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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이슈 동아시아 영토·영해 분쟁

펠로시, 中군사시설 있는 남중국해 우회… 필리핀 거쳐 대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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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군용기, 대만해협서 위협 비행

대만은 연안에 전투기 추가 배치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탄 미 공군 수송기가 2일 오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을 이륙하자 전 세계의 눈은 비행기가 어디를 향하는지에 쏠렸다. 한 항공기 위치 정보 사이트에선 30만명 이상이 동시에 펠로시 일행이 탄 비행기 위치정보를 추적하면서 접속 장애까지 발생했다.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방문할 경우 군사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중국이 경고하면서 전 세계는 이번 사건이 미·중 간 군사 충돌로 이어질까 마음 졸였다.

조선일보

2일 대만 기자가 낸시 펠로시 미 하원 의장이 묵을 것으로 알려진 타이베이의 그랜드 하얏트 호텔 앞에서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 펠로시 의장은 이날 말레이시아를 당일 일정으로 방문한 뒤 대만으로 출발했다./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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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순방에 나선 펠로시 의장은 지난 1일 첫 방문지인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이어서 2일 말레이시아를 방문, 이스마일 사브리 야콥 총리와 회담을 가진 후 대만으로 향했다. 말레이시아에서 대만으로 가는 여객기는 통상 남중국해를 가로지르는 최단 노선으로 비행하지만 이날 펠로시 의장과 미 하원의원 4명을 태운 미 공군 비행기는 중국 군사 시설이 있는 남중국해를 우회, 필리핀 동부를 거쳐 저녁 11시43분 대만에 도착했다. 펠로시 의장은 이날 대만 도착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이번 방문은 대만의 역동적 민주주의에 대한 미국의 흔들리지 않는 지지를 표하기 위한 것”이라며 “세계가 전제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2300만 대만 국민과의 연대는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 워싱턴포스트 조시 로긴 칼럼니스트는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정보원에 따르면 안전상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비행기가 대만에 도착하기 직전 중국 관영 매체들이 “중국 인민해방군 SU-35 전투기가 현재 대만해협을 통과하고 있다”고 보도해 한때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다.

펠로시 의장이 말레이시아에서 출발하기 전날부터 대만해협 상황은 급격히 악화됐다. 미국과 대만 언론이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계획을 보도한 1일 밤 중국군 동부전구(戰區)는 탄도미사일 발사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면서 “침범하는 모든 적을 매장(埋葬)하겠다”고 했다. 중국군은 2일 0시부터 남중국해와 보하이해 일부 지역을 선박 통행 금지 구역으로 설정하고 군사 훈련에 돌입했다. 중국군은 3일부터 동중국해에서도 3일 연속 실탄 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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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시 미 하원 의장 아시아 순방 일정


대만해협 중간선 인근에는 중국군 전투기가 나타났다. 중간선은 중국과 대만의 실질적 공중 경계선으로, 군사 전문가들은 중국이 펠로시 의장 대만 방문에 대응해 취할 군사적 조치로 중국군 전투기가 중간선을 지나 대만 영공(대만 해안에서 22㎞)까지 비행하거나 대만 인근으로 미사일을 발사하는 시나리오를 꼽고 있다. 대만 총통부 홈페이지는 이날 오후 5시 15분(현지 시각)부터 20분간 평소보다 접속량의 200배 이상 몰리는 디도스(DDos·분산 서비스 거부) 공격을 받았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해 중국 외교부장은 2일 기자들을 만나 “미국이 대만과 관련한 문제에서 신의를 저버리고 멸시하는 것은 미국의 국가 신용을 더욱 파탄 나게 할 뿐”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그동안 중국 정부에서는 외교부와 국방부 대변인이 나서서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계획을 비난했는데, 왕 부장이 이번 사태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대만 동쪽 해역에선 미군이 엄호에 나섰다. 로이터통신은 해군 관계자를 인용해 미 7함대 소속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함을 비롯한 순양함, 구축함, 강습상륙함 등이 대만 동남부 해역에 배치됐다고 보도했다. 일본 오키나와 가데나 공군기지를 이륙한 미군 전투기와 공중급유기도 남하해 경계 비행을 했다.

대만 언론에 따르면, 펠로시 의장은 3일 오전 8시 차이잉원 총통을 만난 후 오전 9시 대만 입법원에서 입법원장, 여야 지도부와 면담할 예정이다. 차이 총통과 오찬을 한 후 오후에는 1989년 중국 천안문 사태 당시 학생 운동 지도자 등 대만 내 인권운동가를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펠로시 의장이 중국의 위협을 뚫고 대만을 방문하자 친중 단체를 제외한 대만 정치권은 모두 환영했다. 야당인 국민당 천이신 의원은 “펠로시 의장은 미국 의회와 국민을 대표하는 것이지 바이든 정부의 대표가 아닌 만큼 중국은 과도한 반응을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

미·중 관계는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계기로 급격히 악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대만 문제에 대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입장이 과거 지도자들보다 강경하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최고 권력에 오르기 전, 대만해협과 가까운 푸젠성에서 시장, 성장 등으로 17년간 일했다. 리덩후이 당시 대만 총통의 방미와 중국의 미사일 발사로 촉발된 3차 대만해협 위기(1995~1996년) 때도 푸젠에서 근무하며 전쟁에 대비한 경험이 있다. 베이징의 소식통은 “대만해협 위기를 직접 경험했던 시 주석은 대만 문제가 자신의 장기 집권 여부를 결정하는 문제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라며 “3연임을 확정하는 20차 당대회를 앞두고 강경히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베이징=박수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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