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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사설] 차별금지법 단식 속에 맞은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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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14일 오후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2022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기념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무지개 한반도 깃발을 들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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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아이다호데이·IDAHOBIT)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1990년 5월17일 동성애를 정신장애 목록에서 공식적으로 삭제한 것을 기념해 제정한 날로, 국제적으로 동성애 혐오, 트랜스젠더 혐오, 양성애 혐오에 반대하는 캠페인이 벌어진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의 결정 이후 32년이 지난 오늘도 우리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낙인, 폭력을 예사로운 것인 양 일상에서 목격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날 송두환 위원장 명의로 성명을 내어 “우리는 지난 몇년간 변희수 하사, 김기홍 활동가 등 성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헌신한 분들의 죽음을 목격했다”며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더 이상 용납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성명서에 실린 조사 결과를 보면,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혐오를 경험한 경우가 90%에 이르고, 특히 성소수자 청년의 절반가량이 최근 1년간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한다. 오로지 타고난 정체성 때문에 삶 자체가 위협받는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가장 큰 책임은 정부와 국회, 법원 등의 인식에 있다. 변희수 하사 강제전역에서 보듯, 정부는 오히려 성소수자 차별에 앞장서곤 했다. 군이 사적 공간에서 합의에 의해 이뤄진 동성 군인 간의 성관계를 들춰내 기소한 사건에 대해 대법원이 원심의 유죄 판단을 파기환송하는 전향적인 결정을 내린 게 그나마 지난달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동성애를 정신장애라고 주장하는 김성회씨를 초대 종교다문화비서관에 임명하고, 제풀에 물러날 때까지 지켜보기만 했다. 이래놓고 성소수자가 동등하게 존중받고 권리를 누리기를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모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씨앗이다. 차별금지법(평등법)이 15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는 데는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 금지를 보수 기독교계 일부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이 결정적이다. 성적 지향은 성별, 장애, 인종 등 법안의 20여 항목 가운데 하나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안 공청회 계획서를 채택한 뒤 다시 손을 놓은 모습이다.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에도 미류·이종걸 두 인권활동가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며 국회 앞 ‘평등텐트촌’에서 37일째 단식농성을 이어갔다. 국회는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언제까지 외면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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