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07 (월)

이슈 물가와 GDP

레이건 때로 돌아간 美 물가...'볼커 모멘트' 올까 숨죽인 시장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볼커는 위대한 관료였다.”

지난달 의회에 출석한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폴 볼커 (전 Fed 의장)처럼 불황을 일으키며 기준금리를 올릴 수도 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어 그는 “역사가 나에 대해 그런 식으로 기록했으면 한다”며 물가와의 전쟁 의지를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중앙일보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잇따라 볼커 소환하는 Fed 인사



볼커는 1979년 Fed 의장에 취임한 뒤 당시 연 10% 수준이던 기준금리를 6개월 만에 20%까지 끌어올리는 등 강력한 통화 긴축을 강행했다.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시중의 돈줄이 마르고 기업이 무너지고 실업자가 늘면서, Fed 건물로 시위대가 몰려와 군대를 배치해야 할 정도였다. 당시 미국 실업률은 11%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볼커는 단호했다. 이후 약 3년간 이어진 악전고투 끝에 물가를 잡았다. 1980년 3월 14.8%에 달했던 CPI 상승률은 1983년 7월 2.5%까지 떨어졌다. '볼커=인플레 파이터'라는 공식이 자리 잡은 이유다.

40년의 시간을 거슬러 볼커가 무대 위로 소환되고 있다. 미국의 물가 상승세가 레이건 시대로 돌아가면서다. 3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전년동기대비) 상승률이 8.5%를 기록했다. 1981년 12월(8.9%) 이후 40여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물가 수준으로만 보면 볼커가 Fed 의장이었던 1980년 초반 수준에 근접했다.

중앙일보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물가와의 일전을 위해 공격적 긴축 태세를 준비하는 Fed에 볼커가 나침반이 될 모양새다. 라엘 브레이너드 Fed 부의장 후보자도 “40년 전 볼커는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인 경제 성장, 나아가 고용을 해치는 가장 큰 위협이라고 경고했다. 이를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 악화를 우려해 기준금리 인상을 주저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시장을 향한 Fed의 선전포고와 예방주사 접종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에서 올해 기준금리를 1회 이상 '빅스텝(0.5%포인트)' 인상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지난 7일 "인플레가 1970~80년대에 견줄 만큼 이례적으로 높다"며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3.5%로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기준금리(연 0.25~0.5%)를 감안하면 남은 6번의 FOMC에서 기준금리를 모두 0.5%포인트씩 올려야 가능한 수치다.

중앙일보

현재 미국 기준금리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채권 시장은 피바다..."볼커의 길 선택했다"



'볼커 모멘트'가 돌아올까 봐 채권과 주식 시장은 숨죽이고 있다. 채권 시장은 두 번의 '빅스텝'을 기정사실로 하고 있다. 미 10년물 국채금리는 12일(현지시간) 장 중 연 2.78%를 돌파하며 3%에 바짝 다가섰다. NH투자증권 분석에 따르면 이미 1분기 미국 국채 수익률은 '채권 대학살'로 명명된 볼커 시대(-5.45%)보다 낮은 역대 최악(-5.57%)을 기록했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채권 시장이 피바다가 된 건 지난달 FOMC에서 파월이 경기를 꺾어서라도 물가를 잡겠다는 의지를 드러냈기 때문”이라며 “채권 시장은 파월이 결국 볼커의 길을 선택했다고 보고 있다"는 해석을 내놨다.

경기 침체와 긴축 우려에 주식 시장도 움츠러들고 있다. 이달 들어 나스닥은 1만4000선이 깨지며 연초대비 15.5% 하락했다. S&P 500도 연초보다 8.3% 떨어지며 4300선까지 내려왔다.

중앙일보

폴 볼커시대의 미국 기준금리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Fed 경기침체 정말 감내할까? 여전한 의구심



파월이 볼커의 후계자를 자처하지만, ‘경기 침체’에 대한 인내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인다. 프랑스 은행 나티시스의 조지프 라보냐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경기 침체를 배제한 채 물가를 낮추지 못할 것"이라며 "Fed가 지금은 강하게 말하지만 몇 번의 금리 인상 이후 갑자기 고용 상황이 약화하면 계속 매파적으로 말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볼커와 파월의 상황이 다른 만큼 '볼커 모멘트'가 도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14일 볼커와 파월 시기의 차이점을 분석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임금이 빠르게 오르면서 임금-물가 상승의 악순환이 벌어지고, 유가 상승에 따른 물가 오름세는 공통점으로 지적됐다.

다만 볼커 당시의 물가 상승세가 10년간 장기간 이어졌다면 현재 미국의 물가 급등은 1년 남짓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한 양적완화 등으로 급증한 미국 정부의 부채도 금리 인상의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Fed는 첫 번째 금리 인상 시기의 가장 강력한 매파 발언을 내놓는 경향이 있다"며 “볼커 때처럼 강력한 매파 정책을 펼치기에 미국의 부채 수준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금리 인상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3월 물가가 정점을 통과했다는 의견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 CPI가 전달보다 0.3% 오른 데 그쳤기 때문이다. 김지원 KB 증권 연구원은 "근원 CPI가 전망치를 소폭 하회하고 전달보다 둔화하면서 인플레가 정점을 찍었다는 기대감도 커졌다”며 "유가가 다시 오르는 등 안정세를 확인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연주 기자 kim.yeonjoo@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