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5 (수)

서넝서넝 제주, 밤 버스 타고 놀멍 쉬멍 먹으멍 [ESC]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제주 도심 달리는 야간버스 여행

디제이 사연 소개·신청곡 들려줘

‘풍경맛집’ 포인트 콕 찍은 노선

해안공원서 발라드 공연 감상까지


한겨레

제주 야밤버스의 코스 중 하나인 이호테우 해수욕장의 이호테우 등대. 허윤희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제주의 밤을 달리는 야밤버스 출발합니다.”

지난 16일 저녁 6시30분 제주국제공항. 승객 45명을 태운 야밤버스가 시동을 걸었다. 제주관광협회가 운영하는 야밤버스는 제주 시내와 관광지를 다니는 2층짜리 야간 시티버스다. 매주 금·토요일(11월26일까지) 하루에 한번만 운행한다. 2019년 시작된 야밤버스는 지난해까지 여름에만 운행됐지만 해마다 매진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얻어 올해는 4월부터 운행을 시작했다.

야밤버스의 디제이(DJ) 강체부씨가 버스 운행코스를 설명했다. “지금 해안도로를 따라 이호테우 등대로 가고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도두봉에서 노을을 보고 비행기 착륙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영공원에서는 제주 청년 공연이 이어질 겁니다.”

천장이 없는 2층 좌석에서 제주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하늘멍’, ‘바다멍’을 하기 좋은 자리였다. 이호테우 등대로 향하는 길 오른편에는 푸른 제주 바다가 펼쳐졌다. 위로는 구름 가득한 하늘이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느껴졌다. 한낮의 폭염이 꺾인 저녁 시간대라 버스가 속도를 낼 때마다 서넝서넝(시원한 느낌을 뜻하는 제주말) 바람이 온몸을 감쌌다.
한겨레

제주 야간 관광지를 다니는 ‘야밤버스'. 허윤희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_______

바다와 산, 시내를 한눈에


공항에서 10분 정도 가니 야밤버스의 첫 코스인 이호테우 등대에 도착했다. 높이 12m인 흰색과 빨간색 두 마리의 말 등대가 보인다. 해가 말 등대 머리에서 서서히 바다로 떨어지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일몰 명소이다. 이날은 해가 지기 전이라 일몰 풍경을 볼 수 없었지만 바다와 말 등대, 구름 사이 해의 풍경만으로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10분의 자유시간을 주고 다시 출발한 버스는 라디오 스튜디오로 바뀌었다. 디제이 강씨는 “휴대전화 문자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신청곡도 받습니다. 사연 채택되신 분들에게는 소정의 선물을 드립니다”라고 안내방송을 했다. 버스가 달리는 동안 흥을 돋우는 댄스 음악이 나왔다. 노래가 멈추고 디제이가 접수된 사연을 이야기했다. “할머니 제사를 앞두고 여행 온” 가족들, “제주도민이지만 이층 버스 타보고 싶어 왔다”는 분들의 이야기가 소개됐다. 사연이 소개된 이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다른 이들은 축하의 박수를 쳐주었다.
한겨레

도두봉 정상에서 비행기가 뜨는 모습을 보는 사람들. 허윤희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 코스는 도두봉(67m). 10분 정도 나무계단을 오르면 정상에 닿을 수 있는 낮은 오름이다. 정상에 오르면 배가 드나드는 도두항, 마을 전경, 한라산, 바다가 보인다. 제주공항 활주로도 보여 비행기가 뜨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 ‘풍경 맛집’으로 알려진 도두봉은 조선 시대 위급한 소식을 알리던 도원 봉수대가 있던 곳이다. 동쪽으로는 사라 봉수대, 서쪽으로는 수산 봉수대와 교신을 했던 장소라고 한다. 현재는 도원 봉수대 터를 알리는 표지석만 남아 있다.

한겨레

공원에서 펼쳐지는 밤 공연. 제주관광협회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_______

바다 공원에서 발라드가 흐르고


도두봉에서 출발한 버스는 용담삼동에 있는 어영공원으로 향했다. 어영공원은 용담이호해안도로에 조성된 쉼터이다. 어영이라는 명칭은 공원이 있는 어영마을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어영’은 ‘어염’이라는 제주어가 변한 것이라고 한다. ‘어염’은 이 마을 일대의 바위에서 소금을 얻었다는 것에서 유래한다. 제주 올레길 17코스에 해당하는 이곳에는 해안도로를 따라 산책코스가 조성돼 있다. 제주공항과 가까워 여행 첫날이나 마지막 날에 들르기 좋다. 주변에 용두암, 용연 구름다리 등 가볼 만한 관광지도 있다.

제주 바다가 보이는 어영공원의 작은 무대에서 가수 주낸드의 공연이 열렸다. 제주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들이 야밤버스의 승객들을 위해 마련한 특별 공연이다. 원형 돌로 된 의자에 앉거나 돗자리에 앉은 승객들이 노래를 들었다. 팔을 올려 흔들며 노래에 호응했다.

주낸드의 감미로운 발라드 음악이 흐르고 해가 지고 있었다. 낮도 밤도 아닌 모호한 이내의 시간. 바다는 잔잔해지고 하늘은 푸르스름하다가 붉어지고 점점 검게 변했다.
한겨레

야시장의 인기 먹거리 ‘김치말이 삼겹살’. 허윤희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승객과 공연을 관람한 디제이 강씨는 “야밤버스를 이용하는 이들은 가족이 가장 많아요. 그다음으로 친구나 연인분들이 이용해요. 승객들이 신나는 댄스 음악이 나오면 가장 좋아하세요. 본인의 사연이 채택되면 그 나름의 소소한 재미도 느끼시고요”라고 말했다.

야밤버스는 계절에 따라 코스가 달라진다. 여름(6월3일~8월27일/9월2일~10월1일)과 봄·가을(4월22일~5월28일/10월7일~11월26일) 테마가 있다. 봄·가을에는 용해로, 용두암, 어영해안도로, 도두봉, 수목원야시장 등을 지난다. 이용요금은 일반 1만5000원, 13살 미만 9000원(여름 테마 요금). 제주시티투어 온라인 전용 판매처인 ‘탐나오 온라인 마켓’에서 예약할 수 있다.

한겨레

야시장이 열리는 동문재래시장. 허윤희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_______

‘타요’ 좋아하는 아이 위한 버스 여행


이날 버스에 탄 정은희(32)씨는 전남 광양에서 제주도로 여름휴가를 왔다. 여행 동반자는 남편 이대훈(34)씨와 33개월 아들 민준이. “제주에 도착한 날 아이가 야밤버스가 다니는 걸 보고 ‘저 버스 타고 싶다’고 했어요. 아이가 만화 ‘꼬마버스 타요’를 좋아하거든요. 혹시나 해서 버스 남은 자리가 있나 봤더니 운 좋게 마지막 두 자리가 남아 신청했어요.”

예정에 없던 야밤버스 여행이 휴가의 마지막 일정이다. 남편 이씨는 “앞이 훤히 보이는 2층 맨 앞자리에 앉았는데 아이가 자신이 운전하는 것 같다고 좋아했어요. 차를 가져와 제주도 곳곳을 다녔는데 이층 버스를 타고 다니니 같은 곳도 다른 느낌이었어요. 몰랐던 숨은 명소도 알게 돼 좋았어요. 특히 도두봉은 처음 가본 곳인데 풍경이 아름다웠어요”라고 말했다.
한겨레

산지천의 분수쇼를 보는 관광객들. 제주관광협회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시간50분 정도 진행되는 야밤버스의 마지막 코스는 미식 여행 장소인 동문재래시장이다. 출발지인 제주국제공항으로 버스가 다시 돌아가지만 이곳에서 일정을 마쳐도 된다. 1945년에 형성된 역사 깊은 동문재래시장에서는 야시장이 열린다. 출입구 12개 중에서 8번 출입구로 가면 야시장 입구로 들어갈 수 있다. 야시장 쪽에는 꼬치, 바닷가재구이 등을 파는 50여개의 푸드트럭이 자리 잡고 있다. 김치말이 삼겹살 등 인기 푸드트럭 앞에는 포장해 가는 손님들의 줄이 길게 이어져 있다. 시장에서 맛볼 수 있는 오메기떡, 우도 땅콩 등 제주의 다양한 먹거리뿐 아니라 볼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신나는 음악에 맞춰 펼쳐지는 요리 불쇼는 야시장에서 볼 수 있는 특별 이벤트다. 야시장은 10월31일까지 저녁 7시부터 12시까지 운영한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항상 시민과 함께 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 신청하기‘주식 후원’으로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