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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유럽연합과 나토

EU서 자유로운 이동 줄고 검문·검색 일상화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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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범·난민 국경 자유이동해 논란

코로나 확진자 못 막아 감염자 폭증

각국 右派세력이 국경 강화 요구

EU, 회원국에 솅겐 조약 개정 제안

조약 수정 땐 ‘하나의 유럽’ 흔들려

실직자 늘고 경제 타격 커져 고민

단일 통화인 유로화와 더불어 ‘하나의 유럽’을 떠받치는 양대 기둥인 솅겐 조약(Schengen Agreement)이 흔들리고 있다. 솅겐 조약은 유럽 내 가입 26국 간 국경을 통과할 때 비자와 세관 심사를 생략해 자유로운 인적·물적 이동을 보장하는 제도다. 하지만 난민⋅테러 문제에 이어 신종 코로나로 국경 통과가 중단되는 상황이 잇따르고, 일부 민족주의 세력이 EU 탈퇴 주장까지 하자 이를 수정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솅겐 조약에 손을 대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유럽 정신의 후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유럽연합(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지난 15일(현지 시각) ‘솅겐 지역 통제 강화를 위한 국경 규정 개정’을 각 회원국에 제안했다. 특정 국가의 필요나 회원국 간 합의에 따라 국경 검문·검색을 현재 규정보다 좀 더 신속하게 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그 기간도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조약 가입국 내 국경 통제는 최대 6개월을 넘을 수 없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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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집행위가 밝힌 개정 이유는 “신종 코로나 확산과 이주민 문제, 안보 위협 대응 강화”다. 집행위는 “공중 보건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EU 이사회 결정으로 일시적 입국 제한 조치를 신속하게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도입할 것”이라고 했다. 또 “(난민과 테러 등) EU 내 안보와 공공 정책 등에서 다수 회원국에 영향을 주는 위협이 있는 상황에서는 (국경에서) 공동 대응이 이뤄지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시키겠다”고 했다.

EU 집행위 제안은 솅겐 조약의 ‘빈틈’을 보완하자는 차원이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조약 개정 논의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솅겐 조약은 국가 간 경계를 사실상 철폐해 ‘하나된 유럽’을 만들겠다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유럽이 장기적으로 미국처럼 ‘하나의 연방국가’가 되는 것을 내다본 포석이다. 하지만 이를 틈타 신종 코로나 감염자와 난민⋅테러범까지 자유롭게 여러 국가를 오가자, 이를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진 상황이다.

솅겐 조약은 이미 여러 번 중단 위기를 맞았다. 코로나 확산 초기인 지난해 3월 독일⋅프랑스⋅스페인을 시작으로 유럽 대부분 국가가 방역을 위해 국경을 폐쇄하면서 조약이 한동안 무용지물이 됐다. 국경이 다시 열린 것은 지난해 6월부터다. 2018년에는 독일이 남유럽에서 유입되는 난민을 막겠다며 일시적으로 오스트리아 쪽 국경을 통제하기도 했다. 독일 일간 차이트는 “그러자 오스트리아가 (독일행 난민이 들어오는)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 쪽 국경 검문을 강화하는 등 EU 내 국경 강화가 타국으로 도미노처럼 확산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10월 프랑스 남부 니스의 성당 흉기 테러로 3명이, 지난해 11월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총기 난사로 4명이 숨지자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국경에서 검문·검색이 시행되기도 했다. 프랑스 일간 피가로는 “흉기 테러범은 튀니지에서 이탈리아를 거쳐 프랑스로 입국했고, 총기 난사범은 슬로바키아로 건너가 탄약 구매를 하려 했다”며 “(솅겐 조약 덕분에) 이 과정에서 누구도 제지받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여론이 비등하자 프랑스 극우 대선 후보 에릭 제무르는 ‘프랑스 국경 강화’를 공약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솅겐 조약의 본격적인 수정은 쉽지 않다. 우선 일상생활의 불편을 감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은 여러 나라가 국경을 맞대고 있고, 역사적으로 국가 간 경계도 자주 변해 도로망 등 사회 기반 시설이 어지럽게 얽혀 있다. 독일과 프랑스, 베네룩스 3국 등의 국경 지대에선 주민의 생활도 2~3국에 걸쳐 있다. 국경 통제를 하기엔 터무니없는 비용이 든다.

특히 EU가 이미 단일 경제권을 구축한 상황에서, 자유로운 이동에 조금이라도 제약이 생기면 경제적 타격이 커지게 된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로 솅겐 조약이 일시 중단되자 직장과 집이 서로 다른 나라에 있던 사람들이 실직하거나, 임시 주거지를 따로 얻는 등 큰 불편을 겪었다. 영국 스카이뉴스는 “국가 간 물가 차이를 이용해 번성했던 국경 인근 쇼핑센터들이 타격을 입으면서 지역사회에서 실직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이후 폴란드와 헝가리의 EU 탈퇴 협박이 이어지고, 극우 세력이 솅겐 조약 철폐를 주장하는 상황에서 국경 관문을 새롭게 만들면 유럽 통합의 의미가 퇴색한다는 우려도 크다. 프랑스 주간 누벨 옵세르바퇴르는 “회원국 내 (보건·이민·테러 등) 정보 교류 강화와 공동 대응을 통해 더 ‘통합적’으로 문제에 대응하는 것이 유럽 정신에 맞는다”고 지적했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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