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로 들려온 하남시 덕풍동 A공인중개소 관계자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지난 몇 년간 전세 수요가 급증한 데다, 최근 재건축 이주 수요까지 겹치며 하남 원도심 내 아파트 전세 매물이 씨가 말랐다. 어쩌다 나오는 매물이 있으면 곧바로 계약되기 때문에 전세 매물 자체가 ‘부르는 게 값’이라는 설명이다.
경기도 하남시 전세 시장이 심상찮다. 3기 신도시(하남 교산) 청약 대기 수요와 더불어 서울 전세 난민이 대거 이주해 오면서 하남시 아파트 전세 가격이 크게 뛰고 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들은 “전세 물량 자체가 없을뿐더러 간혹 1~2개씩 매물이 나와도 임대인이 원하는 가격대로 거래되기 때문에 가격이 급등했다”고 사정을 전한다.
하남 미사 역세권인 ‘미사강변호반써밋’ 단지 전경. <윤관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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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셋값 급등한 하남
▷1년 만에 50% 올라
KB부동산의 리브온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올해 5월 하남시 3.3㎡당 아파트 전셋값은 1865만3000원으로 나타났다. 1년 전(1245만2000원)과 비교하면 무려 49.8% 상승했다.
평균 상승률은 약 50%지만 지역이나 단지별로 살펴보면 2배 가까이 오른 곳도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하남 신장동 ‘대명강변타운’ 전용 84㎡ 전셋값은 지난해 1월 3억1000만원에서 12월 6억원으로 두 배 가깝게 뛰었다. 하남시 덕풍동 덕풍현대 전용면적 59㎡는 지난해 5월 13일 2억원(17층)에 전세 거래가 이뤄졌지만 올해 5월에는 3억8000만원에 계약이 체결돼 1년간 90% 상승했다.
신축 아파트가 많고 거주 선호도가 높은 위례신도시의 경우 전세 가격이 10억원을 넘어선 곳도 다수다. 위례엠코타운센트로엘은 전용 98㎡의 전셋값이 지난 5월 11억원을 찍었다. 1년 전만 해도 같은 면적 물건이 6억~7억원에 거래됐다. 위례롯데캐슬에서는 지난 4월 전용 84㎡의 전셋값이 10억6700만원에 계약됐다.
미사강변도시에서는 전용 84~102㎡ 규모 중형 아파트의 경우, 전세 가격이 대부분 8억~9억원에 거래되고 있다. 풍산동 ‘미사강변센트럴자이’ 전용 102㎡는 6월 9억원에 전세 계약됐다. 미사강변호반써밋플레이스 전용 99㎡는 6월 초 8억5000만원에 전세가 체결됐다. 더샵리버포레 전용 89㎡ 전셋값은 8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최근 전용면적 84㎡ 기준 신축 아파트 전세 호가는 10억원에 이른다. 모두 1년 전만 해도 5억~6억원에 거래되던 단지들이다.
하남 전세 급등 이유는
3기 신도시 수요에 지하철 개통
하남 전세 가격이 이렇게 급등한 이유는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나눠 분석할 수 있다.
먼저 수요 측면에서는 지난해 8월 지하철 5호선 연장선 개통 효과를 들 수 있다. 5호선 연장 하남선 1단계 구간인 미사, 하남풍산, 하남시청 등이 개통하면서 하남시의 서울 접근성이 크게 개선됐다. 미사역을 통해 지하철을 이용하면 서울 잠실까지 약 20분 만에 도착할 수 있다. 교통 체증 영향을 받지 않는 철도 개통에 서울로 출퇴근하는 이들 수요가 몰려들었다는 분석이다.
3기 신도시 청약을 위해 실거주 요건을 채우려는 전세 수요가 지속적으로 유입된 것도 하남시 전셋값 상승에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청약일정 알리미 서비스’를 신청한 18만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3기 신도시 중 가장 인기 있는 지역으로 하남 교산(20%)이 꼽혔다. 하남 교산은 과천(18%), 고양 창릉(17%), 남양주 왕숙(15%) 등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교산신도시는 교산동, 천현동, 춘궁동, 상사창동, 하사창동 일대 조성된다.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하남에서 청약 1순위가 되려면 의무 거주 기간 2년을 충족해야 한다. 또 무주택 기간이 길어야 당첨에 유리하므로 청약 대기 수요가 전세 수요로 몰리고, 전세 계약 기간 만료 이후에는 대부분 재계약에 나선다. 하남 교산 청약 대기자들이 자연스레 하남 전세 시장에 유입되면서 하남 전세 매물 품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세 수요는 급증하고 있는 반면 공급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전월세신고제·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제를 핵심으로 하는 임대차 3법이 시행되면서 전세 공급 자체가 대폭 줄었다. 전월세상한제는 5% 이내에서 보증금 상승폭을 제한하는 법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2년 동안 최소 5% 수준은 올려야 한다는 인식을 집주인에게 심어줬다. 당초 취지와 다르게 전세 보증금을 올리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임대차 3법에 대한 부담으로 전세 가격을 크게 높이거나 반전세로 전환하는 집주인이 크게 늘었다.
게다가 법인이나 민간 임대 사업자 규제가 대폭 강화되면서 민간 전세 임대 물량이 크게 줄었다. 민간 임대 공급이 감소하다 보니 지역별로 전세 물건을 찾는 것이 어려워졌다.
즉, 하남시 전셋값 급등은 결국 수요는 크게 늘어난 반면, 공급은 줄면서 발생한 기본적인 경제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3기 신도시 청약 수요 둔화
하남시 아파트 전세 가격이 앞으로도 고공행진을 이어갈까.
전문가들은 불안 요인과 기대 요인이 공존한다고 입을 모은다.
불안 요인은 바로 재건축 이주 수요다. 서울 강남권 주요 재건축 단지가 이주를 시작하면서 강남과 가까운 경기도 전세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최근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2120가구)부터 신반포18차(182가구), 반포주공1단지 3주구(1490가구) 등이 이주에 나서고 있다. 하반기 이주 예정인 신반포 18·21차 등을 포함하면 서울 서초구 내 이주 수요만 약 5000가구에 달한다. 이주 수요가 급증하면서 서초구는 물론 서울 송파구와 강동구는 물론 경기도 하남시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전세 시장이 안정될 수 있는 기대 요인도 있다.
그동안 하남시 전세가 들썩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3기 신도시 청약 대기 수요다. 이미 많은 이들이 하남시로 이사를 마쳤다는 점에서 유입 수요는 조금씩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이르면 올해 말, 본격적으로 2022년부터 3기 신도시 사전 청약 입주자를 모집한다는 계획이다. 최대한 빨리 공급해 무주택자 불안 심리를 줄이겠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하남시에서 1순위 요건을 갖추려면 적어도 2년 이상 거주해야 한다. 따라서 예상대로 3기 신도시 청약이 진행된다면 올해 하반기 이사를 간다고 해도 사전 청약에서 1순위 요건을 갖추기는 불가능하다. 즉, 3기 신도시 청약을 위한 수요는 지금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올해 하남시 입주 물량이 많다는 점 역시 전세 시장 안정화에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하남시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약 1만가구. 지난해와 비교해 무려 2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다만 내년 이후 3기 신도시 입주 전까지 입주 물량이 줄어든다는 점은 또 다른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하남 아파트 전세 가격은 지난해 하반기 급등했지만 올해 들어선 다소 안정세에 접어들고 있다”며 “학군과 3기 신도시 사전 청약을 위한 전세 시장 유입이 마무리된 데다, 앞서 급등한 전세 가격에 대한 부담으로 수요자 관망세가 이어지는 모습이다. 입주 물량이 6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예정돼 있어 전세 가격이 안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강승태 감정평가사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16호 (2021.07.07~2021.07.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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