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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시론] 간첩죄 적용 대상, ‘외국’으로 확대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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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제1 소위원회에서 최근 매우 의미 있는 법안이 다뤄졌다. ‘적국’으로 한정됐던 형법 제98조 간첩죄 적용 대상에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가 추가된 간첩법 개정안이 의결됐다. 세계적으로 이례적이었던 한국 형법의 간첩죄 적용 범위가 무려 71년 만에 ‘글로벌 표준’으로 개선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서울 송파구의 한강 변 중식당이 중국의 해외 비밀경찰서로 수사에서 드러났지만, 소유주인 중국인 A는 업무상 횡령 혐의로만 검찰에 송치됐다. 1억6000만원을 받고 민감한 기밀인 블랙 정보 요원들의 명단을 무더기로 중국에 유출한 정보사령부 군무원 B는 간첩죄 적용이 안 되면서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4조3000억원의 가치가 있는 첨단 기술을 중국에 유출한 전 대기업 임원 C는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으로 송치됐다. 드론으로 국가정보원 주변을 촬영하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된 중국인 관광객 D는 하루 만에 석방됐다.



글로벌 스탠더드로 개선했지만

간첩 수사 기능 강화해야 실효

정보기관 간첩수사권 부활해야

중앙일보

위에서 언급한 A, B, C, D 사례는 간첩으로 처벌하는 것이 국민 정서로나 글로벌 표준에 맞는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현행 형법에 따르면 이들을 간첩으로 처벌할 방법이 없다. “이게 나라냐”, “대한민국은 국가 자존심도 없느냐”, “산업 스파이는 걸려도 남는 장사인가” 등 여론이 들끓었다.

중국의 반도체 기업에 근무하던 한국 교민 E가 간첩 혐의로 중국 국가안전부(MSS)에 체포됐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탈북자를 지원하던 한국인 선교사 F도 간첩 혐의로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에 체포됐다. 국정원 화이트 요원들과 10여 년 접촉해오던 한국계 대북 전문가 수미 테리가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위반 혐의로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됐다.

이런 소식이 나오자 “국익 앞에 동맹도 우방도 필요 없다”, “한국 사람이 봉이냐”, “우리도 러시아 간첩 한 명 잡아라”, “우방국은 있어도 우호적인 간첩법은 없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를 성토하는 주장이 들끓었다.

정쟁 속에 뒷전으로 밀리고 수차례 폐기된 형법 제98조(간첩죄 조항) 개정안이 이번 22대 국회 들어 무려 18건이나 발의됐다. 국민의힘 12건, 민주당 6건이었다. 민심이 천심이란 말처럼 국회가 도도한 여론을 더는 묵살하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여야 모두 북한을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면서 외국의 간첩 행위에 강력한 대응 의지를 보여줬다. 많이 늦었지만, 여야가 국가 이익과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단결된 노력을 보여준 것은 고무적이다.

법안심사 소위를 통과한 형법 개정안은 법사위 전체 회의와 본회의를 거쳐 6개월 뒤면 효력이 생긴다. 그러나 개정안이 시행되더라도 실질적 효과를 기대하려면 간첩 수사 기능도 함께 강화해야 한다. 간첩죄의 범위 확대는 긍정적 변화임에 틀림없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강력한 수사 기능이 없다면 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

간첩죄 범위를 글로벌 표준으로 개선했으니, 간첩 수사 기능도 글로벌 표준으로 조속히 개선해야 한다. 간첩 수사에서 정보기관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미국·중국·러시아에서 간첩 혐의에 연루된 우리 교민·교포는 모두 그 나라 정보기관이 체포했다. 간첩 범위가 외국으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정보기관의 협력 없이 간첩을 잡겠다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찾기보다 더 어렵다.

지난 2018년 국회 정보위원회가 82개국 정보기관의 간첩 수사권을 조사했다. 미국·중국·러시아·프랑스·이스라엘·캐나다 등 52개국이 수사권을 갖고 있다. 영국·독일·일본·멕시코 등 19개국은 조사권만 있었고, 11개국은 수사권도 조사권도 없었다. 간첩 수사는 정보기관이 수사권을 갖는 것이 글로벌 표준에 가깝다. 적어도 한국처럼 경찰이 간첩 수사를 전담하는 지금 방식은 글로벌 표준이 아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이번 간첩법 개정을 통해 안보에 여야가 따로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헌정사에서 처음 개정되는 간첩법이다. 개정 간첩법이 실효성을 갖도록 여야가 힘을 모아야 한다. 1953년 간첩법 제정 이후 2000명이 넘는 간첩이 검거됐다. 안보·정보·기술 등 지킬 것이 많아진 대한민국이 후진국 수준의 간첩 수사에 머물러서야 되겠는가.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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