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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돌봄 절실한데 진료 후순위…의료 취약층 참담한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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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빼앗긴 삶 23965]

사회적 죽음 부른 언어·가난·질병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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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2일 0시 기준 코로나19 누적 사망자


“일주일 동안 밖을 못 나갔어요. 감기 증상 있고, 병원 가고 싶다고 통화로 얘기를 했는데 못 갔어요.”

2월7일 강원도 속초시의 한 지하방에서 숨진 22살 베트남인 ㄱ씨의 지인은 지난 18일 <한겨레>와 한 전화 통화에서 서툰 한국어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ㄱ씨는 코로나19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자가격리 중이었고, 격리 해제를 하루 앞두고 숨졌다. 격리 시작 전 ㄱ씨의 코로나19 검사 결과는 음성. 유족 증언에 따르면, ㄱ씨는 숨쉬기 힘들고 병원에 가고 싶다고 요청했지만, 병원도 못 가 보고 타국에서 죽음을 맞았다. 부검 결과 ㄱ씨의 사인은 폐렴이었다.

코로나19는 한국 사회 보건의료 체계의 약한 고리를 여실히 드러냈다. 팬데믹은 모두에게 장벽이었지만, 장애인·노숙인(홈리스)·이주노동자·기저질환자 등 의료 취약계층은 더 높은 벽에 가로막혔다. 재난 위기 상황일수록 개인적 차이가 구조적 차별과 불평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더욱 섬세한 ‘사회적 돌봄’이 요구되지만, 이들 취약계층은 정부가 입원·모니터링·먹는치료제 처방 우선 순위자로 지정한 고위험군·집중관리군에도 포함되지 못했다. 지난 2년5개월 동안 의료 취약계층이 코로나19로든 다른 질병으로든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정부 관리와 사망자 통계의 사각지대에서 ‘방치된 죽음’이었다.

이주노동자 “말이 안 통해서”…접종·검사 어려움


“말이 통해야 아파도 아프다고 말을 하죠. 코로나 걸렸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베트남 출신 이유진 대구이주민선교센터 팀장은 이주민들이 처한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백신 접종부터 재택치료는 물론 위중증 상황, 지병 치료까지 이주민들은 병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팬데믹 초기였던 2020년 한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가 병원에서 심장 통증을 호소했다. 병원에서는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있어야 진료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다시 심장마비가 와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가던 길에서 사망했다. 섹알마문 이주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정책이나 정보들을 하나도 모른 채 (격리 기간) 일주일을 그냥 갇혀 지낸다고 보면 된다”며 “집에서 격리하라고 했지만, 공장 기숙사 등 분리되는 집이 없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고 말했다.

가장 높은 장벽은 의사소통이었다. 베트남인 ㄱ씨 사망에 대해 속초시 공무원은 “병원에 가고 싶다거나 감기 증상에 대한 얘기보다는 치통이 있다고 해서 치통약을 구입해 드렸다. 이후 발열 체크 등에도 이상이 없던 걸로 알고 있다”며 “전담 공무원도 나 몰라라 하지 않았지만, 언어적 장벽 때문에 소통이 빨리 진행되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유진 팀장은 “소통이 안 돼 통역사를 부르면 병원에서 통역비까지 부과하니 병원을 잘 안 가게 된다”며 “예약을 못 해 예방접종을 못 받고, 아파도 어디에 연락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방치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노숙인 진료 병원 못찾아…홈리스 동상, 발목 절단 위기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건 홈리스도 마찬가지였다. 거리 홈리스나 쪽방촌 주민, 임시 보호시설 이용자 등은 집단감염에 그대로 노출됐다. 2021년 초 서울역 노숙인 시설에서는 100명 이상이 집단으로 감염됐다. 202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코로나19의 노숙인·쪽방 주민에 대한 영향 및 정책 방안 연구’에 따르면 전국 노숙인 복지시설 140개 중 32%는 의심자 격리 공간이 전혀 없었다. 정부 지침상 주거 취약계층인 노숙인 등은 생활치료센터나 임시생활시설 입소 대상이지만, 별도 안내를 받지 못해 방치되는 일이 적지 않다. 안형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지침도 부족했지만, 현장에서는 그나마 있는 지침도 반영이 잘되지 않았다”며 “기본적인 주거 취약성조차 고려되지 않는 현실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집단감염 위험에 상시적으로 노출돼 있었지만, 홈리스들은 병원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었다. 홈리스는 공공병원과 보건소 등 지정병원만 이용할 수 있었는데, 코로나19로 국립중앙의료원(NMC) 등 공공병원이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전국 노숙인 진료시설 289개 중 보건소가 213개로 전체의 73.7%를 차지했는데(2021년 12월 기준), 팬데믹 기간 보건소는 코로나19 이외의 기존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올해 1월에는 동상에 걸린 노숙인 ㄴ씨가 병상이 부족하고 응급실이 없다는 이유로 제때 치료받지 못했다. ㄴ씨는 발목 절단 직전까지 증상이 악화된 후에야 활동가의 도움으로 입원할 수 있었다. 지난 4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1년도 노숙인 실태조사’를 보면 아플 때 ‘병원에 가지 않고 참는다’고 응답한 거리 노숙인의 비율은 2016년 31%에서 지난해 37.5%로 6.5%포인트 늘었다.

하지만 정책 시계는 거꾸로 돌아갔다. 올해 서울시 노숙인 의료지원 예산은 46억7730만원으로 지난해 52억1456만원보다 약 10%(5억4000만원) 줄었다. 줄어든 예산 중 대부분인 4억8474만원은 ‘노숙인 진료비’였다. 안 활동가는 “서울시가 홈리스 관련 사업도 가장 많고, 노숙인 1종 의료급여 수급자의 99%가 서울에 있다”며 “서울시 예산이 감소했다면 다른 지자체 상황은 더 나쁘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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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 중 기저질환자 90% 육박


기저질환자 역시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코로나19 감염 후 7일 이내, 14일 이내 숨진 사망자들 가운데 기저질환자의 비율은 모두 89%가 넘었다. 먹는 코로나19 치료제인 팍스로비드를 처방하면 중증화율과 치명률을 크게 낮출 수 있지만, 상당수 기저질환자는 팍스로비드를 처방받을 수 없었다. 팍스로비드와 병용이 금지된 약물은 고지혈증, 전립선약 등에 쓰이는 아팔루타마이드 등 28개로 상당히 광범위해, 기저질환자에게 처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혁민 연세대 의대 교수(진단검사의학과)는 “임상 연구가 충분하지 않아 현장에서 먹는 치료제 사용이 굉장히 한정적이었다”며 “임상시험 지원을 늘리고, 혈액농도를 측정해 팍스로비드를 더 안전하게 쓸 수 있도록 진단검사 역량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 정책에 우리는 없었다”


의료 취약계층은 방역·의료 정책 수립 과정에서 사실상 배제됐다. 정부는 2020년 3월 코로나19에 감염된 65살 이상 노인과 만성 신장·간·폐·심혈관 질환자, 암환자와 임신부 등을 ‘고위험군’으로 분류해 입원치료를 받게 하면서, 장애인과 노숙인 등을 포함하지 않았다. 또 지난해 11월29일 이후 입원 중심의 기존 코로나19 치료체계를 재택치료로 전환할 때도 장애인과 노숙인 등을 ‘집중관리군’에 포함하지 않았다. 주거불안정으로 생활치료센터 입소 요인에 포함해놓기는 했지만, 현장에서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아 방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올해 2월3일부터는 ‘고위험군’ 위주로 유전자증폭(PCR) 검사 체계가 변경됐지만, 이들 취약계층은 여기서도 제외됐다. 정부가 지정한 고위험군은 만 60살 이상, 역학적 연관자, 의사소견자 등이었다. 시민단체는 장애인, 홈리스 등 취약계층을 기준에 넣어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어떤 혜택을 보자, 덕을 보자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정책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이에요. 생존과 관련된 문제인데, 가령 우리 이주노동자들은 언어 능력이 하나의 장벽이잖아요. 다르게 봐주고 정책을 시행해줘야 한다고 보는데, 그런 게 없는 게 아쉬운 거죠.”(섹알마문 부위원장)

다음에 올 감염병으로부터 ‘사회적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촘촘한 취약계층 보호가 필요하고, 다양성위원회 등 취약계층의 특성에 맞는 질병 대응 방책을 논의할 주체와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2021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의 취약계층 인권보장 실태’ 보고서를 쓴 최혜지 서울여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2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취약계층별로 경험하는 불편함이나 어려움이 다른데, 그런 부분을 취합해 질병 대응책을 만들 수 있는 채널이나 구조화된 시스템이 없는 상황”이라며 “대책을 만드는 과정부터 함께 소통을 해서 취약계층의 문제가 제대로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현은 권지담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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