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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윤석열 정부는 확실히 미국을 선택했다. 그래서 편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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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정상회담 평가 좌담회

한겨레

한미정상회담 평가 전문가 좌담이 23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티브이(TV) 스튜디오에서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 이제훈 <한겨레> 선임기자,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전 국방부 기획조정실장).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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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뒤 첫 정상외교 상대는 ‘유일 동맹국’인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었다. 지난 21일 한-미 정상회담은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과 대외 전략 기조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미-중 패권 전략 경쟁 심화와 공급망 변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도, 한국도 전례 없는 외교·안보 환경에 처해 있다.

<한겨레>는 지난 23일 오후 <한겨레 티브이(TV)>와 공동으로 외교·안보 각 분야를 대표하는 전문가들과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분석하고, 향후 한반도 정세를 전망했다.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한동대 교수), 김정섭 전 국방부 기획조정실장(세종연구소 부소장)이 참석했다.




―2박3일 회담 일정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꼽는다면?

김연철 첫번째 일정인 삼성 반도체 공장 방문이다. 우리 국민이 봤을 땐 대한민국의 경제적 위상이 많이 높아졌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미국 내부적으로 외국 자본 유치를 중요하게 홍보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마지막 일정으로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을 만난 것을 보면서, 한-미 관계의 외연과 내용을 좀 더 넓게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정섭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이 “저와 바이든 대통령의 생각이 거의 모든 부분에서 일치한다고 느꼈다”고 발언한 것도 눈에 띈다.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할수록 한-미 간에 입장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고, 그것이 우리 외교의 가장 큰 당면한 도전이고 과제다. 그런데 대통령이 “생각이 일치한다”고 못박았다. 미국에 더 확실히 밀착하는 방향으로 전략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꼽을 만한 결과는?

김준형 ‘외교의 군사화’라고 본다. 경제동맹, 기술동맹 등 ‘동맹’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쓴다. 정부는 굉장한 걸 얻어낸 것처럼 말하는데, 실제론 미국의 전략에 한국이 활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김연철 외교관계는 이익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한·미 양국이 호혜적인 것도 있고, 이익이 조화를 이루거나 차이가 나는 부분도 존재한다. 한반도 정세를 관리하는 데 있어 우리는 당사자로서 긴장이 고조되는 것에 대한 부담이나 피해 등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는 게 한-미 관계의 발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해 5월 문재인-바이든 정상회담과 이번 회담을 비교해보자.

️김준형 선거 때부터 나온 “무너진 동맹을 복구·재건해야 한다”는 주장은 미국도 굉장히 불편해한다. 선거 직후에 당선자 정책대표단이 방미했을 때, 미국 쪽에서 “뭐가 잘못됐길래 자꾸 복구·재건이란 말을 쓰느냐”는 반응이 나왔다. 그 이후로 한-미 동맹 재건·복구란 말 대신 재활성화·강화로 순화했다. 미국에선 지난해 공동성명에 대해 ‘한-미 정상회담 최고의 바이블’이란 말까지 한다.

김연철 지난해 회담에선 북한 문제나 북핵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 협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면, 이번엔 아예 협상을 배제한 것이 큰 차이라고 본다. 정세가 어렵더라도 협상 여지를 살려놓는 것과 협상 자체를 배제하고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면서 확장억제 등 군사적 대응만 구체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김정섭 공동성명에 윤 대통령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구상을 환영한다는 표현이 들어가 있다. 지난해 공동성명에선 양쪽의 접근법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한국의 신남방 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연계성 측면에서 협력을 하겠다고 했다. 대북 정책이든 지역 또는 세계적 차원의 문제든 한-미의 입장 자체가 굉장히 유사해졌다.

―지난해 공동성명에 포함됐던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이번엔 빠졌다.

김연철 바이든 행정부 들어 동아시아 정세와 관련해 대중국 억지를 우선순위에 두다 보니, 북한에 대한 관심이 좀 떨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지난해엔 우리가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입장을 관철해 협상의 여지를 남겨뒀다면, 올해는 한·미 양국이 일치된 견해를 보였다. 남북관계 악화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텐데,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면 미-중 간 군사적 대결의 무대가 남중국해에서 대만해협으로, 그리고 한반도로 옮겨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김정섭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대북정책 기조를 발표하면서,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다르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유사하게 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공동성명에 ‘비핵·번영의 한반도’나 ‘담대한 계획’ 등 경제협력 얘기도 있는데, 관건은 비전이 아니라 이를 구현할 전략이다.

️김준형 지난해 공동성명에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들어간 것은 우리가 치열한 씨름 끝에 얻어낸 성과다. 미국이 원하는 대만과 남중국해의 안정이란 표현을 받아주는 대신 넣은 것이다. 그런데 이걸 뺐다. 미국으로선 한국에 양보할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한반도와 그 주변에서의 연합연습 및 훈련의 범위와 규모를 확대’와 ‘억제력 강화를 위한 새로운 또는 추가적 조치’란 공동성명 문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김정섭 억제는 상대의 심리에 영향을 끼치는 일종의 메시지다. 확장억제의 실효성 얘기를 자꾸 하면, 대북 억제력의 신뢰도를 우리 스스로 허무는 꼴이 될 수 있다.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이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어떤 표적을 겨냥할 것인지 등에 대해선 한-미 간 인식 공유는 필요하다. 위기 발생 시 의사결정 시스템도 점검해야 한다. 우리 의사에 반해 핵무기가 한반도에서 사용돼선 안 되기 때문이다.

김준형 위기 상황인 것 같은 인식을 주는 것도 문제다. 상대방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 한-미가 위기 체제, 전시 대응 체제로 가는 것으로 비치면, 북한은 훨씬 더 강력한 자위적 수단을 강구할 것이다. 이는 다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우리가 안전해지려고 했던 행동 때문에 되레 안보 불안이 커지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전형적인 ‘안보 딜레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공동성명에 러시아가 여러차례 등장한다.

김연철 미국이 러시아를 적대국가로 규정하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기능이 중단됐다.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러시아는 거의 모든 안보리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세계적인 차원에서 현안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모을 수 있는 제도 자체가 사라졌다. 향후 북한이 핵실험이라든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했을 때 국제사회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졌다는 얘기다.

김정섭 윤석열 정부는 ‘글로벌 중추 국가’를 표방하고, 미국과는 ‘포괄적 전략동맹’을 말하고 있다. 당연히 우리에 대한 미국의 기대 수준도 올라갈 거고, 요청도 할 것이다. 앞으로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실제 정책과 연결됐을 때,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지가 관심사다.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한다면, 한-러 관계가 급속히 나빠질 것이다. 역으로 북-러 관계는 빠르게 가까워지지 않겠나? 그럼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데 또 다른 어려움이 초래될 수 있다.

―공동성명에 ‘중국’이 등장하지 않지만, 미국 쪽에선 이번 회담의 모든 의제가 중국을 염두에 둔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게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아이페프)인데.

김준형 미-중 전략 경쟁 속 미국은 중국을 겨냥해 이슈별로 맞춤형 소다자 연합체를 중첩적으로 만드는 이른바 ‘비스포크’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 파이브아이스, 쿼드, 오커스, 그다음이 아이페프다. 규범을 만드는 시작점에 들어가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엔 공감하지만, 아이페프가 나중에 중국 봉쇄 쪽으로 가게 되면 어떻게 할 건가? 잠재적인 시한폭탄 같은 요소들이 있는데, 너무 쉽게 ‘자동문’처럼 열어줬다는 느낌이 있다.

김정섭 공동성명에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프레임워크 수립’이란 문구가 등장하는데, 필요성은 있다고 본다. 다만 한-미 동맹과 우리가 만들려는 인도·태평양 프레임워크의 관계 설정이 중요하다. 단순히 한-미 동맹의 수단, 하나의 하위개념처럼 만들면 우리 외교의 자율성이 굉장히 줄어들 것이다.

―지난해 정상회담에 이어 대만해협에 대한 언급도 포함됐다.

김연철 문구는 지난해와 비슷하지만,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전략적 유연성’ 문제다. 노무현 정부 때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그러니까 ‘붙박이 군’이 아니라 세계와 지역 차원의 유연한 운용에 대해 우리가 양해를 했다. 다만 동북아 지역 분쟁에 연루되는 것은 한-미 간 반드시 협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 합의였다. 그런데 이후 15년 정도 지나면서 양국의 합의가 서서히 약화되고 있다. 앞으로 한-미 군사훈련 또는 한-미-일 3국 군사훈련과 전략자산까지 동원된다면, 이 같은 영역이 더욱 확대되면서 정세 긴장을 유발할 수 있다.

―마무리 발언 부탁한다.

️김연철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화 시대, 국제 분업의 시대가 끝났다. 아이페프도 세계화가 끝난 시점에 새로운 형태의 공급망을 진영화하려는 시도다.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지난 30년여 유지됐던 러시아의 남북한 균형외교 시대도 끝났다. 북핵 문제도 위기가 장기화·구조화돼 남북관계의 공간을 극도로 축소시킬 가능성도 높다. 급변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김정섭 한국이 확실히 미국 쪽에 다가가는 선택을 했음을 분명히 보여준 회담이다. 전체 우리 외교 전략에서 부담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숙제가 주어진 셈이다. 동맹은 배타적인 개념이다. 공동의 위협 인식을 바탕으로 공동 대응을 하기 때문이다. 한-미 관계 심화·확대도 필요하지만, 배타적인 동맹의 성격을 가지고 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김준형 여당 쪽은 문재인 정부에 대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언제까지 유지할 것이냐고 공격해왔다. 윤석열 정부는 선택을 한 것 같다. 선택하면 편해질까? 우리가 미국을 선택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선택이 어려웠던 건데, 선택을 했기 때문에 미래에 선택해도 될 문제가 앞당겨지게 됐다. 이 선택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새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진행: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정리: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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