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변한 선박도 못 만들던 때 인재부터 키웠다
조선 입국, 해양대국 꿈의 반세기 성장사
세계 최고 조선 산업으로 한미 동맹 새 물꼬 터야
한화오션이 보유한 친환경 선박 기술, 스마트십 기술, 스마트 야드 기술 등을 필리 조선소에 효과적으로 접목해 북미 지역에서 기술·원가 경쟁력을 갖춘 조선소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다. 사진은 필리 조선소 전경. /한화그룹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윤석열 대통령과 첫 통화에서 ‘조선업’을 콕 찍어 언급하면서 한국의 협조를 요청했다. 대한민국 산업에 놀라운 것이 많지만 특히나 조선 산업은 기적을 일궜다. 본격 도약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중화학 공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울산의 현대 미포조선소, 거제의 옥포조선소 등이 준공된 1970년대이지만 씨앗은 1950~1960년대부터 뿌려졌다.
변변한 선박 만들 기술이 없어도 인재부터 길렀다. 1946년 8월 22일 국립 서울대학교 개교 당시 공과대학에 9개과를 설치했는데 항공조선과를 신설했다. 학과는 생겼지만 가르칠 교수도, 교재도 없었다. 조선공학도들이 기계과 수업을 들으며 미국 조선학회 자료 등을 구해 함께 해석하고 토론했다. 1947년의 2회 입학생들은 동숭동 교정에서 길이 6.5m 소형 선박을 만들다 폭발 사고를 일으켰다. 이승만 박사가 기거하던 이화장 전화선이 끊겼다. 사고 원인을 들은 이 박사가 교정을 찾아가 학생들을 격려하고 부식도 챙겨줬다.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일본 잠수함 설계 경험이 있는 김재근 교수가 학과 신설 2년 6개월 만에 부임해 교육의 기틀을 잡았다. 6·25전쟁 중에 졸업한 초창기 조선공학도들은 대학 마치고 곧바로 강단에서 후배도 가르치고 미 해군 함정 수리도 담당했다. 우리나라 조선업은 출발부터 군·민 합동, 산·학 협력이었다.
6·25전쟁이 끝나고 미국 원조로 미네소타 대학이 주관하는 서울대 재건 계획이 가동됐다. 공학·의학·농학을 중심으로 교수진을 미국에 연수시키는 1950년대 ‘미네소타 프로젝트’는 60년대 이후 우리나라 산업화에 인재 공급의 밑거름이 됐다. 조선공학과는 미네소타대 대신 MIT로 연수를 갔다. 교수도 없이 학과만 달랑 만들었는데 10여 년 만에 모든 교수진이 명문 MIT로 연수를 다녀왔다. MIT 실험실과 같은 기자재도 들여왔다. 이승만 대통령은 하와이 이주 교민들이 힘들게 모은 독립운동 자금으로 1954년 인하공대를 설립했다. 인하공대 개교 학과 6개에도 조선공학과가 포함됐다.
조선업 청사진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만들어졌다. 1968년 신설한 초대 청와대 경제2수석(경제1수석은 김학렬)에 36세 젊은 엔지니어를 발탁했는데 세계 최고 조선소에서 역량을 쌓은 인재였다. 1951년 서울대 조선항공과에 입학한 신동식은 스웨덴 코쿰 조선소에 어렵게 취업 문을 뚫었다. 선박 설계를 배우고 세계적 명성의 영국 로이드선급협회 국제 검사관, 미국선급협회 검사관으로 일했다. 박 대통령이 방미 길에 그를 설득해 청와대로 데려왔다. 신동식 경제2수석이 거제도를 수십 차례 오가며 초대형 조선업 마스터플랜을 세웠다.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나라 조선업의 성공은 기업인 정주영을 빼고는 논할 수도 없다. 현대건설 정주영 회장은 “배 만드는 것도 어려울 것이 없다. 우리가 하는 건설 공사를 육지에서 수상으로 장소를 옮겨 건설하는 차이일 뿐”이라며 1972년 조선업에 뛰어들었다. 26만t급 초대형 유조선을 수주해 조선소 지으면서 선박 건조도 동시에 마치는 기염을 토했다.
그래도 일본을 따라잡기에 역부족이던 시절이었다. 당시 세계에서 건조되는 선박의 절반을 일본이 수출했다. 1970년대 후반 한 일본 언론이 ‘한국의 조선업을 진단한다’는 기사를 냈다. “한국 조선업이 결코 일본을 따라올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기사 말미에 “그러나 각 대학의 조선학과에 좋은 인재들이 많이 입학했다. 이들이 기적을 이루어내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문장을 여운처럼 달았다(박중흠 전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회고). 정부 리더십, 탁월한 기업가 정신에, 두껍게 형성된 조선업 인재들이 뭉치니 정말로 기적이 일어났다.
2000년대 들어 한국 조선업은 명실공히 세계 1위에 등극했다. 중국 조선업의 팽창으로 수주량은 1, 2위를 다투지만 고부가 선박 제작은 압도적 1위다. 트럼프의 ‘조선업’ 언급에 태동기를 떠올린 건 조선업의 특수성과 중요성을 되새기자는 의미에서다. 외화를 벌어들이는 수출 산업이기도 하지만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대한민국 수호(守護) 산업으로 출발했다. 나라의 토대를 건설한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은 일찌감치 그 중요성을 알았다.
지난해 미 해군 측이 우리나라 조선소를 샅샅이 둘러보고 갔다고 한다. 트럼프 발언이 돌발적인 게 아니라는 뜻이다. 중국이 군함을 척척 만드는데 미국의 군함 건조 능력은 급격히 쇠퇴해 위기감이 상당하다. 트럼프 2기에 조선업 분야에서 미국과 기술 협력 방안을 주도적으로 제안해 나간다면 한미 동맹의 새로운 물꼬를 터나갈 수 있다고 본다. 당연히 정부가 발 빠르게 움직여 민·관 전문가 팀을 만들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70
[강경희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