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이우 도심 폭격으로 최소 4명 사망
제2도시 하르키우 등도 폭격...개전 후 500명 숨져
젤렌스키 "나토 가입 어렵다는 걸 인정한다"
우크라이나 동남부 마리우폴의 고층 건물들이 14일 러시아군의 폭격을 맞은 뒤 불에 타 연기가 자욱하게 나고 있다. 마리우폴=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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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전(開戰) 21일째인 16일(현지시간) 수도 키이우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들에 러시아군의 집중 폭격이 이어졌다.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시민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러시아군에 포위된 채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남동부 마리우폴에서는 500여 명이 인질로 붙잡혔다. 난민은 300만 명이 넘어섰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가입 포기’를 공식 언급하면서 꺼질 듯했던 휴전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다.
우크라이나 동남부 마리우폴에서 15일 구조대원들이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다친 사람을 병원으로 옮기고 있다. 마리우폴=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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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동남부 마리우폴의 한 병원 침대에 15일 부모가 숨져 남겨진 조산아들이 누워 있다. 마리우폴=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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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그래픽뉴스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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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규환’ 마리우폴…키이우 도심도 폭격
미국 CNN방송 등에 따르면 파울로 키릴렌코 도네츠크주(州) 주지사는 이날 텔레그램에 “러시아군이 마리우폴에서 주민 400명을 병원으로 몰아넣었다”며 “병원에 있던 의료진과 환자 100명도 함께 붙잡혔다”고 밝혔다. 그는 “바깥에서 공격이 계속되면서 병원을 나갈 수 없어 지하실에 모여 있다”며 “인질을 인간 방패로 사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16일째 러시아군에 포위된 마리우폴에서는 도심을 향한 무차별 폭격으로 민간인 사망자가 2,500명을 넘어섰다. 마리우폴 시의회에 따르면 이날에만 러시아군은 마리우폴 안팎에 100개 이상의 폭탄을 투하했다. 시내 건물들은 폭격으로 80% 이상 불타고 파괴됐으며, 거리에는 미처 수습하지 않은 시신이 쌓여 있다. 마리우폴의 한 시민은 미 워싱턴포스트에 “도심은 널브러진 시신들로 흡사 고기분쇄기 같은 모습"이라며 “땅은 피로 흥건하고 슬픔과 절망이 가득하다”고 절규했다. 마리우폴에서는 전날 개전 후 처음으로 인도주의 대피 통로가 열려 4,000여 대의 차량으로 2만여 명이 대피했지만 여전히 35만 명이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다. 러시아군은 이들이 대피한 자포리자시 기차역과 공원 등에도 폭격을 퍼부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16일 한 여성이 이웃들의 도움을 받아 무너진 건물에서 대피하고 있다. 키이우=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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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소방관들이 16일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은 아파트에 발생한 불을 끄고 있다. 키이우=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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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북동부 제2도시 하르키우에서 14일 소방관들이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길가에 생긴 분화구에 불을 끄고 있다. 하르키우=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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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이우도 전날 러시아군의 도심 주거지 공격으로 최소 4명이 숨졌고, 이날도 도심 아파트에 공격이 이어지면서 2명이 다치고 수십 명이 대피했다. 중심부에서 15㎞ 지점까지 다가온 러시아군이 장거리포로 아파트, 지하철역 등 민간 거주지를 폭격하면서 민간인 희생이 커지고 있다. 제2 도시 하르키우와 남부 요충지인 미콜라이우 등에도 러시아군의 대규모 공습이 이어졌다. 하르키우에서는 이날 2명이 숨졌으며 개전 이후 500명이 넘는 희생자가 나왔다. 이호르 테레호프 하르키우 시장은 “개전 이후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600채 이상의 건물이 파괴됐다”며 “끊임없는 공격으로 학교, 보육원, 병원 등을 파괴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미콜라이우에서는 전날에만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132명이 숨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영상)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5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합동원정군 지도자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 런던=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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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나토 가입 어렵다는 걸 인정한다”
지지부진한 휴전협상은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다. 이날 양국 대표단은 4차 휴전협상을 재개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협상에 앞서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합동원정군(JEF) 지도자 회의에 영상으로 참석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는 것이 어렵다는 걸 인정한다”며 “우리가 나토의 열린 문에 들어갈 수 없다면 새로운 형태의 방어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취임 이후 나토 가입을 적극 추진해온 젤렌스키 대통령이 ‘나토 가입 철회’로 입장을 바꾸면서 휴전협상에 청신호가 켜진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ㆍ나토 가입 금지 등 러시아 요구에 확답을 안기면서 러시아군의 철수와 휴전을 성사시키기 위한 카드를 내민 것으로 풀이된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이날 “협상이 쉽지 않지만 타협의 희망이 있다”며 "나토 확장을 제외하고,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 등 합의에 근접한 매우 구체적인 문구들도 있다"고 말했다. 영국 BBC방송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입장 변화는 영리하고 현명한 정치적 판단”이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주면서 전쟁을 그칠 구실을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비군사화까지 요구하는 만큼 협상 걸림돌도 여전하다. 협상이 또 교착상태에 빠질 경우 전쟁은 장기화할 공산이 크다. 영국 더타임스는 “우크라이나는 5월 이전에 전쟁을 끝내고자 한다”며 “러시아의 군사자원이 고갈되는 5월 초까지 러시아군을 철수시키지 못하면 러시아가 2차전을 위해 시리아 용병을 투입하면서 상황이 악화할 수 있다”고 전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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