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업체 “창고에 물건 쌓여 S급 중고만 매입”
손실보상금 마저 받은 뒤 폐업 고심 사장님도
서울 종로구 황학동에서 40년째 중고 주방설비를 판매하는 신택상씨가 12일 오후 천장과 바닥 통로까지 가득찬 매장을 정리하고 있다. 신씨는 "물건이 팔리지 않아 더이상 쌓을 곳이 없어 조금이라도 공간을 만들어 볼 생각으로 정리 중"이라고 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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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빚을 내야 고민중이었는데 마침 들어온 손실보전금으로 철거비용이랑 남은 월세 돌려막기 했어요.”
경기도 수원에서 레스토랑을 5년 넘게 운영해온 ㄱ(44)씨는 올해 초부터 폐업을 고민했다. 코로나19가 찾아오며 매출이 반토막 밑으로 떨어졌다. 지난 2년 ‘조금만 더 견뎌보자’며 버텼지만, 생활비가 쪼들려 받은 대출만 2천만원이 넘었다. 거리두기가 풀려도 물가가 치솟고 사람들은 지갑을 안 여니 좀처럼 수지가 안 맞았다. 월세 낼 날짜는 계속 돌아왔다. 그는 결국 폐업을 결정했다. 폐업도 마음대로 되는건 아니었다. 가게 내부 철거에도 수백만원이 필요한데 또 대출을 받아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다 지난달 30일 손실보전금(일회성 지급 지원금, 옛 방역지원금) 600만원이 ㄱ씨 계좌에 찍혔다. 기대했던 손실보상금(소상공인지원법에 근거한 피해규모에 비례한 보상금)은 지난해 배달을 시작하며 월 매출이 2019년보다 5만원가량 높아졌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손실보전금으로 폐업은 대출 안 받아도 할 수 있게 됐네요.”
영업제한 조처가 해제되고 손실보전금이 일괄 지급됐지만 폐업을 선택하거나 고민하는 자영업자가 늘고 있다. 거리두기 해제 뒤에도 고물가, 높아진 배달 수수료와 인건비 등으로 좀처럼 매출을 회복하지 못하는 자영업자들에게 손실보전금은 한발 늦게 찾아왔다.
폐업 컨설팅업체인 ‘폐업119’는 이달 들어 폐업 의뢰 건수가 지난달 같은 기간보다 25%가량 증가했다고 했다. 일반 음식점과 숙박업이 가장 많다고 한다. 폐업119 이근표 상무이사는 지난 10일 “손실보전금을 받은 뒤로 폐업 의뢰 건수가 급증했다. 코로나19가 일시적으로 해소된 것처럼 보이지만, 고물가에 여전히 소비가 위축됐다는 근본적인 어려움은 해소되지 않아 많은 소상공인들이 결국 폐업을 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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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폐업을 고민하던 ㄱ씨에게 손실보전금은 ‘폐업지원금’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지난 8일과 10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손실보전금 600만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350만원이 철거비용으로 쓰였다. 나머지는 남은 임대 기간 월세를 정산하는데 보탰다”고 했다. 공실로 가게를 넘기면서 5년 전 입주하며 냈던 권리금 3500만원은 받을 길이 없다. 한푼이라도 건져보려고 냉장고와 싱크대, 작업대, 음료 쇼케이스, 제빙기 등 주방용품을 팔려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철거업체로부터 “폐업이 많아 창고가 꽉 차 있다. 최대 2년 내 구입한 새 제품 아니고서는 매입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중고거래 플랫폼에도 내놨지만 ‘무료 나눔할 생각 없냐’는 쪽지만 쏟아졌다. ㄱ씨가 문의했던 철거업체 박아무개(53) 대표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요즘은 물건 사겠다는 사람은 없고, 얼마나 (가격을) 쳐줄 수 있냐고 하는 폐업희망자 전화만 걸려온다. 코로나19때부터 쌓인 물건들이 창업이 없다 보니 창고에서 빠지지 않고 있다. 에스(S)급 중고가 아니고서는 매입 자체를 안 받고 있다”고 했다.
박 대표 말대로 지난 8일 오후 찾은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용품 거리는 물건을 찾는 손님을 찾기 힘들었다. 폐업한 가게에서 흘러나온 걸로 보이는 주방용품을 운반하는 용달트럭 움직임만 종종 눈에 띄었다. 중고 주방용품점을 운영하는 주아무개(58)씨는 “요즘 손실보전금을 받은 뒤 폐업하는 사람들만 좀 있다. 매입한 집기를 팔려면 창업이 있어야 되는데…. 이러다 황학동이 죽게 생겼다”고 하소연했다. 또다른 업체 김아무개(60) 사장도 “한번 물건 빼러 가는데 인건비가 올라서 15만∼20만원 정도 들지만 잘 팔리지 않다 보니 팔릴만한 상태 좋은 물건 아니면 안 받는다”고 했다.
이달 중 지급되는 소상공인 손실보상금을 기다리며 버티고 있는 자영업자들 시름도 깊다. 경기도 용인에서 10년 넘게 치킨집을 운영하는 이아무개(50)씨는 “한푼이 아쉬운 상황이라 손실보상금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지만, 그거 받는다고 높아진 식용윳값이나 배달비 문제까지 해결되는 건 아니지 않나. 손실보상금까지 입금되면 폐업을 해야할지 남편과 상의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배달 건수는 거리두기 해제 뒤 30%가량 줄었지만, 식용윳값은 10% 이상 치솟았다고 했다. 서울 중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권아무개(41)씨는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데 음식 가격을 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손님이 늘었는데 기쁘지가 않다. 상황은 코로나 때와 마찬가지로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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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1044924.html
서울 종로구 황학동 주방거리가 12일 오후 한산한 모습이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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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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