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18일 공개한 조선의 원구형 휴대용 해시계 일영원구. 문화재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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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학계에도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던 희귀 유물인 조선 후기의 휴대용 해시계 ‘일영원구(日影圓球)’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휴대용 해시계는 이전에도 실물이 존재했지만 어느 지역에서도 시간을 측정할 수 있도록 둥근 공 모양으로 제작된 휴대용 해시계는 이번에 처음 발견됐다. 문화재청은 전통 과학기술의 발전상을 보여주고 명문과 낙관을 통해서 제작자와 제작 시기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과학사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 유물은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환수문화재 특별전에 추가돼 19일부터 함께 전시된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18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일영원구를 처음으로 국내에 공개했다. 문화재청과 재단은 지난해 말 일영원구가 미국의 한 경매에 출품된 사실을 확인하고 문헌 검토 등 조사를 진행한 후, 올해 3월 경매에서 유물을 낙찰받아 국내로 들여왔다. 낙찰가는 6만8,000달러 정도로 알려졌다. 유물이 해외로 반출된 경위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일본에 주둔했던 미군 장교가 소장했다가 그가 사망한 후, 유족으로부터 유물을 입수한 소장가가 경매에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18일 공개한 조선의 원구형 휴대용 해시계 일영원구. 문화재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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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영원구는 기존에 확인된 해시계와 비교하면 구조와 작동 방식이 확연히 다르다. 두 개의 반구가 맞물린 형태로 제작돼 어느 지역에서도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 일영원구는 주로 구리로 만들어졌고 높이는 500mL 생수병 정도다. 이와 달리 조선 시대 해시계의 전형인 ‘앙부일구(仰釜日晷)’는 햇빛을 이용해 영침(뾰족한 막대)의 그림자를 반구에 늘어뜨리는 방식으로 시간을 측정했는데 한 지역에서만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한계가 있었다. 앙부일구는 주로 한양 주변에서 시간을 측정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일영원구를 검토하고 작동 방식을 추정한 이용삼 충북대 천문우주학과 명예교수는 “작동 방식과 제작 기법이 매우 정밀하고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다”면서 “일영원구는 앙부일구와 달리 남반구에서도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일원영구는 기록이 없어서 장인들이 만들던 해시계로 보기는 어렵고, 제작자가 가문의 명예를 걸고 만든 것이라고 본다"고 추정했다.
제작자와 제작 시기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일영원구의 또다른 특징이다. 한쪽 반구에 ‘대조선 개국 499년 경인년 7월 상순에 새로 제작하였다(大朝鮮開國四百九十九年庚寅七月上澣新製)’는 명문과 함께 ’상직현 인(尙稷鉉印)’이 새겨져 있어서 1890년 7월 상직현이라는 인물이 유물을 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고종실록과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상직현은 고종대 활동한 무관으로 주로 총어영 별장과 별군직 등에 임명돼 국왕의 호위와 궁궐, 도성의 방어를 담당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재단 관계자는 “상직현은 수신사로 일본에 갔고 그의 아들 상운은 청나라에 영선사로 파견됐고 또 조선에 전화기를 처음으로 들여온 인물”이라면서 “가문 자체가 과학기술에 관심이 있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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