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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JFK와 시작하고 JFK로 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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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백두산으로-4] JFK와 함께 베를린 삶을 시작했다. 연구하게 된 곳이 자유대학의 JFK연구소였고, 도서관 입구에 놓인 그의 얼굴 조각상(彫刻像)을 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자연 그에게 관심이 갔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직후 동·서베를린 통과지점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에서 미군과 소련군 탱크 수십 대가 대치하며 전쟁 일보직전까지 갔었던 상황을 케네디 대통령이 어떻게 돌파했는지, 그 체험을 바탕으로 이듬해 발생한 쿠바 미사일 위기 사태도 어떻게 단호하게 극복했는지 자세히 살펴보았다.

가장 가슴에 와 닿은 것은 공산주의 진영에 그렇게 당당하게 맞선 후 1963년 6월 26일 찾은 서베를린에서 행한 그의 연설이다. 전 세계 공산주의국가와 공산주의자에게 자유가 무엇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지키기 위해, 동독 내에 외로이 고립되어 수많은 고통을 겪고 있는 서베를린 시민이 바로 자신이고, 자신도 이들과 함께한다는 의미에서 행한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Ich bin ein Berliner)"가 가슴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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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베를린에서 연설하는 케네디 대통령과 당시 서베를린 시장이자 6년 후 수상이 된 빌리 브란트(오른쪽 끝) / 사진=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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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한 케네디 대통령에게 감사하며 서독이 발행한, 1963년 6월 26일자 서베를린 소인이 찍힌 엽서 / 사진=손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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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심장을 파고든 것은 뒤이은 그의 "세상에는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사이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정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고, 모르는 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들에게 베를린에 와보라고 합시다(There are many people in the world who really don't understand, or say they don't, what is the great issue between the free world and the communist world. Let them come to Berlin)" "자유는 불가분합니다, 그렇기에 한 사람이라도 노예 상황에 있는 한 모두가 자유롭지 않습니다(Freedom is indivisible, and when one man is enslaved, all are not free)" 연설이다, 한반도와 북한 주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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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5개월 후인 1963년 11월 22일 암살당한 케네디 대통령을 추모하며 서독이 1주기에 발행한 엽서 / 사진=손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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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후 한반도 평화 정착, 국가 성장과 통일 준비를 위해 DMZ를 바꾸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DMZ 평화적 이용을 시작할 때, 그의 연설이 든든한 디딤돌이 되었다. 그가 마주 섰던 베를린장벽은 한반도의 DMZ이고, 그가 함께한다고 선언했던 자유의 최전선에서 고난을 이겨내는 서베를린 시민이 우리 접경지역 주민이다.

케네디의 "2000년 전 가장 큰 자랑거리는 '나는 로마 시민이다'였습니다. 오늘, 자유 세계에서, 가장 큰 자랑거리는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입니다(Two thousand years ago the proudest boast was 'civis romanus sum'. Today, in the world of freedom, the proudest boast is 'Ich bin ein Berliner')"를 가슴에 안고 DMZ유엔환경기구 유치, DMZ세계평화공원 조성, DMZ유엔평화대학교 설립을 국가전략으로 제안하였다.

한반도는 물론이고 동북아, 나아가 세계 화약고가 될 수 있는 DMZ·접경지역에 평화의 회복·유지·확산을 배우는 '평화사관학교'를 만들려는 DMZ유엔평화대학교를 제안하면서, 그날이 반드시 올 것을 기원하고 다짐하면서 개교 축사를 미리 준비하였다. 당연히 케네디 베를린 연설의 정신과 의지가 그 바탕이다.

"'DMZ유엔평화대학교'의 개교를 선언합니다.

참으로 감개무량합니다. 국민 여러분, 세계 시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우리가 흘렸던 땀과 눈물이 이제 마침내 결실을 맺었습니다.

저는 동서 간의 냉전이 가장 치열했던 1963년 6월 26일 유럽에서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장벽을 방문하여 자유와 민주주의와 평화를 연설했던 존 F 케네디의 의지와 염원을 담아 오늘 DMZ유엔평화대학교의 개교사에 대하고자 합니다.

2000여 년 전에 '나는 로마 시민이다'가, 58년 전에는 '나는 베를린 시민이다'가 가장 자랑스러운 말이었습니다. 지금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가장 자랑스러운 말은 '나는 DMZ 시민이다'입니다.

오늘 남북한은 유엔과 국제사회의 협조와 지지를 통해 DMZ에 조그마한 문을 엽니다. 이곳 DMZ에 유엔평화대학교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평화에 대한 믿음과 소명의식을 가지고 평화를 이끌고자 노력한 모든 사람의 결실이 이제 뿌리를 내립니다. 그리고 DMZ 전역에, 한반도 전역에, 동북아 전역에 이 평화의 나무가 뻗어 자라나가도록 다시 씨를 뿌립니다.

DMZ로 오십시오. 평화로울 권리, 지속적인 평화 속에서 살 권리를 원하고 노력한 모든 사람은 이제 DMZ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DMZ 시민권자 여러분, 평화란 불가분의 것입니다. 지구상 단 하나의 국가가 평화롭지 못하면 모든 국가가 평화롭지 못한 것입니다. 유엔평화대학교가 우뚝 선 이곳은 DMZ 내의 조그만 평화의 섬입니다. 이 섬이 DMZ 전역으로 커지고 이어져 육지가 되고, 대륙으로 이어지도록 여기서 꿈을 꿉시다. 오늘은 DMZ유엔평화대학교만이 평화이고 자유이나, 내일은 DMZ 전역이, 한반도와 동북아 전역이 평화와 자유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희망을 바라보며 힘을 얻읍시다.

한반도의 모든 사람이 평화와 자유를 누리는 날, 비로소 이 한반도가 평화롭고 희망에 찬 이 지구상의 모든 국가와 결합할 수 있을 것입니다. DMZ를 넘어, 지구상 모든 곳에서의 평화와 자유를 꿈꾸십시다.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DMZ의 철조망을 넘어서 전 인류의 평화와 자유를 생각하십시다. 마침내 그날이 오면, 오늘 우리가 DMZ유엔평화대학교의 개교를 맞아 DMZ의 시민이 되었다는 그 사실을 가장 크게 자랑스러워할 것입니다.

평화와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은 그들이 어디에 있건 DMZ의 시민입니다. 모두 함께 외칩시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DMZ 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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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4일 유엔 데이(UN day)에 필자가 개최한 DMZ유엔평화대학교 출범 학술회의 / 사진=손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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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6월 어느 날 낮 12시, 두 시간에 걸친 구두 심사를 마치고 문밖을 서성이고 있었다. 지도교수님이 "Dr. 손 들어와"라 하면 통과고 "Mr. 손 들어와" 하면 절망이다. 문이 열리고 따스한 음성이 들렸다. "Dr. 손 들어오세요."

점심을 같이하자는 교수님들의 권유를 사양하고, 내리쬐는 태양 아래 나른하고 한산한 중심거리 '쿠담'에 나섰다. 쉬고 싶은 마음뿐인데, JFK가 눈에 확 들어왔다. 영화 내용도, 올리버 스톤 감독도 몰랐고, 반가운 마음에 영화관에 들어섰다.

영화가 끝나면서 왕방울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3년의 각고 끝에 오늘 마친 논문에 담긴, 전쟁의 원인과 평화에의 염원을 이 영화는 전 세계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다가갈 수 있는 반면에, 독일어로 쓰인 내 글을 누가 읽어줄 것이고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가란 자괴감(自愧感)도 있었지만, "정의를 추구하는 젊은 영혼에게 바친다"라는 영화 헌정사가 마음을 울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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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스톤이 감독한 영화 JFK 포스터


그렇게 살고자 다짐했고, JFK 영화와 함께 베를린 삶을 마감했다. 그때의 젊은 영혼은 '올 백(白)'이 된 지금도 냉엄(冷嚴)한 분단을 마주하고 있다. 영화의 영어판을 보니 '정의'(Gerechtigkeit)가 아닌 '진실'(Truth)이었지만, 그 감동과 각오는 여전하고 분단의 경계를 여전히 걷고 있다.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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