 정말 금호 계열사 자금이 안 들어갔을까? 박 전 회장은 5000만원을 출자하여 금호기업이라는 페이퍼컴퍼니 수준의 개인회사를 만든다. 엔에이치투자증권은 금호기업에 3300억원을 대여하는 약정을 맺은 뒤 이 대출채권을 자산유동화 회사로 넘긴다. 이 회사는 박 전 회장 쪽이 동원한 투자자문사가 만들었다. 자산유동화 회사는 넘겨받은 대출채권을 기초자산으로 에이비시피(ABCP·자산담보부기업어음)를 만들어 투자자들에게 판매했다. 에이비시피를 인수하여 3300억원을 만들어준 투자자가 바로 금호그룹 계열사들이다.
금호그룹 전략경영실의 지시로 계열사 재무담당자들은 정확한 내용도 모른 채 에이비시피를 매입했다. 이 돈이 엔에이치투자증권으로 흘러들어가 금호기업에 대한 대출자금으로 사용된 것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들은 재판에서 “이런 구조를 알았더라면 금호산업 지분을 박 전 회장에게 넘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사익을 위해 계열사 자금을 빼낸 횡령으로 판단했다. 에이비시피 원리금 상환 여부와 상관없이 계열사 자금을 사익 추구에 임의로 사용한 행위만으로 횡령죄는 성립한다. 재판부는 또한 에이비시피를 금호기업이 실질적으로 변제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고 봤다. 왜 그랬을까?
금호기업은 2016년 4월 아시아나항공의 100% 자회사인 금호터미널을 2700억원에 인수한다. 금호터미널은 부동산과 현금을 많이 보유한 알짜기업이었다.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과 체결한 재무개선약정을 지키기 위해 팔 수 있는 자산들은 다 정리해야 할 상황이었다. 2015년 말 기준 부채비율이 1000%에 육박했고 자본잠식에 빠져 있었다. 유동비율(유동부채에 대한 유동자산의 비율)이 30%가 안 될 정도였다. 박 전 회장은 당시 아시아나항공의 대표였다. 금호터미널을 최대한 높은 가격에 팔아야 할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경쟁입찰을 배제한 채 수의계약으로 본인이 지배하는 금호기업에다 2700억원에 넘겼다. 그리고 금호기업과 금호터미널을 합병한 뒤 금호터미널의 현금으로 금호기업의 차입금을 갚았다.
산은이 2015년 7월 두곳의 회계법인을 통해 현금흐름할인법(DCF)으로 평가한 금호터미널의 가치는 5800억~5900억원이었다. 상속증여세법상 보충적 평가법(자산가치 및 손익가치 가중평균법)으로 산출한 가치도 5700억원이 넘었다. 박 전 회장의 지시를 받은 금호그룹 전략경영실이 회계법인을 통해 평가한 가치(DCF)는 2600억~2700억원이었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 쪽이 거래 가격을 사전에 결정하고 회계사에게 이 금액에 맞춰 평가할 것을 주문한 것으로 봤다. 또 가치가 높게 산출될 수 있는 상증법 평가를 일부러 배제한 것으로 판단했다. 2020년 서울국세청이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하면서 2016년의 금호터미널 거래도 살핀 적이 있다. 서울국세청이 내린 당시의 금호터미널 적정 가격은 5800억원(상증법 평가)이었다. 아시아나항공은 저가 거래를 하여 법인세를 탈루한 혐의로 수백억원의 세금을 두들겨 맞았다.
“계열사와 국가 경제에 손해 끼쳐”
아시아나항공 이사들은 2016년 당시 금호터미널 매각 건에 대해 몰랐다. 이사회 직전에야 통보받았고, 이사회에서는 “공정하게 가치평가를 했느냐”는 수준의 질문만 했다고 한다. 재판부는 금호터미널 가치를 고의로 현저하게 저평가하여 거래한 것으로 보고, 배임죄를 인정하였다.
2016년 아시아나항공은 중국 하이난항공그룹 계열사 게이트고메와 함께 설립한 합작사에 기내식 사업권(30년)을 넘기기로 하였다. 여기에는 이면계약이 있었다. 박 전 회장 개인회사 금호기업이 발행하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 1600억원어치를 게이트고메 쪽이 최장 20년 무이자로 인수해주는 조건이었다. 박 전 회장 쪽은 여러 해외 기내식 사업자에게 금호기업 지원 조건을 내걸고 거래를 제시하였다. 대부분은 아시아나항공에 수천억원 프리미엄을 제공할 수는 있으나 금호기업에 대한 지원은 법적 문제가 생긴다며 거절했다.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사업권 대가로 금호기업은 이면계약을 통해 신주인수권부사채 자금을 챙겨갔다. 재판부는 아시아나항공이 그만큼 기내식 사업권을 저가에 거래해야 했다고 봤다. 1심은 박 전 회장의 지배권 획득은 이처럼 아시아나항공 같은 계열사의 막심한 손실과 국민 경제 전체의 손해에 기반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경제이슈분석 미디어 ‘코리아모니터’ 대표. <기업공시완전정복> <이것이 실전회계다> <하마터면 회계를 모르고 일할 뻔했다> <1일 3분 1회계> <1일 3분 1공시>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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