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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유럽연합과 나토

스웨덴 나토 가입 막은 터키…그 뒤엔 '터키의 푸틴'의 앙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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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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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68) 터키 대통령은 수년간 국제사회에서 이질적 위치를 점해왔다. 스트롱맨(strongman) 지도자로서의 면모도 보이며 지탄도 받았다. 그런 그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사태로 인한 국제 정세 급변 국면에서 캐스팅 보트를 쥔 셈이 됐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에 어깃장을 놓으면서다. 나토는 회원국 전원이 찬성해야 새 회원국을 받기 때문에 터키가 끝까지 반대하면 스웨덴과 핀란드는 나토에 가입할 수 없다. 에르도안은 대체 왜 반대할까.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그의 기고를 지난 30일(현지시간) 실었다. 핵심은 이랬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에 대한 터키의 반대는 지금까지 테러 조직의 표적이 된 모든 국가를 대신한 결정이다. 민간인을 해치려는 모든 조직에 단호하게 맞서는 것은 나토의 핵심 목표 중 하나다. 그런 점에서 (반테러에 동참하지 않는) 어떤 나라도 특권을 누릴 수 없다.”

그는 이어“스웨덴이 터키에 가한 것과 같은 모든 형태의 무기 금수 조치는 나토의 군사 파트너십 정신과 양립할 수 없다. 이는 터키의 안보를 위협하고 나토의 정체성을 훼손한다”고도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언급한 ‘테러 조직’은 터키에서 분리독립을 추구하는 쿠르드노동자당(PKK)이다. 터키를 상대로 유혈 투쟁을 벌이는 PKK의 무장단체 인민수비대(YPG)는 2015년 이슬람국가(IS)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고, 당시 미국 등이 YPG를 적극 지원해 터키의 반발을 샀다. 2019년 터키가 쿠르드족에 군사 작전을 펼치자 유럽연합(EU)은 무기 금수 조치 등 제재에 나섰고, 스웨덴과 핀란드도 이에 동참했다. 쿠르드족 이민자가 많은 스웨덴에선 쿠르드족이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그는 “터키는 후보국들이 모든 테러 조직의 활동을 금지하길 바란다. 또 나토 회원국의 반테러 작전을 지원하길 원한다”며 “터키에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앙카라에는 테러리즘과 싸우기를 꺼리는 어떤 국가에도 무엇을 해야 할지 말할 권한은 없다”며 “나토가 테러와의 싸움에 대해 이중 잣대를 가진다면 우리 동맹의 명성과 신뢰성이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총리 연임 금지되자 대통령제 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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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과 에르도안 대통령.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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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도안 대통령은 총리와 대통령으로 20년째 집권 중이다. 1994년 이스탄불 시장에 당선된 후 2001년 보수정당인 정의개발당(AKP)을 창당, 이듬해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2003년 총리에 취임했다. 집권 초기 유엔의 개발 프로그램을 받아들여 안정적인 경제성과를 이뤘다. 덕분에 2007년, 2011년 총선까지 승리해 11년간 총리를 지냈다. 그러나 권력이 커지면서 부패 스캔들이 잇따랐고 언론과 여성, 소수민족 탄압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터키의 푸틴’이라고도 불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00년 첫 러시아 대통령이 된 후 연임이 가로막히자 총리로 재임하다 대통령으로 돌아온 것과 행보도 비슷하다. 에르도안은 총리 3연임 제한에 걸리자 2010년 개헌을 통해 대통령을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꿨고, 실제 2014년 대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2017년엔 아예 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바꿔 이듬해 재선에 성공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지만, 상황은 부정적이다. 지난 2년간 국제사회의 제재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심각한 경제위기로 지지율도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터키의 연간 물가상승률은 19년 만에 최고치인 36.1%에 달했다. 실제 에르도안은 2018년 대선에서도 3.6%포인트 차로 어렵게 당선된 데다 2019년 지방선거에선 이스탄불 시장을 야당에 내줬다.



국내 부정 여론 환기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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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2월 3일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오른쪽)을 만났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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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됐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중재자로 세계적인 지도자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국내의 부정 여론을 환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터키는 러시아 지대공 미사일을 수입하면서도 우크라이나에 무인공격기를 수출하는 등 등거리 외교를 펼쳤다. 중재자를 자처한 에르도안은 개전 후 양국의 평화협상도 성사시켰다. 협상에 앞서 푸틴과 볼로디미르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잇따라 통화하며 양측 의견을 직접 조율했다고 한다.

스티븐 쿡 미국외교협회(CFR) 중동 전문 선임연구원은 포린폴리시에서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던 에르도안은 전쟁으로 인한 유럽의 위기를 틈타 독자적인 권력을 형성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강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적인 지도자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면서다. 중동 전문가인 루이스 피시맨 뉴욕시립대 부교수도 이스라엘 매체 하레츠에 “만약 중재에 성공한다면 에르도안은 푸틴과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서방 국가와 긴밀한 관계를 회복하고, 국내 경제위기도 해소할 것”이라고 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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