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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탈레반, 아프간 장악

“내 그림 땅에 묻어야 했다” 탈레반 탄압에 떨고 있는 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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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21년 9월 4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거리에서 한 남성이 건물 벽화를 페인트로 지우고 있다./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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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점령한지 3일만에 저는 15점의 그림을 땅에 묻었습니다” (여성을 묘사한 작품을 주로 그린 아프가니스탄 화가)

“20편이 넘는 영화가 들어있던 대용량 하드 드라이브를 숨길 곳을 찾아야 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최근 탈출한 여성 영화감독)

탈레반의 문화 탄압을 우려하는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이 그림과 책 등을 숨기거나 폐기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30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지난 20년간 서구 문화의 영향을 받아 꽃피웠던 아프간의 문화 예술이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자 빠르게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탈레반은 아직 명문화 된 문화 검열 방침을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따라 통치하겠다고 밝힌 만큼 이슬람 교리에 맞지 않는 음악·영화·방송을 금지하고 사진과 그림을 규제할 가능성이 크다. 탈레반은 1기 집권(1996~2001년) 당시 종교 음악을 제외한 모든 음악을 금지하고 바미얀 절벽에 세워진 거대 석불 입상을 파괴하는 만행을 저질러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았다.

WP에 따르면 지난달 탈레반 재집권 이후 카불의 서점에서는 성경 등 ‘불온 서적’이 자취를 감췄고, 화가를 양성하는 미술학교는 문을 닫았다. 창작자들은 스스로 작품을 폐기하거나 숨기고 있다. AP통신은 음악가들이 숨어 지내고 있으며 추적을 피하려 소셜미디어 계정을 삭제했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탈레반이 수도 카불 거리의 벽화들을 모두 지우고 흰 바탕에 이슬람 구호를 적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카불 미국대사관으로 쓰였던 건물 앞 벽화도 탈레반 깃발이 그려진 거대한 그림으로 덮였다. 카불의 거리 예술가 오메이드 샤리피는 BBC방송에 “우리의 소중한 작품들이 지워지고 있다”면서 “탈레반의 예술 탄압이 다시 시작됐다”고 했다.

[이벌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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