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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최악의 위기 맞은 자영업

“생계 벼랑 끝” SOS경적 울렸다, 자영업자 3000명 심야 차량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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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9월 8일 오후 11시쯤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산시민공원에서 자영업자들이 비상등을 켜거나 피켓을 걸고 규제 중심의 정부 방역 정책에 반대하는 차량시위를 벌이고 있다./김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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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 나오지 못할 늪으로 우리를 던져대는 정부의 행위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차를 끌고 나왔다.”

8일 오후 11시 10분,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대교 북단에서 강변북로로 진입하는 도로로 차량 수십대가 순식간에 늘어섰다. 강변북로에 올라탄 차량들은 일제히 비상등을 켜고 시속 20~40km 수준으로 서행했다. 모두 이날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실시한 전국 동시 차량 행진 시위에 참여한 차량들이었다.

1년 6개월이 넘도록 이어지는 집합 제한 조치에 분노하는 전국 자영업자들이 밤 늦은 시각 도로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정부에 ‘위드(with) 코로나’ 전환과 영업시간·인원 제한 규정 폐지 등을 요구하며 차량 행진을 벌였다. 앞서 7월과 지난달 서울과 부산·경남에서 산발적인 차량 시위가 있었으나, 서울을 비롯한 전국 9개 시도에서 동시에 전국적인 차량 시위가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차량 시위 규모는 서울에서만 약 1000여대(주최측 추산)였다. 대다수 자영업자들은 저녁 영업 제한 시간인 오후 10시에 영업을 마치고 이날 시위에 참여했다.

◇자영업자들 “생계의 벼랑 끝으로 몰려”

서울 성동구에서 요식업을 한다는 정기태(41)씨도 이날 차량 시위에 참가했다. 정씨는 “가게 특성상 야간 영업이 끊기다보니 매출은 5분의 1 수준으로 하락했고, 원래 있던 종업원 5명을 모두 자른 채 어머니와 둘이서 가게를 운영하는 상황”이라며 “우리는 정치적인 뜻이 있는 것도 아닌 일반 시민인데, 생계의 벼랑 끝까지 몰리다보니 집회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일본식 선술집을 운영한다는 황모(40)씨는 “영업 피크 시간인 오후 11~12시 영업을 할 수가 없으니, 주말에도 30만원 벌기가 어렵다”며 “월세가 매달 150만원 나가는데, 이번에 받은 재난지원금은 250만원이라 채 2달도 못 버티는 수준”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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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자영업자비대위가 9일 오전 여의도공원 인근에서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로 생활고를 호소하며 방역지침 전환을 요구하는 차량시위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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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행진을 벌인 차량들은 이날 오후 11시쯤부터 양화대교 북단으로 모여들었다. 차량들은 앞쪽 보닛 위에 ‘코로나가 자영업자 탓이냐?’ ‘이제는 거리두기 보이콧(BOYCOTT·거부)’ ‘위드 코로나’ 등 문구를 붙였다. 일부 차량들은 모스 부호로 ‘SOS 신호’를 뜻하는 경적을 울리기도 했다.

차량시위는 양화대교 북단, 강변북로, 한남대교, 올림픽대로를 차례로 지나는 동선으로 진행됐다. 차량들은 자정을 넘겨 최종 집결지인 여의도로 진입하는 길에서 경찰 검문에 막혔다. 경찰이 차량 한 대씩 검문하며 차량 통행을 막았고, 이에 반발하는 운전자와 경찰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집회를 주최한 비대위는 “자영업자는 지난 1년 6개월간 66조원이 넘는 빚을 떠안았고 45만3000개 매장을 폐업했다”며 “손실 보상이라고는 GDP 대비 OECD 평균 16.3%에 훨씬 못 미치는 4.5%뿐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코로나 정책 수립에 자영업자의 의견을 반영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시위 현장엔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가 참석해 “정부는 자영업자들의 협조 정신을 악용해 확진자 숫자에만 연연하는 정치 방역을 고수하고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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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들이 차량 집단 시위를 예고한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양화대교 북단에서 경찰이 한남대교 방향 강변북로를 통제한 가운데 차량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차량들은 경찰을 피해 깜빡이를 켜거나 클락션을 울렸다. 2021.9.8. / 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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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경찰은 차량 시위 동선 곳곳에 경찰 오토바이와 순찰차를 배치하고 시위를 통제했다. 현행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에서는 1인 시위를 제외한 모든 종류의 집회·시위가 금지된다. 경찰은 비대위의 차량 시위 역시 불법 집회로 보고 있다. 서울교를 비롯한 여의도 진입로에서 경찰은 “비대위의 차량 시위는 미신고 집회로 감염병예방법 위반에 해당하니 회차해서 해산하라”라고 방송했다.

◇광주·전주 등 전국 각지에서도 차량 시위

서울 뿐만 아니라 지방 각지의 자영업자들도 ‘심야 차량 시위’에 동참했다. 이날 광주광역시의 자영업자들은 오후 11시부터 광주 서구 치평동 가정법원부터 홀리데이인 호텔 앞까지 총 5.5㎞ 길이의 거리에서 차량 시위를 했다. 동원된 차량은 40여대였다. 이들은 “다수의 안전을 지킨다는 정부의 방역수칙 원칙으로 자영업자는 계속해서 희생되고 있다”며 “우리의 자유와 재산,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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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광주 서구 시청 인근 도로에서 광주 자영업 비상대책위원회 주관으로 자영업자들이 정부의 영업 제한에 반발하는 차량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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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1시 10분쯤 전북 전주시 완산구 서부신시가지 도로에서도 비상등을 켠 차량 30여대가 도심 중심가를 지나쳐갔다. 전주대학교에서 출발한 시위 차량은 신시가지와 전북도청, 완산구청, 전주시청 등을 순회했다. 최수호 자영업비상대책위원회 전북지부장은 “코로나가 저녁에만 활동하는 것이 아닌데 왜 저녁 영업시간을 제한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전에서도 대전시청 주변에서 약 40대 규모의 차량 시위가 진행됐다.

비대위에 따르면, 자영업자 1000명 이상이 모여 있는 소셜미디어 단체 대화방에서는 매일 극단적 선택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고 한다. 비대위 관계자는 “단순히 ‘힘들다’ 정도가 아니라, 최악의 선택을 하겠다는 사람이 많다”며 “1년 반 동안 희망고문을 당하며 살았는데, 더는 이렇게 못 산다”고 말했다.

[강우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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