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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파친코’ 이민진 “내 소설 읽는 세계 독자, 한국인으로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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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온 ‘파친코’ 재미작가 이민진

출판사 옮겨 새 번역·편집 출간

세번째 작품 ‘아메리칸 학원’ 집필중

“한국교육 의미·역할 다뤄보려 해”


한겨레

소설 <파친코>의 작가 이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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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살 대학생 시절, 친구와 함께 어떤 강연을 들으러 간 적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백인 선교사의 강연이었는데, 그분이 강연에서 어느 열세살 재일 한국인 소년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부모가 그 까닭을 알고자 소년의 졸업 앨범을 보았더니, 거기에는 ‘너는 김치 냄새가 나서 싫어, 네 나라로 돌아가라, 죽어 죽어 죽어’라고 써 있더라는 겁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놀랐고 화가 났어요. 그때 들었던 이야기가 제 머릿속에 아주 오랫동안 남아 있다가 <파친코>라는 소설이 되어 나온 것입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드라마 콘텐츠로 만들어져 한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소설 <파친코>의 재미 작가 이민진이 8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한국 기자들과 간담회를 마련했다.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부산 영도에서 시작해 1989년 일본까지, 거의 한 세기에 걸친 재일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2017년에 미국에서 처음 출간되었고 이듬해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으나 지난 4월 판권 계약이 종료되어 절판되었다가 출판사를 옮겨 새로운 번역과 편집으로 다시 나왔다. 지난달 말 1권이 먼저 나온 데 이어 이달 25일 2권이 마저 출간될 예정이다.

“역사는 우리는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소설 <파친코>의 첫 문장이다. 영어 원문은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로, 이전 번역판에서는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로 되어 있었다. <파친코> 새 번역판은 이렇듯 단어나 문장 차원에서부터 책 전체의 구조에 이르기까지 이전 번역본과 적잖은 차이를 보인다. 이민진은 8일 간담회에서 “거의 제 인생 전부를 들여 쓴 소설인 만큼 번역 출간될 때에도 정확하게 소개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번 번역판은 번역과 책의 구성에서 작가인 저의 의도를 최대한 존중해주어서 번역자와 출판사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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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친코>의 작가 이민진.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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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난 시절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이 겪은 일들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파친코>를 썼다”며 “내가 톨스토이를 읽을 때 러시아인이 되고 디킨스를 읽을 때 영국인이 되며 헤밍웨이를 읽을 때 약간 미친 남성 미국인이 되는 것처럼,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모든 독자들을 한국인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제가 2017년 미국에서 이 책을 처음 내고 피츠버그에서 열린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갔는데, 거기 모인 독자 2000명 가운데 99%는 백인이나 흑인이었어요. 아시아계는 거의 없었죠.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원래 제가 좋아한 게 19세기 유럽과 미국의 소설들이었거든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된 사회적 사실주의 소설들 말입니다. 그런데 지난 3~4년 사이에는 그런 행사장에 한국인 독자가 많아졌습니다. 한국인 독자들이 행사 현장에도 오고 제게 편지도 보내는데, ‘마침내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어요, 아빠와 이야기하고 싶어요, 한국인인 게 자랑스러워요’ 하는 말을 들으면 작가로서 의미와 보람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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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동영상서비스 애플티브이플러스가 제작한 <파친코> 포스터. 애플티브이플러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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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에 앞서 그는 2008년 미국 이민자들의 이야기인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을 발표한 바 있고, 지금은 ‘한국인 디아스포라 3부작’의 세번째 작품으로 한국인들의 교육열을 다룬 <아메리칸 학원>(American Hagwon)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저는 세계인들이 ‘파친코’라는 단어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 말을 그대로 쓴 것처럼, 한국어 ‘학원’이 무엇을 뜻하는지 세계인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말을 그대로 영어로 쓸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인들을 이해하자면 이 말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에요.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 나가 사는 한국인들에게 교육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하는 게 이 말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한국인들에게 교육은 사회적 지위나 부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고, 어찌 보면 그 때문에 사람을 억압하기도 합니다. 그런 점이 저에게는 매우 흥미로웠어요. 한국인들에게 교육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아메리칸 학원>에서 다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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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친코>의 작가 이민진.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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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진은 “처음부터 작가가 될 생각은 없었는데, 로스쿨을 마치고 변호사로 일하던 중 건강 문제를 겪으면서 더 늦기 전에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자는 생각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강용흘이나 차학경 같은 앞선 한국계 미국 작가들이 있었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계 미국 여성이 소설을 쓴다는 건 아주 이상하고 낯설게 여겨졌다. 그 뒤로 한국계 미국 작가들 숫자가 많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들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영화와 음악 등 한류의 세계적 붐이 저 같은 한국계 미국 작가들의 활동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한국 정부와 예술가들에게 감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문학사상에서 먼저 냈던 <파친코>(전 2권)는 지난 4월 판권 만료 전까지 30만부 정도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 판권 계약을 맺은 인플루엔셜은 <파친코> 제1권을 15만부 제작했다고 밝혔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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