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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세계와 손잡는 K팝

[NOW] 환경·빈곤·인권… 목소리 내는 전세계 K팝 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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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1만6000㎞ 떨어진 페루. 코로나로 인구 대비 최다 수준의 사망자를 기록한 이곳에 최근 의료용 산소통 기부가 잇따랐다. 역시 코로나로 관광객이 끊겨 고사 위기의 태국 툭툭(tuktuk·삼륜택시) 운전사들은 요즘 K팝 아이돌 사진을 달고 ‘길거리 광고판’ 역할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조선일보

①한국, 일본, 대만 출신들로 이뤄진 다국적 그룹‘트와이스’는 전 세계적으로 탄탄한 팬 네트워크를 자랑한다. 트와이스의 팬덤은 동남아시아와 남아메리카 국가에서 소외 계층 돕기와 환경 보호에 힘쓰고 있다. 사진은 네 번째 월드 투어를 위해 최근 미국으로 출국한 이들의 앨범 재킷. ②BTS 제이홉(사진 왼쪽) 팬들이 페루에 지원한 산소통 . ③레드벨벳 슬기 팬들이 태국 툭툭에 단 생일 축하 광고. /JYP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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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 퍼져있는 K팝 팬덤(fandom·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이들이나 그 현상)이 정치·사회 현상에 목소리를 내는 ‘사회운동’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른바 ‘K팝 행동주의(activism)’다. 인종차별 반대·환경보호·성폭력 방지·코로나 피해자 돕기 등 각종 이슈와 관련해 소위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영국 일간 가디언은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경제적 불안을 겪는 소외 계층을 지원하면서 K팬덤이 ‘K팝 액티비즘’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주목했다. 가디언은 “소셜 미디어에 익숙한 K팝 팬들은 사회적 대의(大義)를 내세워 전 세계 어디든 공동체를 만들어내고 있다”면서 “소속감(belonging)과 공익(common good)을 특징으로 하는 ‘K팝 행동주의’가 정치·사회적으로 강한 메시지로 세상을 포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태국 방콕에선 K팝 걸그룹 ‘레드벨벳’ 멤버 슬기 사진으로 도배한 툭툭(tuktuk·삼륜 택시)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지난 10일 슬기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태국 팬들이 툭툭을 ‘길거리 광고판’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지난해 상반기 시작된 ‘툭툭 이벤트’는 단지 좋아하는 스타에 대한 응원 그 이상이다. 레드벨벳을 비롯해 트와이스, 슈퍼주니어, 스트레이키즈 등 K팝 팬들은 코로나로 생계 유지가 어려운 방콕 내 툭툭 9000여 대의 운전자를 위해 뜻을 모았다. 트와이스 팬덤은 툭툭 운전자 300여 명의 생계를 지원했고, 슈퍼주니어의 예성 팬덤은 운전자를 한 달 평균 13명 먹여 살렸다. 관광객이 85% 이상 감소해 1년 가까이 수입이 ‘0원’으로 추락했던 이들이다. 각 팬덤은 트위터를 통해 “풀뿌리 경제를 살려야 사회를 지탱시킬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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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남미의 페루에선 코로나 위중증 환자를 위한 의료용 산소통 기부가 잇따랐다. BTS 팬덤이 제이홉(J-hope·본명 정호석)의 생일인 2월 18일을 기념해 그의 이름을 딴 ‘희망의 산소 캠페인(Oxygen of Hope Campaign)’을 벌인 것. 이들은 페루 의료 시스템이 붕괴 위기를 맞으며 산소통 가격이 10배 가까이 치솟은 점을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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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페루 뉴스에 보도된 BTS 팬들이 BTS 멤버 제이홉 생일을 기념해 기부한 의료용 산소통 /페루bts팬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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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는 지난해 6월 기준 인구 10만명당 사망자 500명으로, 인구 대비 사망자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였다. 또 2020년 말 데뷔한 그룹 엔하이픈의 페루 팬들은 데뷔를 축하하기 위해 각종 봉사와 기부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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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엔하이픈 팬들이 데뷔를 기념해 기부와 자선 위해 NGO 활동을 하는 공고문/페루 매체 larepublica


사회 안전망에서 소외된 이들에게는 K팝 팬덤이 든든한 후원자다.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이들의 지원은 물론, 인종차별 반대, 인권 탄압 저지 시위, 여성과 아동 성 착취 방지, 환경 운동 등 활동 영역은 전방위다. 에콰도르 나무 심기, 니카라과 허리케인 피해 돕기 등 전 지구적 환경 보호에도 열심이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과 뉴욕타임스 등 유력 매체는 이를 두고 ‘K팝 행동주의(activism)’로 명명했다. 영국 가디언은 최근 “K팝 행동주의가 전 세계 변화의 축이 되고 있다”면서 “독특한 결속력을 바탕으로 코로나 시기에 정치·사회적 고립과 불안 등을 야기하는 부류와 싸워 매번 승리하고 있다”고 썼다. 또 “K팝의 특징 중 하나인 ‘희망적 낙관주의’가 선순환하며 언어, 문화, 연령의 장벽을 뛰어넘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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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매체 허니팝에 게재된 '팬란트로피'. 팬과 박애(필란트로피)의 합성어다. 기후 변화에 대항해 힘을 모으는 K팝 팬덤에 대해 기술했다. /honeypop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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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팬덤이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본격적으로 보여준 시점은 지난 2020년 흑인 인권 운동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 사태 이후. K팝 팬들은 적극적인 해시태그 운동으로 인종차별 반대에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방탄소년단과 소속사가 ‘인종차별과 폭력 반대’ 성명과 함께 100만달러(약 12억원)를 기부하자 팬덤인 아미 역시 27시간 만에 100만달러가 넘는 액수를 모금하며 뜻을 모았다.

영국 가디언은 “K팝 팬덤이 정치·사회적 행동주의로 성장하는 바탕에는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고 미래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는 젊은 층이 있다”면서 “K팝 팬덤의 특징인 집단적 ‘해시태그 운동’ 등이 K팝 스타 응원뿐 아니라 사회적 이슈를 공략하는 무기가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K팝 팬덤이 페루를 위해 ‘산소통 기부’ 운동을 펼치고, 태국에선 ‘툭툭 살리기 캠페인’을 벌이기에 앞서 두 나라는 각각 민주화 시위가 한창이었다. 기득권층에 맞서는 이들을 지지하고, 취약 계층을 돕는 역할을 K팝 팬덤이 해내고 있다는 평가다. 해외 매체 글로벌 보이스에 따르면 “팬덤 이름과 색깔을 공유하며 갖게 되는 소속감과 집단적 정체성이 코로나 시기에 더욱 결속력을 얻으면서 K팝 행동주의는 세계적으로 번성할 것”이라고 했다.

☞K팝 행동주의(activism)

K팝 팬덤이 정치·사회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사회 활동가로 진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2020년 미 시사주간지 타임이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인종차별 반대에 힘을 모으는 K팝 팬덤에 대해 ‘정치적 행동주의(political activism)’라고 명명했다.

[최보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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