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2 (수)

성대한 크리스마스, 증시 파티 꿈꿨다면... ‘긴장 모드’로 바꾸세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무튼, 주말-신순규의 월가에서 온편지]

오미크론과 증시의 과잉반응?

당연하다 여긴 것이 가장 위험

조선일보

일러스트=안병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휴, 많아도 너무 많았어.” 지난주 토요일, 커다란 쓰레기 봉지를 여섯 개나 버리고 온 아내가 중얼거렸다. 아내 말의 의미를 설명하기 전에, 먼저 미국의 가장 큰 명절인 추수감사절을 소개해야겠다. 미국에서는 매년 11월 넷째 주 목요일에 추수감사절을 지낸다. 먼 곳에 살던 가족이 한곳으로 모이고, 만찬을 준비하느라 모두가 바쁜 며칠을 보낸다. 감사절 대표 요리인 칠면조를 통째로 굽고, 매시드 포테이토, 고구마 캐서롤 같은 음식을 만든다. 감사절의 대표적인 디저트는 파이다. 호박, 사과, 피칸 등으로 만든 파이들! 파이 위에 아이스크림이나 치즈를 얹어 먹기도 한다. 이날은 1년 중 모두가 다이어트 걱정을 내려놓고 먹는 날이다.

우리 가족은 다 모여도 여섯 명뿐이다. 대부분의 친척이 한국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이들을 초대해서 감사절 만찬을 해 왔다. 작년엔 코로나 때문에 우리 가족만 조촐하게 모였지만 올해는 달랐다. 주위 사람들 모두가 백신을 맞았고, 지인 중 지난 몇 달간 코로나 확진자도 없었다. 그래서 올해는 다시 사람들을 초대하기로 했다. 당초 우리 가족이 초대하기로 한 건 13명이었다. 하지만 지난 목요일에만 24명이 왔다.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모여 놀라긴 했지만 서로 감사한 일들을 얘기하고, 한식을 나눠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럼 다시 아내의 말로 돌아가 보자. “사람이 너무 많았다”는 말은 손님 30명에 관한 것이었다. 집의 크기를 보나, 음식을 준비하는 아내의 수고를 보나 30명은 너무 많았다. 아내는 “다음엔 꼭 봐야 할 사람들끼리 오붓한 모임을 해야겠어”라고 말했다. 내 속마음을 말하고 싶었지만, 굳이 말을 보태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았다. 그 말은 아내가 버릇처럼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모임이 끝난 뒤 이렇게 말하고는 다음 모임은 더 크게 하는 아내를 보고 또 봐 왔다. 그러니 다음 모임, 즉 크리스마스 파티도 당연히 크게 할 것이다. 왜냐고? 내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 이렇게 애쓰는 사람이 내 아내이니까.

작년까지 나는 감사절 주간의 목요일, 그러니까 감사절 당일만 쉬었다. 명절 전후로 쉬는 동료가 많았기 때문에 나는 회사에 출근해 일했다. 감사절 주의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거의 거래가 없다. 하지만 아주 가끔 놓치면 안 될 매입 기회를 대비해 애널리스트 몇 명은 자리를 지켜야 한다. 올해는 나도 감사절 전후를 쉬기로 했다. 내가 책임지고 있는 분야의 채권은 가치가 너무 올라, 매입 기회는 절대 없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덕분에 모처럼 5일 연달아 가족과 연휴를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연휴 내내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애널리스트가 뉴스에 신경을 써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나는 증시 보도와 인터뷰를 계속 읽고 들었다. 그래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발견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변이 때문에 증시가 흔들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S&P500, 다우 존스 그리고 나스닥 지수가 금요일 하루 만에 2% 이상 하락했다는 뉴스에도 그렇게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오미크론’이라고 불리는 이 변이에 대해 아직 확실히 알려진 것이 적어서 증시가 과잉 반응을 한 게 아닌가’하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토요일에 나온 인터뷰를 듣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한 증시 전문기자는 이번 오미크론 변이도 주가에는 큰 타격을 주지 않을 것이라 예측했다. 그의 논리는 간단했다. 2020년 초에 시작된 팬데믹도, 올해 여름에 나타난 델타 변이도 증시를 오랫동안 하락시키지 못했다는 주장이었다. 미국 소비자들이 지금껏 많은 소비를 하고, 실업률도 낮기 때문에 증시가 침체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나처럼 오미크론 변이의 영향을 심각하게 보지 않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이 인터뷰가 나를 불편하게 했다.

이런 말을 들은 적 있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2020년 3월부터 5월까지를 제외하면 미국 증시는 탄탄하게 유지돼 왔다. 주가 하락은 단 며칠뿐. 조금만 견디면 다시 상승세로 변했다. 그래서 작년 봄부터 주식 투자를 시작한 사람에게 주가는 오르는 것이 당연했다. 심지어 나마저도 그런 생각을 했다. 주가와 관련 있는 회사채를 분석하고 매입 또는 매각을 결정하는 애널리스트로서, 높은 주식 가치와 낮은 회사채 이자율이 보이면 긴장 모드에 돌입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나마저도 높은 주가와 낮은 이자율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아내가 나를 위해 명절 이벤트를 크게 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다음엔 소규모 모임을 할 것이란 아내의 말을 믿지 않는다. 미국 정부가 소비자, 기업, 채권 시장 등에 불어넣은 어마어마한 지원금 덕에 팬데믹 기간에도 주가 상승이 이어져 왔다. 그리고 주가 상승을 많은 사람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둘 다 절대 당연하지 않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높아진 증권 가치, 즉 증시 파티를 중단시킬 수 있다. 예를 들면 오미크론 변이와 같은 것들. 그러니 긴장 모드에 들어가야 할 때다. 아내에게도 말을 꺼내야겠다. 3주 후에 있을 크리스마스 파티, 규모를 줄이는 게 어떻겠냐고.

[신순규 시각장애인·BBH 시니어 애널리스트]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