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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난민과 국제사회

[이상언의 '더 모닝'] 난민 문제를 논할 때 우리 과거도 한 번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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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하미드 카르자이 공항에서 해외로 탈출하기 위해 기다리는 한 가족의 아이를 미군 병사가 안고 있다. [AP=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오늘은 아프가니스탄 난민 수용 문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영국 버밍엄에서 해마다 ‘크러프츠(Crufts) 도그 쇼’가 열립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1886년에 시작), 가장 큰 명견 경연대회입니다. 이 행사의 주요 후원자 중 하나가 삼성전자입니다. 대형 컨벤션센터 곳곳에 삼성전자 로고가 걸립니다. 1993년에 후원을 시작했으니 어느덧 30년 가까이 됐습니다.

2013년에 그곳에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영국인이 기르는 진돗개가 출전해 눈길을 끌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저는 고(故) 이건희 회장의 개에 대한 애정 때문에 삼성전자가 후원을 시작하게 됐으리라고 추측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뜻밖의 삼성 관계자 설명을 들었습니다. 사연은 이랬습니다. 〈90년대 초에 삼성전자가 유럽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는데 동물보호단체 등이 ‘개 먹는 나라의 상품’이라며 불매운동을 벌였다. 한국인 모두가 개를 먹는 것은 아니고, 함께 사는 반려견을 먹는 것도 아니라고 해명을 해도 잘 먹히지 않았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고 크러프츠 후원이 그중 하나였다. 삼성은 개를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삼성전자 유럽 수출품이 TV, 전자레인지 등의 중저가 가전제품이었습니다. 일본이나 독일 제품에 비해 디자인이나 성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가성비’가 좋아 팔리는 상품인데, ‘개 먹는 사람들이 만든 물건’이라는 이미지가 드리워졌으니 수출 역군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보신탕' 문화에 따른 한국인 멸시가 아주 오래된 과거의 일만도 아닙니다. 제가 프랑스와 영국에 특파원으로 있을 때도 이따금 “아직도 한국인은 개를 먹나?” “너도 개를 먹나?” “개 먹어 봤나?” 등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개를 보면 잡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나?"라고 묻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당신들은 비둘기, 달팽이를 먹는다. 비둘기를 보면 먹고 싶은가? 문화의 차이일 뿐이다”고 쏘아붙여 보이고 하고, “요즘에는 개고기 먹는 사람이 별로 없다”며 타협적 답변을 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이민 1세대들의 ‘가정 폭력’도 한국인 이미지를 어둡게 했습니다. 남편이 부인을, 아버지가 자식을 상습적으로 심하게 때려 경찰에 붙잡혀 갔다는 게 현지 언론에 종종 보도됐습니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우리는 가정 폭력에 매우 관대한 민족이었습니다. ‘명태와 여자는 두드려야 부드러워진다’ ‘매 끝에 정 붙는다’ 등의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폭력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남존여비’ 를 굳게 믿고 여성을 차별하고 무시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가정 폭력은 해외 거주 한국인의 이미지를 나쁘게 했습니다. 게다가 한국인 특유의 생활력과 문화도 현지인들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한국인은 악착스럽게 돈을 벌고, 이웃에 인색하고, 자신들도 마이너리티면서 다른 마이너리티들을 깔본다는 비난을 들었습니다. 한인 상점이 주요 타깃이 됐던 1992년 ‘LA 폭동’을 기억하시죠? 그 뒤로 한인들도 많이 달라졌고, 지역 공동체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과거의 나쁜 이미지를 많이 털어냈다고 합니다.

한국인도 과거에 해외에서 결코 환영받지 못한 이방인이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 오래된 과거도 아니고 어쩌면 지금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꽤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착한 이들도 조화롭게 사는 법을 배우고, 현지인들의 한국인과 한국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졌습니다. 서로 공존의 길을 찾은 것입니다.

한국에서 난민 문제를 꺼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난민 수용에 찬성하는 의견을 내면 정치인이든, 기자든 ‘비난 폭격’에 시달리게 됩니다. 하지만 서로 이야기하고 답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만 담쌓고, 빗장 걸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는 나라의 등급이 너무 올랐습니다.

먹고 살기 어려워서, 정치적 문제 때문에 미국과 유럽 등에 체류(상당수는 불법으로)하다가 정착한 한인 이민 1세대들도 큰 틀에서는 난민이었습니다. IMF 사태 속에서 외국으로 떠난 ‘경제적 난민’도 많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한국에서 해외로 보내진 수많은 입양자들도 경제적, 문화적 난민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김구 선생님도, 김대중 전 대통령도 한때 난민이었습니다.

한국의 아프가니스탄 난민 수용 문제를 살핀 기사를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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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선 철로에 사람 밀었대" 아프간 난민 놓고 '자극' 판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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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국외 탈출을 위해 주민들이 담을 넘어 공항으로 들어가고 있다.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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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피란민을 한국 등 미군기지에 수용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온라인에서 찬반 논란이 격화하고 있다. 일부 커뮤니티는 이전에 난민을 수용했던 유럽 국가들의 피해 상황을 공유하면서 난민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난민 받지 말아달라” “시위 나설 것”

23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슬람 학생이 표현의 자유를 가르친 프랑스 교수를 참수한 사건, 독일에 정착한 난민이 독일인 모자를 철로에 밀어 사망하게 한 사건 등 자극적인 사례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여기에는 “무슬림은 종교가 아니라 범죄집단” “난민 받으면 코로나고 뭐고 바로 시위할 것”이라는 원색적인 비난이 빗발치는 상황이다. 난민들이 주한미군 기지에 머무르게 돼도 결국엔 한국에 난민 신청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슬람 율법상 여성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난민을 받게 되면) 최대 피해자는 여성” “이슬람 사람들은 여자를 사람을 보지 않는다”는 반발이 나왔다. 30대 여성 A씨는 “한국은 불법체류자, 외국인노동자 관리도 안 되고 있지 않냐”며 “우리 인권을 우선시하자는 취지에서 자기 방어하는 사람들에게 인종차별 프레임을 씌우는 것도 이해 안된다”고 강조했다. 지난 2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난민 받지 말아 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와 하루도 안 돼 6300명이 동의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한국리서치와 지난해 12월 국내 성인남녀 10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난민 수용 반대 여론은 53%, 찬성은 33%로 집계됐다.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사태’ 당시 찬성 비율인 24%보다 개선됐지만, 여전히 낮은 수치다. ‘난민 반대’의 이유로는 경제적 부담(64%), 범죄 등 사회문제 우려(57%) 등이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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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청사 앞에서 재한 아프가니스탄 시민들이 탈레반 정권으로 넘어간 아프가니스탄 내 가족 구출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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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권, 한국 문화 동경한다”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여론에 반론을 제기하는 네티즌들도 있다. “우리도 전쟁을 겪으면서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은 민족 아니냐”“지리상 몇만명이 올 것도 아니고 어느 정도는 받아도 된다고 본다”면서다. 여성 인권 문제에 대해 한 네티즌은 “국회의원이나 장관을 여성으로 뽑은 나라도 여럿 있는 걸로 안다. 아프간에 여성 교육부 장관, 최연소 시장도 있지 않냐”며 “무조건 덮어두고 반발하는 식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고 반박했다. 직장인 김모(32)씨는 “우리 정부에 협력했던 난민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탈출을 도와주는 게 맞다고 본다”며 “아직 국내에서는 ‘무슬림=테러’로 보는 시선이 많은 것 같다. 종교가 문제가 아니라 근본주의자들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특훈 교수는 난민 수용이 선택이 아닌 기본적 책무라고 주장했다. “아프간 난민은 미국과 탈레반의 평화협상 결실로 생겨났기 때문에 대규모 난민은 일어나긴 힘들 것”이라며 “우리 정부와 협력했던 아프간 사람은 받아주는 것이 국제적인 상식이고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3년 전 들어와 소일거리를 도우며 지역 사회에 적응, 정착한 예멘 난민들이 긍정적인 사례로 언급되기도 한다. 서선영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가 2018년 7월부터 예멘 출신 난민들의 일상 생활공간에서의 참여관찰ㆍ인터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이들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존재’ ‘한국의 시스템을 잘 따르는 존재’가 되기 위해 스스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문화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예멘 난민 수용 당시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지만, 현재 90% 이상이 한국 젊은이들과 일자리가 겹치지 않으면서 일자리를 잡고 지내고 있다”며 “범죄 소식 없이 건강한 구성원으로서 소리 없이 동화되어 잘살고 있다. 나라가 안정돼 이들이 조국으로 돌아가면 나라 간 교량 역할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슬람권에서 한국 이미지는 최고다. 드라마 대장금 시청률이 60~70% 차지했고, 요새는 BTS 모르는 아이들이 없을 정도로 한류에 열광하고 한국을 동경한다. 적대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며 “그러나 우리는 이들을 제대로 알려고 노력하지 않고, 배척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권혜림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

이상언 기자 lee.sang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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