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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韓고속철도 작은 자부심 [세상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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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2004년 첫발을 디뎠으니 17년째다. 연 인원 8억2000만명을 실어 날랐다. 거리로는 5억㎞쯤이다. 지구 둘레를 4만㎞로 잡으면 1만2500바퀴를 돈 셈이다. 이용객의 모든 이동거리를 합칠 경우 2119억㎞인데 지구에서 태양을 1413번 왕복한 것이다.

417㎞인 서울~부산 2시간15분, 391㎞인 용산~여수 2시간40분이다. 전국 반나절 생활권을 이뤄냈다. 60개 역에 정차하니 어디서나 인근 역을 찾는 게 어렵지 않다. 코로나19로 주춤해졌어도 서울역은 하루 평균 4만5700여 명이 이용한다. 부산과 대전, 용산 등에서도 각각 하루 1만6000여 명이 타고 내린다. 이용객 10명 중 8명이 모바일 앱으로 티켓을 산다. 네이버와 카카오에서도 승차권 구입을 개방해 더 편해졌다. KTX로 이름 지어진 고속철도 얘기다.

고속철도란 전용 노선에서 시속 250㎞ 이상 달리는 철도를 말한다. 재래식 철로에서는 시속 200㎞ 이상도 포함시킨다. 세계철도연맹(UIC)에서 마련한 기준이다. 세계 최초는 일본 신칸센이었다. 1964년 시속 210㎞ 열차를 상용화했다. 프랑스가 뒤를 이었다. 1981년 TGV라는 이름으로 시속 260㎞였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벨기에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이 차례로 뒤따랐다. 우리가 이 대열에 올라탄 건 2004년이었다. 시속 250㎞ 이상 기준으로는 세계 8위다. 대한민국 다음으로 대만 중국 터키 등 아시아 국가들이 따라왔다. 현재 고속철도를 운영하는 나라는 16개밖에 안 된다.

고속으로 달리는 만큼 최고 속도를 경신하려는 노력이 치열하다. 프랑스는 2007년 시속 575㎞ 시험 운행에 성공했다. 우리도 2013년 시속 421㎞ 시험 운행 기록을 세웠다. 전용 노선에서 영업속도 시속 300㎞ 이상을 유지하는 국가로만 따지면 한국은 세계 5위다. 중국은 2008년 개통한 후발 주자이지만 앞서간다. 넓은 땅에 고속철도를 열심히 깐 덕분이다. 열차 보유와 편성 수에서 세계 52%를 차지한다. 영업속도도 시속 350㎞로 1위다. 이미 운영 중인 16개국 외에 미국 이란 등 13개국이 고속철도를 건설 중이다. 러시아 브라질 포르투갈 등 38개국은 도입을 계획하거나 검토 중이다. 고속철도 시장이 얼마나 커질지 가늠케 한다.

한국은 2004년 도입 때 프랑스의 도움을 받았다. 프랑스는 당시 고속철도 시장을 주도했다. 이젠 종주국 프랑스가 우리에게 러브콜을 보낸다. 한국형 기술을 발전시킨 덕분이다. 차량 부품도 국산으로 대체했다. KTX산천의 부품 국산화율은 91%에 달한다. 장비도 해외 수입에서 국내 개발로 돌렸다. 레일 결함을 찾아내는 초음파 탐상기가 대표적이다. 세계 최초였지만 내수에 안위하며 국제 표준화엔 소극적인 일본과는 다른 행보다.

고속철도 개통 후 40년을 넘긴 프랑스가 철로 전면 교체 시기를 맞았다. 주요 노선인 파리~리옹 고속 선로 개량 작업을 놓고 우리에게 손을 벌렸다. 고속 선로 개량에 양국이 공동 연구를 하고 제3국에 함께 진출하기로 합의한 협약을 지난해 9월 체결했다. 2017년 23개 기술 공유를 위한 교류회를 가졌다. 2019년 2차 교류회로 이어졌다. 오는 10월 3차 교류회를 예정하고 있다. 노후 선로 개량 작업 때 열차를 운행하면서 동시에 궤도 교체 작업을 진행하는 우리의 노하우를 프랑스가 갖다 쓰겠다는 것이다. 코레일이 2013년부터 산학연 협업 프로젝트로 개발해 현장에서 쓰고 있는 기술이다. 급속 시공이 가능하도록 사전 제작한 분리형 궤도를 콘크리트 패널에 까는 방식이다. 자갈 궤도를 쓰는 프랑스에는 획기적인 변화다. 유럽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구조라 우리 기술을 적용할 시장이 그만큼 넓다. 프랑스를 교두보로 삼으면 된다. 유럽 고속철도 시장에서 K레일이 K팝처럼 사랑받는 뿌듯한 모습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윤경호 MBN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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