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원 칼럼] 김순배|칠레센트랄대학교 비교한국학연구소장
한류가 멀리 라틴아메리카에서도 퍼지고 있는 게 새로운 소식은 아니다. 그런데 한국에 대한 누군가의 사랑은 계속 뜨거워지는 게 아니라 고비를 맞기도 한다. 11월3~4일 열린 9회 중남미 케이에프(KF) 글로벌 이(e)-스쿨 국제워크숍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매 학기 온라인 한국학 수업을 듣던 라틴아메리카 14개 대학의 학생들이 멕시코 누에보레온자치대학 주관으로 모여서, 교수들과 직접 소통하고 학생들끼리 서로 교류하는 자리였다. 각 대학에서 선발돼, 학문적 관심을 가진 ‘진지한’ 학생들이다.
행사 기간에 학생들이 한국학 수업을 수강하게 된 계기를 듣는 자리가 있었다. 대부분 알려진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 등을 통해서 한국을 접하고, 한국의 경제발전, 문화산업 등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사실, 이런 한국어 및 한국학 입문 동기는 대륙별로도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한국에 대해서 지나치게 낭만적 이미지를 갖고, 한국의 발전 경험을 자국에 그대로 옮기고 싶다는 학생도 있었다. 내가 가르치는 한국학 석사 과정 학생들도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지적 호기심을 갖고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학생들이 한국에 대해서 깊이 알아갈수록 애정과 실망이 교차한다. 처음에는 장밋빛 인식을 갖는 경우가 많지만, 압축 고도성장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한국의 문제점도 서서히 깨닫게 된다. 피상적 접근이 아니라, 교수들의 강의에서 비판적 사고를 통해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는 바람직한 과정이다.
학생들이 주목하는 지점은 한국 사회가 스스로 지목하는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나친 입시교육과 과도한 경쟁사회, 세계 1위의 자살률, 노인 빈곤, 남녀 차별, 권위주의적 위계질서, 이주자에 대한 차별, 여자 화장실 몰래카메라 등이다. 학생들은 한국의 민주화와 산업화의 역사와 함께, ‘헬조선’과 ‘재벌 공화국’에 대해서도 알아간다. “한국에 대해서 너무 깊이 알면 실망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온라인 학술대회가 보편화되면서, 한국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기회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11월11~12일에는 본교 주관으로 멕시코, 아르헨티나, 엘살바도르 등 7개국 20명의 한국학 연구자들이 발표하는 9회 라틴아메리카한국학학술대회(EECAL)가 열린다. 한류와 한국-라틴아메리카 국제협력은 물론, 탈북자와 안티 페미니즘 문제까지 다양하게 논의된다. 온라인으로 개최되다 보니, 발표를 듣기 위해서 국경을 넘어 다양한 주변국에서 150명 가까이 등록했다.
어느 나라나 장밋빛만은 아니다. 코로나 사태를 통해, 한국 사회가 선망했던 미국과 유럽의 이른바 선진국들도 부실한 의료체계 등 허약한 국가 역량을 드러냈다. 그러니 한국 사회도 빛과 그림자가 있고, 그런 면모가 알려지는 게 부끄러울 것은 없다. 나 스스로도, 학생들에게 한국 사회에 대한 편협한 환상을 깨고, 균형 잡힌 비판적 사고와 분석을 강조한다.
그런데 어쩌랴, 나도 한국 사람인 것을. 그래서 더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학생들 앞에서, 스스로 ‘그러게 말이야’라는 안타까움이 든다. 오늘도 라디오 방송국에서 한국의 문화산업이 세계적 성공을 거둔 비결에 대해서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이처럼 한국에 대한 관심은 계속 커지고 있다. 그래서 한국이 알면 알수록 더 매력적인 나라이기를 새삼스레 바란다. 설령 내가 가르치면서 지나치게 애국적이라는 비판을 받더라도 말이다. 나는 그 희망을 갖고, 한국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그 힘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을 사랑하는 학생들도 더러 실망하지만, 애정을 버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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