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등 금융지원 포함 ‘50조 맞추기’
(2) 대출규제 풀면 가계부채 눈덩이?
LTV 완화 별개로 DSR 손질엔 신중
(3) 부동산 규제 완화, 집값 자극 우려
보유세 완화 앞서 양도세 카드 먼저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인수위 기획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에서 머리발언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국정과제 선정에 나선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주요 경제 공약 실행안을 놓고 인수위 안팎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윤 당선자는 대선 기간 동안 코로나19 피해 지원을 위한 50조원 예산 편성, 부동산·대출 규제 완화를 내걸었다. 하지만 최근 물가와 집값이 상승세를 타면서, 윤 당선자 공약과 경제 환경 사이의 ‘엇박자’가 적지 않다. 인수위 내부에서도 금융·부동산 규제 완화 등 ‘윤석열 노믹스’(윤석열 당선자의 경제 정책)의 부작용을 막을 정책의 ‘균형잡기’가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① 50조 추경에 고물가 기름 부을라
대표적인 엇박자는 새 정부 출범 직후 추진 예정인 자영업자·소상공인 코로나19 손실 보상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물가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대선 공약대로 재정 50조원을 추경으로 쏟아부으면 가뜩이나 오름세를 보이는 물가 상승률을 자극할 수 있다. 국제 원자재 가격과 환율 상승 등으로 지난달 국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한국은행의 물가 안정 목표인 2%(전년 동기 대비)를 훌쩍 넘는 4%에 육박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시나리오는 대규모 추경이 물가 상승과 한은의 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1800조원대 가계 빚(가계 신용) 상환 부담 악화, 내수 둔화를 초래하는 악순환이다. 윤 당선자는 지난달 31일 국민의힘 의원들과 만나 “정권 초에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가면 민심이반 시작”이라며 우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공약이 수정될 조짐도 엿보인다. 윤 당선자는 지난달 말 인수위 업무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불필요한 지출 구조조정으로 대출 지원, 신용 보증, 재취업 교육 지원 등을 포함한 50조원 규모의 손실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이 발언을 들은 기획재정부 고위 관료는 “금융 지원까지 넣어서 50조원이라는 말”이라고 해석했다. 추경에 재정 지원뿐 아니라 각종 금융 지원 방안 등을 담아서 50조원보다 훨씬 적은 돈을 쓰고도 ‘50조원 지원 효과’를 거두는 ‘우회로’를 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② 대출규제 풀면 가계부채 눈덩이?
대출 규제 완화 공약도 딜레마에 빠져 있다. 윤 당선자는 현재 지역별로 20∼70%를 적용 중인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70%로 단일화하고, 청년·신혼부부 등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의 경우 이 비율을 80%까지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연 8%씩 급증한 국내 가계부채가 대출 규제 완화를 계기로 다시 불어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미국 발 금리 인상에 속도가 붙으며 가계의 대출 상환 부담도 덩달아 무거워질 가능성이 크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최근 발간한 한국 정부의 연례 협의 보고서에서 “한국의 가계부채와 집값이 팬데믹 기간 전례 없는 속도로 늘어나 가계 빚 수준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매우 높은 상태”라며 “위험이 커지는 걸 억제하기 위해 대출자 규제 강화, 은행 자본 확충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윤 당선자 공약과 정반대의 정책 조언을 내놓은 셈이다. 이 기구는 한국 경제의 핵심 위험 요인으로 집값 상승과 함께 가계 부채 증가를 꼽는다.
인수위가 엘티브이와 더불어 핵심 대출 규제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대출자 소득에 따라 대출액 산정) 규제의 ‘패키지 완화’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원일희 인수위 수석부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디에스아르은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매우 커 규제를 완화한다, 안 한다 양자택일 식으로 확정한 내용이 전혀 없다”면서 “시장 상황을 지켜보면서 합리적인 방안이 뭔지 종합적으로 고민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은 한국 정부에 “대출 금리 인상에 따른 위험을 완화하기 위해 지금보다 강화된 디에스아르 비율을 도입해야 한다”며 대출 문턱을 외려 높이라고 촉구하고 있다.
③ 부동산 규제 완화…집값 자극 우려
새 정부의 부동산 보유세·재건축 규제 완화 방침이 부동산 시장 안정에 역행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3월 넷째 주 서울 강남·서초·송파·강동구 등 강남 4구 아파트값은 전주에 견줘 소폭 오르며 10주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인수위가 보유세·취득세 등 각종 부동산 세금 부담을 줄이겠다는 당선자 공약 중 다주택자가 집 팔 때 물리는 양도세 중과세를 한시적으로 완화하겠다는 카드를 가장 먼저 꺼낸 것도 이 같은 염려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주택 수요를 부추길 수 있는 보유세 완화가 아니라, 다주택자의 주택 매도(공급)를 촉진해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될 양도세 쪽을 우선해서 손 댔다는 얘기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코로나 손실 보상의 경우 사전에 보상 규모를 정해놓을 게 아니라 실제 손실을 따져본 뒤 적정 지원 수준을 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부동산·가계부채 문제의 경우 주택 공급 확대 등과 함께 대출자 소득과 상환 능력을 고려한 대출이 이뤄지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항상 시민과 함께 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 신청하기‘주식 후원’으로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