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8 (목)

이슈 최악의 위기 맞은 자영업

경찰, 자영업자 분향소 조문 통제… 시민들, 짜장면·치킨 보내 추모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국회의사당역 앞 인도에 분향소

“1명씩 조문하라” 통제하던 경찰

서울시가 “과한 조치” 입장내자 뒤늦게 출입인원 제한 풀어줘

17일 오전 9시 서울 영등포구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 앞. 보도블록 위에 가로 5m 세로 3m 크기의 흰색 천이 깔려 있었다. 그 위에는 ‘근조(謹弔) 대한민국 소상공인·자영업자’라고 적힌 액자와 술 한 병 그리고 향초가 꽂힌 플라스틱 컵이 있었다.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코로나 장기화로 생활고에 시달리다 잇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한 동료 자영업자들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임시 분향소다.

길바닥에 차려진 임시 분향소이지만, 이마저도 설치가 쉽지 않았다. 비대위는 16일 오후 2시 국회 앞에 자영업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합동 분향소를 설치하려고 했다. 하지만 경찰은 4개 부대를 투입해 이를 막았다. 비대위는 경찰에 막혀 7시간여를 보낸 끝에 16일 오후 9시 40분에야 약식으로 분향소를 차렸다.

조선일보

분향소 둘러싼 경찰 - 1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 인근에서 경찰 수십 명이 코로나 장기화로 생활고를 겪다 극단적 선택을 한 자영업자를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임시 분향소를 둘러싸고 있다. 이날 경찰은 오후 2시 넘어서야 현장에 배치된 경찰 수를 줄이고 출입 인원 제한도 완화했다. /박상훈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찰의 제지 속에서도 추모 행렬은 이어졌다. 임시 분향소에는 첫날 밤부터 자영업자와 시민 등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서울 강동구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김선호(43)씨는 “같은 자영업자들이 목숨을 끊는 상황이 안타까워 위로하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직접 조문하지 못한 이들은 전국 각지에서 배달 앱을 통해 음식을 보내는 방식으로 추모의 뜻을 전했다. 임시 분향소 뒤편의 벤치에 이들이 보낸 치킨, 짜장면 등 배달 음식과 과일, 커피, 소주 등이 쌓였다. 김기홍 비대위 공동대표는 “장사 마감하고 새벽에 동료 자영업자와 시민 100여 명이 분향소를 찾았다”며 “발걸음을 못하는 분들이 전국에서 음식을 보내주셨다”고 말했다. 인터넷 자영업자 커뮤니티에는 “고인(故人)들 가시는 길 배부르게 가시라고 배달 주문했습니다” “상에 올릴 수 있도록 사과, 배 보냈습니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17일 오전 시민들은 경찰의 통제로 1명씩만 분향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경찰은 분향소 주변에 펜스를 치고 2명 이상이 입장하려고 하면 제지했다. 비대위 이창호 공동대표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 분향소도 코로나 시국에 운영한 것 아니었느냐”며 “자영업자들을 대하는 정부 정책이 유독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서울시청 앞 광장에 마련된 박 전 시장의 시민분향소에는 2만여 명이 방문했다. 경찰은 당시 분향소가 서울시에서 금지한 집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지난 2월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영결식에도 1000여 명이 모였다. 당시 수도권 방역 지침에 따르면 야외라도 99명까지만 모일 수 있었는데, 경찰은 현장에서 막지 않았다.

조선일보

분향소 앞 짜장면·치킨 - 자영업자를 추모하는 임시 분향소에 짜장면과 치킨 등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시는 이날 자영업자 임시 분향소에 대한 경찰의 대응이 과하다는 입장을 냈다. 이창근 서울시 대변인은 본지와 가진 통화에서 “분향소 설치나 추모는 불법이 아니며, 낮에는 4명까지 모임을 허용하는 일반적 방역 수칙에 준해서 (분향소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영등포경찰서와 영등포구청에 전달했다”고 했다. 경찰과 구청은 책임을 떠넘겼다. 경찰 관계자는 “영등포구청에서 감염병예방법 위반으로 현장 상황 통제를 부탁해 화환 등 구조물 반입 및 설치를 막았고, 내부를 지키고 있는 비대위 인사 3명이 있어서 총 인원을 4명으로 맞추고자 1명씩 들여보냈다”고 했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사람이 많이 모였을 때 감염병이 확산될 우려가 있다고 경찰에 전했지만, 분향소를 집회로 판단하고 제지해달라는 요구는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경찰은 서울시의 입장 표명과 정치인들의 항의가 잇따르자 오후 2시가 돼서야 분향소 인근에 배치된 경찰 인력을 줄였다. 분향소 출입 인원도 비대위 측이 자율적으로 관리하도록 했다. 이날 동료 자영업자들을 비롯해 500명 가까운 추모객이 분향소를 찾았다. 비대위 측은 18일 오후 11시까지 분향소를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채제우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