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 열린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전체위원회에서 박선영 위원장이 물을 마시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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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진화위가 갈등의 도가니가 아닌, 대한민국 사회의 화해와 통합을 이끌어가는 큰 주춧돌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취임사)
“탄핵이 부결된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은 윤석열입니다. 인사를 투쟁의 목적으로 삼아 법치주의를 말살하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내란 행위입니다”(페이스북)
무엇이 진심일까. 둘 다 ‘내란죄 피의자’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12·3 내란 사태’ 직후 임명된 박선영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이 지난 10일 취임식을 하던 날 밝힌 내용이다. 앞은 오전 열린 취임식에서 공식 발표한 취임사이고, 뒤는 취임식 3시간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페북)에 적은 글이다. 앞이 의례적 수사라면, 뒤는 솔직한 내심처럼 보인다. 지속해서 이어지는 박 위원장의 페이스북 활동 탓이다.
취임식 당일 페이스북 글로 지난 17일 전체위원회에서 야당 추천 위원들로부터 ‘사과 및 사퇴’ 요구를 받았던 박 위원장은, 이후에도 페이스북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모습이다. 23일 그의 페이스북 계정을 보면, 진실화해위 관련한 글을 올리며 내란을 지지하는 댓글에 스스럼없이 ‘좋아요’ 등의 표시를 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사단법인 물망초 이사장이던 취임 직전까지도 야권 인사를 폄훼하고 윤석열 대통령 퇴진 집회를 비방하고,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항의 집회를 조롱하는 듯한 글을 써 논란이 됐다. 본인은 자유롭게 글을 쓰면서도 20일 진실화해위 내부망 게시판에 오른 야당 추천 위원들의 계엄 관련 글에 관해선 “본인 허락을 받지 않았다”며 삭제를 지시하기도 했다.
박 위원장은 17일 자신이 처음으로 주재한 전체위원회가 끝난 뒤에도 두 개의 페이스북 글을 올렸다. 하나는 전체위 분위기와 심의·의결 결과를 전하는 거였고, 또 하나는 송상교 사무처장의 사의 철회에 관해 의견을 묻는 거였다. ‘변덕’이라는 제목이 붙은 송 사무처장 관련 조선일보 기사도 링크로 걸었다. 이날 전체위 개회 직전 박 위원장은 야당 추천 위원들과 송상교 사무처장이 앉은 자리에 일일이 찾아가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등 친화력을 내비쳤지만, 페북에서 보인 태도는 달랐다.
17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전체위원회 개회 직전 박선영 위원장(오른쪽)이 송상교 사무처장의 자리로 가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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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사무처장 관련 게시글에 달린 ‘좌익들의 사기행각이 낱낱이 들어나는(드러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대통령의 인사권도 인정하지 않는 놈이 자기 멋대로 들락거리다니 진화위가 자기 소유물로 생각하나 보군요. 나쁜 놈’, ‘사표 수리하세요. 아니면. 한직으로 추방. 또 배신합니다’ 등 송 사무처장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댓글에 박 위원장은 모두 ‘좋아요’ 표시를 눌렀다. ‘미친 더불어조국망국당 좌파 종북세력들 모두 물러가라!’는 댓글에는 ‘와우’를 눌렀다. 23일 국회 행전안전위원회 출석을 알리는 게시글에 ‘(야당이)현직 대통령님의 정당한 통치행위 중 하나인 계엄선포를 내란으로 둔갑시켜 대한민국을 전복을 시도한다’는 내용의 댓글이 달리자 하트를 눌렀다.
박 위원장은 위원장 취임 뒤에는 예전보다 다소 줄었으나, 매일 1개 이상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다. 생활 이야기도 많지만, 이 역시 정치적으로 연결되기 일쑤다. 가령 21일에는 “오늘은 동지. 밤이 가장 긴 날이다. 7시가 넘은 지금도 사위는 온통 까맣다”면서 “내일부터는 밤이 점점 짧아지고, 낮이 점점 길어질 터. 우리 사회도 어둠을 걷어내며 조금씩 밝아지려나?”라고 썼다. 이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확실한 사람을 국가 요직에 임명하셨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밝고 환하게 웃으시는 사진도 기대합니다!’라는 댓글이 붙자, 박 위원장은 ‘하트’를 눌렀다. 진실화해위에서는 본인을 왜 반대하고 비판하는지에 대해서 귀를 닫고, 페북에서 본인과 정치 성향과 이념이 비슷한 친구들의 응원 글에 ‘좋아요’를 누르며 힘을 얻는 것처럼 느껴진다.
박선영 진실화해위원장이 10일 오전 취임식이 열리기 3시간 전에 작성해 올린 페이스북글. 본인의 임명을 반대하는 이들을 가리켜 ‘내란행위’라고 지칭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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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과 국가공무원법은 공무원에게 정치적 중립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엔 공무원도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이를 표현할 수 있다는 반론이 맞선다. 장관급 공직자가 페이스북 활동을 한다고 무작정 비판할 일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박 위원장이 페이스북에서 보이는 직·간접의 정치적 의사 표시는 과도하게 편향돼 있다. 반대편을 공격하고 심지어 비상계엄과 내란을 지지하는 극우적인 댓글에까지 누른 ‘좋아요’는 국가 폭력의 진실을 밝히는 기관의 수장으로 명백히 부적절하다.
박 위원장은 20일 “다른 국무위원들은 최소한 계엄은 잘못된 것이라고 하는데 박 위원장은 이마저도 입장 표명하기가 어려운지, 계엄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등을 묻는 한겨레의 문자메시지에 “이런 질문 자체가 참 어이가 없다”는 답을 보내왔다. “왜 어이가 없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해달라”고 재차 묻자 더 이상은 답하지 않았다.
17일 취임식에서 박 위원장이 언급한 ‘진실’이라는 말을 떠올려 본다. 그는 ‘진실과 화해’를 강조하며 “진실은 객관적 사실을 발견하고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지금 진실화해위의 가장 뼈아프고 불편한 ‘진실’과 ‘사실’은 무엇일까. ‘내란 피의자’에게 임명을 받은 박 위원장은 모르는 것 같다. 아니 모르는 척하는 것 같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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