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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민법에 인격권 신설…불법촬영·갑질 민사소송, 배상액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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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는 지난 1월 17일 MBC ‘스트레이트’에 통화 녹음파일 등을 제공한 인터넷 언론사 서울의소리 관계자들에 대해 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김 여사는 소장에서 “피고들의 불법적인 녹음 행위와 법원의 가처분 결정 취지를 무시한 방송으로 인격권과 명예권, 프라이버시권, 음성권을 중대하게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인격권’은 현행 민법에는 어느 곳에도 나오지 않는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10조에서 유래한다. 하지만 1958년 민법이 제정된 이래 여태까지 인격권을 구체적으로 정의한 적은 없다. 개별 사건에 대한 법원과 헌법재판소 판례 등을 통해 그 실체가 인정됐을 뿐이다.

법인에도 인격권 똑같이 부여

64년 만에 인격권이 기본법인 민법에 정식으로 명문화된다. 법무부는 5일 인격권 및 인격권 침해 배제, 예방, 회복 조치와 손해배상 청구권 조항을 신설하는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인격권은 1100개가 넘는 민법 조항 가운데 앞쪽에 추가된다.

중앙일보

민법에 신설되는 ‘인격권’ 규정.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민법 개정안은 제3조의2 조항을 신설하고 ①항엔 “사람은 생명·신체·건강·자유·명예·사생활·성명·초상·개인정보, 그 밖의 인격적 이익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②항에 “사람은 인격권을 침해한 자에 대하여 침해를 배제하고 침해된 이익을 회복하는 데 적당한 조치를 할 것을 청구할 수 있고, 침해할 염려가 있는 행위를 하는 자에 대하여 그 예방이나 손해배상의 담보를 청구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었다.

인격권은 법인에도 똑같이 부여된다. 34조의2항을 신설해 “제3조의2는 그 성질에 반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법인에 준용한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인격권이 도입되면 불법 녹음·촬영, 직장 내 갑질, 학교폭력, 온라인 폭력, 가짜뉴스, 디지털 성범죄, 메타버스 내 인격 침해, 개인정보 유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격권 침해 범죄의 예방과 회복, 손해배상이 가능해진다.

법무부 관계자는 “보다 넓고 다양한 분야에서 인격권 침해로 인한 법적 책임이 인정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인격권이 침해당하거나 침해당할 우려가 있는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실효적인 구제 수단도 확보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민법에 인격권 규정을 신설하려는 시도는 2004년과 2014년 두 차례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번 개정안은 법무부 법무자문위원회(미래시민법포럼)에서 제안된 법안을 기초로 마련했다. 법무부는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위스, 일본, 대만, 중국 등 주요 해외 입법례와 판례를 참고했으며 인격권에 관한 연구용역, 논문대회, 외부 전문가 자문 등을 실시해 의견을 폭넓게 수렴했다”고 밝혔다.

법무자문위원인 김상중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민법상 네 번째 규정으로 신설됐다는 점은 인격적 가치가 이 정도로 높은 지위를 부여받고 그 보호 필요성이나 논증의 힘까지 덩달아 커진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민법 개정안에는 미성년자가 성년이 된 후에도 한정승인(상속 재산 한도 내에서만 채무 승계)을 할 기회를 부여하는 내용도 담겼다. 미성년자의 ‘빚 대물림’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현행법은 미성년자가 상속받을 빚이 재산을 초과하더라도 미성년자가 3개월 이내에 한정승인이나 상속 포기를 하지 않으면 상속인에게 상속 채무가 전부 승계된다. 이에 법무부는 미성년자가 성년이 된 후 상속 채무가 상속 재산을 초과하는 사실을 안 날부터 6개월 이내에 한정승인을 신청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형제자매의 상속 유류분 제외

법무부는 또 형제자매의 유류분(遺留分)을 제외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이날 밝혔다. 유류분은 고인의 유지(遺旨)와 무관하게 상속인이 받을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된 최소한의 유산 비율이다.

현행 민법은 직계비속(자녀·손자녀)과 배우자는 법정 상속분의 2분의 1, 직계존속(부모·조부모)과 형제자매는 법정 상속분의 3분의 1을 유류분으로 정했다. 형제자매의 경우 유족 중 배우자와 자녀, 부모가 모두 없을 경우에만 상속권이 인정된다. 유류분 제도로 인해 고인이 가족이 아닌 제3자에게 재산을 모두 물려주고 싶어도 유류분에 규정된 비율만큼은 줄 수 없다.

유류분 제도는 1977년 도입됐다. 과거 상속이 주로 장남에게만 이뤄지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여성을 비롯한 다른 자녀에게 최소한의 상속분을 보장해 주려는 취지였다. 법무부는 “형제자매 간 경제적 유대관계가 약화된 사회 현실을 반영하고 상속 재산에 대한 망인(亡人)의 자유로운 처분 의사를 존중할 수 있도록 했다”고 개정 취지를 설명했다.

법무부는 개정안을 오는 8일 국회에 제출한다. 올해 국회에서 통과하면 형제자매에 대한 유류분 권리는 45년 만에 사라지게 된다.

이와 함께 미혼의 독신자에게 친양자(親養子) 입양을 허용하는 내용의 민법·가사소송법 개정안도 이날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하남현·정용환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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