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JTBC ‘뉴스룸’이 공개한 故황예진씨 사건 당시 상황이 담긴 CCTV 영상 일부/JTBC '뉴스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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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이모(31)씨는 여자친구인 황예진(26)씨와 다투다 황씨를 수차례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씨의 폭행에 의식을 잃은 황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약 3주 뒤 끝내 사망했습니다. 검찰은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했지만 유족은 이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현행법에서 살인의 형량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지만 상해치사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그칩니다. 유족이 최근 추가로 공개한 CCTV 등을 고려해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을지 형사법 전문가에게 물어봤습니다.
◇이번 사건, 상해치사일까요 아니면 살인일까요?
상해치사와 살인을 가르는 기준은 ‘사람을 죽이려는 고의성이 있었나’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겠다는 의지, 또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미필적 고의가 인정돼야 살인 혐의가 적용됩니다. 경찰과 검찰이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할 수밖에 없던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조심스럽지만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전혀 없다’고 보지 않습니다.
◇피의자에게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보시나요?
미필적 고의는 행위 당시 피의자가 ‘이렇게 때리면 죽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했을 때 ‘그래도 하는 수 없지’ 혹은 ‘설마 이 정도로 죽겠어?’ 정도의 의사가 있었다면 성립합니다. 사건 기록을 다 보지 못해 미필적 고의를 단언할 수 없지만 폭행 정도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했고, 여기에 황씨가 기절한 후 이씨의 행동이 매우 비상정상적으로 보였습니다.
이씨는 여자친구가 정신을 잃고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피해자를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다투다가 예상치 못한 위급한 상황이 되면 보통 주위 사람들에게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하고, 피해자를 업고 죽을힘을 다해 택시를 잡거나 119에 신고하는 등 절박한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이씨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누구도 도울 수 없는 피해자 집으로 향합니다. 이 행동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가 필요해 보입니다.
◇재판이 진행 중인데, 죄명을 살인으로 바꿀 수 있나요?
네. 형사소송법 298조에서는 검사가 법원의 허가를 받아 공소장에 기재한 공소사실 또는 적용 법조의 추가, 철회 또는 변경할 수 있도록 합니다. 또한 법원도 심리 경과에 비추어 상당하다고 인정할 때는 공소사실 또는 적용 법조의 추가 또는 변경을 요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검찰이 살인죄로 공소장 변경을 신청하거나 법원이 요구하면 되는 거죠. 주위적 청구로 살인, 예비적 청구로는 상해치사로 공소장 변경하는 걸 검토해 볼 수 있습니다.
◇주위적·예비 청구요?
말하자면 검찰이 “판사님, 살인죄를 먼저 검토해주시고 만약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지 않을 때는 상해치사를 살펴주세요”라고 요청하는 겁니다. 살인 혐의만을 적용했을 때 재판부가 상해치사라고 판단한다면 이씨는 무죄를 선고받게 됩니다. 주위적·예비 청구 형태로 공소장을 변경한다면 검찰은 살인죄 성립을 강하게 주장할 수 있고, 만약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이씨는 상해치사 혐의로 처벌을 받게 됩니다. 지금도 검찰이 이번 사건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확신하지만 정의를 더 높이 세우는 일이 번거롭다고 주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데이트 폭력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요?
모르는 관계에서의 폭행은 지속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데이트 폭력은 가스라이팅 등을 통해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지배하고 ‘네가 맞을 짓을 해서 맞는다’는 식으로 폭력을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데이트 폭력을 행사한 이들이 종종 하는 말이 있습니다. “너를 사랑해서 나도 모르게 때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말은 100% 거짓말입니다. 사랑하면 때리지 않습니다. 폭행은 완전한 의지적 행동입니다. 상대방 신체에 손이 닿을 때 때리기 싫으면 바로 손을 뗍니다. 폭행은 그 사람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지는 행동입니다.
한 번의 욕설, 한 번의 폭행이 산처럼 강해지고 바다처럼 확대될 수 있습니다. 피해자들은 폭행을 당했을 때 즉시 신고하시고, 경찰도 단순한 긴급 응급조치를 넘어 스토킹 처벌법을 적용해 폭행 상대방을 구치소 등에 유치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시행해주길 희밍합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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