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 거래 검증인 “투표 강행하는 권도형, 독재자”
과반 찬성 얻으면 통과·거부권 33.4% 넘기면 부결
거부권 행사 5곳… 한국 블록체인 기업 DSRV 동참
홍보했던 가상화폐 투자 업체들 뒤늦은 반성 이어져
[한국금융신문 임지윤 기자]
한국산 가상화폐 ‘루나’(LUNA)와 ‘테라USD’(UTS) 폭락 책임이 있는 테라폼 랩스(Terraform Labs) 권도형 최고경영자(CEO·Chief Executive Officer)가 ‘루나·테라 부활’을 추진하자 테라 블록체인(Blockchain·공공 거래 장부)의 한 검증인이 그를 향해 ‘독재’라고 쏘아붙였다.
한때 ‘루나틱’으로 불리는 투자자들과 트위터로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세계 최대 부자 ‘일론 머스크(Elon Musk)’ 테슬라(Tesla) CEO와 닮았다 해서 ‘한국판 머스크’라는 별명도 붙었던 그가 이제는 ‘독재자’ 칭호까지 얻게 된 것이다.
앞서 암호화폐 전문 매체 ‘코인데스크’(CoinDesk)의 데이비드 모리스(David Morris) 기자는 “권도형 대표는 암호화폐의 엘리자베스 홈스”라며 실리콘밸리 최대 사기극의 주인공과 비교하기도 했다.
19일(현지시간) 가상화폐 전문매체 더 블록(The Block)에 따르면 콘스탄틴 보이코-로마놉스키(Konstantin Boyko-Romanovsky) 올노즈(Allnodes) CEO는 ‘하드 포크’(Hard Fork·새로운 체인 구축) 방식의 새로운 가상화폐 발행을 위한 투표 절차를 강행하는 권 대표에게 “이 제안을 둘러싼 전체 처리 과정이 독재 모델처럼 보인다”고 비판했다.
올노즈는 가상화폐 블록체인 노드(Node·네트워크 참여자) 호스팅(Hosting·서버 기능 대행)과 코인 스테이킹(Staking·예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로, 테라 블록체인 거래를 확인하는 검증인 역할을 맡아왔다.
권 대표는 전날 테라 블록체인(Blockchain·공공 거래 장부) 프로토콜(protocol·컴퓨터 통신 규약) 토론방인 ‘테라 리서치 포럼’에 테라 블록체인 부활을 위해 또 다른 블록체인을 만들자고 제안했었다.
기존에 현금이나 국채 같은 안전자산을 담보로 발행해 투자자를 보호하는 여타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과 달리 자체 발행한 루나로 테라 가치를 증명하는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 코인’ UST가 작동 불능 상태에 빠지자 내린 방책이었다.
결국 테라는 1달러 미만으로 추락했다. 테라폼 랩스가 루나를 대거 사들이기도 했으나 추가 가격 하락을 막지는 못하는 사태까지 불이 번졌다.
권 대표가 제안한 하드 포크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둔 가상화폐에서 새로운 화폐가 갈라져 나오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렇게 될 경우 기존 가상화폐는 ‘테라 클래식’과 ‘토큰 루나 클래식’이 되고, 새로운 가상화폐는 ‘테라’와 ‘토큰 루나’가 된다. 권 대표는 이 같은 방식으로 10억개의 새로운 루나를 발행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더블록은 사전 투표 진행 상황을 인용하면서 “권 대표의 하드 포크 제안에 커뮤니티가 단호히 반대하는 것 같다”며 “대부분의 반응은 아무도 포크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찬반 투표는 테라 블록체인 포크 여부를 공식적으로 결정하는 거버넌스(Governance·공공 경영) 투표와는 관련 없지만, 테라 커뮤니티가 어느 쪽을 향해 무게를 두고 있는지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개미들 중심의 사전 투표와 달리 루나 보유량에 따라 의결권이 결정되는 구조인 ‘검증인 대상 투표’에서는 현재 찬성 비율이 79%로 반대 흐름이다.
보이코-로마놉스키는 “설립자(권도형)가 커뮤니티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자기 생각만 밀어붙이고 있다”며 “이번 투표는 ‘탈 중앙화’라는 가상화폐의 기본 철학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테라 커뮤니티에서 권 대표를 향한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 투표의 거부권 행사 비중에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투표는 ▲찬성 ▲반대 ▲기권 ▲거부권을 포함한 반대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찬성이 과반수를 넘을 경우 권 대표 제안이 통과돼 루나 부활이 이뤄지지만, 거부권 비중이 33.4%를 넘기면 부결된다.
현재 거부권 비율은 16%로, 총 5곳의 검증인이 행사했다. 테라 재건에 관한 투표에서 1.49% 의결권을 보유한 올노즈 역시 그중 한 곳이다. 올노즈는 “권 대표 제안이 테라 커뮤니티가 원하는 것과 관계없이 추진되고 있다”며 이번 투표에서 거부권을 던졌다.
거부권 행사 기업 가운데는 한국 블록체인 기업 ‘DSRV’(대표 김지윤)도 있다. 김지윤 DSRV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기존 블록체인을 지키는 것이 피해자에 대한 가장 정상적인 보상과 미래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아직 투표하지 않은 ‘고래’(루나 보유량이 많은 큰손) 검증인은 △오리온머니(의결권 8.65%) △스마트스테이크(3.88%) △해시드(3.52%) 등이 있다. 그 가운데 한국 블록체인 벤처캐피털 해시드(대표 김서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도 관심이 쏠린다.
가상화폐 전문매체 ‘코인데스크’(CoinDesk)는 “해시드가 지난해 테라폼 랩스 투자금 조달에 일조했다”며 “지난 2019년에는 테라에 관해 ‘기계적 디자인 정교함과 실행 속도에 감명받았다’는 입장을 밝힌 적도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해시드는 루나와 테라 폭락 여파로 35억달러(약 4조4000억원) 손실을 본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두 코인 홍보에 열중했던 가상화폐 투자 업체들의 뒤늦은 반성도 이어지고 있다.
블록체인 리서치 투자 업체 ‘델파이 디지털’(Delphi Digital)은 블로그를 통해 “우리는 루나 가치가 더 빠르게 하락하자 그와 연동된 테라 가치도 떨어지는) ‘죽음의 소용돌이’ 현상에 따른 위험을 잘못 계산했다”고 실책을 받아들였다. 이어 “지난주 우리는 두 코인의 폭락 사태로 비판을 받았다”며 “그 비판은 공정하다”고 수용 입장을 밝혔다.
앞서 루나를 본인의 팔에 세기면서 홍보에 앞장섰던 가상화폐 자산운용사 갤럭시 디지털(Galaxy Digital)의 마이크 노보그래츠(Mike Novogratz) CEO도 주주 서한에서 “루나와 테라에서만 400억달러(약 50조원) 시장가치가 사라졌다”며 “그것은 실패한 큰 아이디어였다”고 말했다. 이어 “테라 붕괴를 막기 위한 준비금이 충분치 않았다”며 “항상 상황은 뒤늦은 깨달음과 함께 더욱 명확해진다”고 덧붙였다.
어지러운 상황 속 현재 루나·테라 창시자 권도형 대표는 줄 이은 고소장을 마주하고 있다. 지난 19일 투자자들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LKB앤파트너스는 서울남부지검에 권 대표와 테라폼 랩스 공동 창업자이자 소셜커머스 ‘티몬(TMON) 설립자인 신현성 씨, 테라폼랩스 법인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사기와 유사수신행위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소·고발했다.
LKB는 자본시장법과 지적재산권 담당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사건을 진행 중이다. 법적 대응에 동참할 투자자도 모집하고 있다. 미국이나 이탈리아 등 해외 투자자까지 문의가 이어질 전망이다. 검찰도 해당 사건과 관련해 사기 혐의 적용이 가능한 대목에 집중해 수사를 검토하고 있다. ’5억원 이상 사기‘에 해당하기 때문에 곧바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할 가능성이 높다. 세무당국도 예외적으로 재조사를 벌여 권 대표 등을 탈세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다는 얘기까지 거론된다.
현재 루나와 테라가 일주일 사이 총액 약 450억달러(57조7800억원) 가량 증발하는 등 최근 가격이 급락함에 따라 손실을 본 국내 투자자는 2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임지윤 기자 dlawldbs20@fntimes.com
데일리 금융경제뉴스 FNTIMES - 저작권법에 의거 상업적 목적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 금지
Copyright ⓒ 한국금융신문 & FNTIMES.com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