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에 설치된 태블릿PC에 가상화폐 '루나'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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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 수요가 늘어나면서 해외 거래소에서 매입한 물량이 대거 국내 거래소로 유입됐다. 국내 가격이 해외보다 높은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이 상당 기간 유지되면서 차익거래를 위한 반입 물량이 폭발한 것이다.
금융당국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 등 5대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유통되는 루나 물량은 지난해 말 383만개에서 13일 2억개, 15일 700억개로 급격히 늘어났다. 루나 사태가 터지고 나서 1만8000배가량 유통량이 늘어난 것이다.
5대 거래소에서 루나를 보유한 사람도 지난해 말 9만명에서 13일 17만명, 15일 28만명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루나 사태 이후 3배 이상 루나 보유자가 늘었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루나 가격이 4월 말까지는 안정적으로 유지됐기 때문에 유통 물량도 연말과 엇비슷했을 것”이라며 “루나 가격이 내려가기 시작하는 5월 5일 이후 유통 물량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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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미국 달러화와 가치가 연동된 또 다른 가상화폐 테라와 가치가 연동돼 왔다. 테라는 미국 달러화와 같은 가치를 가지도록 발행 및 유통량이 관리되는 스테이블코인이다. 그런데 달러화 가치 연동을 위해 일종의 ‘위성 코인’인 루나를 이용한다.
테라와 루나를 발행한 테라폼랩스는 테라와 동일한 가치를 갖는 루나 유통량과 가격을 적극적으로 관리해왔다. 가령 루나를 연 20% 수익률 조건으로 자사에 예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일종의 ‘지급준비금’을 루나를 통해 확보한다는 것이다. 예치자에 지급해야할 이자는 테라를 발행해 발생하는 주조차익(시뇨리지)를 통해 확보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러한 구조는 지난 5월 5일 이후 루나 가격이 폭락하고, 테라폼랩스가 가격 유지에 쓸 ‘실탄’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무너진다.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에서 루나 가격은 5일 22만4000사토시(1사토시는 비트코인 1억분의 1을 의미)에서 12일 1~2사토시로 급락했다. 원화로 환산하면 10만원 안팎에서 40전(0.4월)으로 추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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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이 급락하는 국면에서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들은 대거 루나를 매입했다. 가격 변동이 극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초단타 매매를 통해 차익을 거둘 수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잡(雜) 코인’에 특정한 재료가 발생했을 때 투자자들이 모이는 방식이다. 한국 가상화폐 시장은 비트코인, 이더리움 거래 비중은 낮고 대신 알트(alt·대안 내지는 대체)코인 비중이 높고 가격변동성도 심하다.
투기 수요가 늘자 국내 거래소 내 가격이 해외 거래소 가격을 웃도는 상황이 발생했다. 13일 오전 8시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에서 루나 가격은 0.00028달러였는데, 같은 시각 업비트 내 가격은 0.002달러였다. 업비트 내 가격이 바이낸스 내 가격보다 7.1배 높은 셈이다. 바이낸스에서 루나를 매입한 뒤, 이를 그대로 업비트로 반입하면 차익을 거둘 수 있다.
이 때문에 바이낸스 등에서 루나를 매입해 반입하는 사람들이 증가했다. 상당수 국내 가상화폐 투자자들은 일찍부터 바이낸스를 이용해왔다. 한국에서 알트코인 리플이 유독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바이낸스 등에 가상화폐를 보낼 때 발생하는 수수료가 낮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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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시행된 트래블룰(100만원 이상의 코인을 타 거래소로 옮길 경우 송수신자의 이름과 지갑 주소,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하고 보관하는 제도) 탓에 바이낸스에서 업비트로 한꺼번에 많은 양의 코인을 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소액 투자자들이 루나 국내 유통량 증가를 이끌었다는 얘기다. 국내 루나 유통량을 원화로 환산하면 28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계속 루나가 유입된 것은 김치 프리미엄이 유지됐기 때문이다. 통상 금융시장에서는 A 나라와 B 나라 간 특정 금융자산 가격 격차가 발생하면, 차익거래 수요가 몰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빠르게 가격 격차가 해소된다. 한 국내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루나에 대한 매매 수요가 그만큼 급격히 늘어났다는 걸 방증한다”고 설명했다.
루나에 대한 투기 거래가 계속된 데 거래소 책임도 있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자산 가치 유지를 위한 알고리즘이 무너져 휴지조각이 되고 있는 루나에 대해 투자자들에게 경고하거나 매매를 제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내 1, 2위 거래소 업비트, 빗썸은 루나 거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수수료로 최소 80억원을 번 것으로 추정된다.
조귀동 기자(ca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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