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 증산 합의 불발…물가 비상
지난 2019년 미국 텍사스주의 한 석유 탱크에 경고 문구가 붙어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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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붙은 인플레이션 우려가 활활 타오를 기세다. 국제유가가 3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으면서다. 유가가 ‘인플레 파이터’인 중앙은행의 긴축 본능을 제대로 깨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회복의 기지개를 켜는 세계경제에 먹구름이 짙어졌다. 지난 5일(현지시간) 런던ICE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가격은 전날보다 1.3% 오른 배럴당 77.16달러를 기록했다. 서부텍사스유(WTI)도 전날보다 1.6% 상승한 배럴당 76.34달러를 기록했다. 2018년 10월 이후 약 3년 만의 최고치다.
국제유가가 오른 건 증산을 둘러싼 산유국 간 이견 때문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23개 산유국의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가 합의안 도출을 위해 이날 회의를 열려고 했지만 아예 취소됐다.
국제 유가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
판이 깨진 건 만장일치가 원칙인 OPEC+ 회의에서 아랍에미리트(UAE)가 잠정합의안에 끝까지 반대했기 때문이다. OPEC+는 8월부터 하루 평균 산유량을 매달 40만 배럴씩 늘려 12월엔 200만 배럴까지 증산할 계획이다.
석유 맹주 사우디에 UAE 반기, OPEC+ 증산 회의 무산 … 세계 경제 먹구름
여기엔 UAE도 찬성한다. 의견이 엇갈린 건 석유생산할당량(쿼터)이다. UAE는 자국의 쿼터를 높여 달라고 요구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에 반대하고 나서며 논의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김소현 대신증권 투자전략가는 “사우디와 UAE의 갈등이 장기화하면 국제유가의 추가 상승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2014년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까지 업계에서는 나온다. 석유 수요는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는데 공급을 늘릴 주체가 사실상 OPEC+밖에 없어서다. 미 셰일가스는 친환경 정책을 강조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 취임 이후 생산이 정체되고 있다.
국제유가의 급등은 소비 회복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물가 상승의 기폭제가 되면서 각국 중앙은행의 긴축 시간표를 당길 수도 있다. 미 백악관이 이례적으로 OPEC+ 산유국 간 합의를 촉구한 이유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제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올라 생기는 물가 상승은 기업 실적 악화와 가계 부담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사우디와 UAE의 줄다리기로 국제유가가 일시적으로 오를 수는 있지만 상황이 크게 나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OPEC 내부의 분열이 산유국 간의 생산 경쟁으로 이어지며 유가 하락을 부추기면 모두에게 손해가 될 수 있어서다. 진종현 삼성증권 연구원은 “사태가 장기화하는 것은 사우디나 UAE 모두 지양할 것”이라며 “한 달 내로 증산에 합의하고 감산 일정 연장만 추후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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