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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 (토)

혼란스럽지만 아름다운 ‘복수’…성장영화 ‘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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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 주순 감독의 중국영화 17일 개봉

한겨레

영화 <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 스틸컷. 싸이더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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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살해된 지 3년, 자허(등은희)의 삶은 망가졌다. 도축장에서 일하는 아빠는 알코올 중독자가 됐고, 자신은 친구들로부터 가축 냄새가 난다며 ‘왕따’를 당한다. 삶의 그루터기가 돼주었던 엄마는 기억으로만 남아, 어린 자허에게 상실감을 안긴다.

남루한 삶을 이어가던 자허는 아버지를 따라 간 자동차 정비소에서 엄마를 죽인 살인범 유레이(이감)를 목격한다. 법정에서 그를 본 적이 있던 자허는 그의 때이른 출소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소년수라 감형돼 세상으로 나온 유레이는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을 배우며 지내고 있던 것. 그날부터 유레이의 뒤를 쫓는 자허는 우연한 기회에 유레이를 비롯해 친구들과 어울리게 된다. 돈 많은 남자와 재혼한 유레이 엄마는 돈으로 엄마 노릇을 대신하려 하고 유레이는 그런 엄마를 멀리한다. 교과서를 보면서 흐릿하게나마 진학의 꿈을 꾸는 유레이는 자허에게 ‘자신의 삶이 우연히 기차를 탄 뒤 거대한 사건에 휘말린 영화 속 주인공 같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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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 스틸컷. 싸이더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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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엔 온통 엄마의 복수 생각뿐이었던 자허는, 착한 성정에 가엾어 보이는 유레이를 보면서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그 즈음 유레이와 친구들, 자허는 정비소에 맡겨 놓은 고객의 차를 타고 근교 바닷가로 소풍을 떠나 행복한 한때를 보낸다. 돌아오는 길, 정비소 사장의 느닷없는 출현에 유레이는 정비소에서 쫓겨나고, 자허는 잠적한 유레이를 찾아나선다.

17일 개봉한 신예 주순 감독의 <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은 복수극 형식으로 혼란스럽고도 아름다운 성장의 이야기를 풀어낸 중국 영화다. 유레이에게 복수해야 한다는 마음과, 유레이를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자허 안에서 충돌하는 과정을 통해 영화는, 마치 이러한 복잡한 상황이 성장기의 통과의례라고 말하는 듯하다. 딸의 학비 마련을 위해 다시 프로레슬링을 시작한 아빠가 후배와 코치에게 모멸당하는 상황을 몰래 바라보던 자허는, 늦은밤 아빠에게 레슬링을 배우며 아빠의 상처를 끌어안게 된다. 결국 성숙이란 내면의 욕구를 다스리고 타인에 대한 포용을 늘려나가는 일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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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 스틸컷. 싸이더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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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는 강렬한 소재는 물론 작품성과 인상적인 연기로도 주목을 받았다. 제22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감독상과 제23회 상하이국제영화제 신인여우상을 받은 이 영화는, 무엇보다 등은희의 호연으로도 눈길을 끈다. 엄마를 죽인 소년을 만나게 되면서 분노와 방황의 시기를 보내는 자허의 이중적인 내면을 매끄럽게 연기한 등은희는, 마치 <소년시절의 너>(2019)에서 주동우의 어린 시절과 같은 외모로 놀라움을 준다. 새로운 아시아 스타 탄생이라 할 만하다. 또한 자허의 엄마를 죽인 소년 유레이 역으로 출연한 이감은 중국의 라이징 스타로, 특유의 반항적인 매력으로 여심을 흔들고 있다. <소년시절의 너>의 흥행 바통을 이을 또 한편의 웰메이드 중국 영화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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