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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기고] 집권하려거든 국정원 사용법부터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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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정보원을 그런 관점에서 접근했으리라. 국정원장의 대통령 독대 보고를 없앴다. 권력기관으로 쓰지 않았다. 국정원의 과거사를 규명하고 혁신을 요구했다. 그리고 담백하게 사용했다.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도우라고 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제주 신항 필요성 보고에 공감했다. 내곡동을 세 번 찾았다.

경향신문

조경환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2005년 유럽연합(EU) 통합을 거론하며 세계사적 방향성 제시도 국정원 몫이라고 했다. 2007년 9월에는 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 해결을 격려하기 위해 들렀다. 2005년 이맘때 민생 현장을 보고한 실무책임자에게 친서를 내렸다. “(상략) 앞으로도 국정원이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문제들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주기 바랍니다. 그래서 정부의 정책 개선을 뒷받침하고, 국민에게 큰 신뢰를 받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합니다”라고 썼다. 이것이 국정원에 남긴 유지가 될 줄 몰랐다.

국정원이 역동성을 잃어버린 지 얼추 10년이다. 나빠진 외부의 시선만큼이나 안으로 움츠렸다. 적폐 청산은 혹독했다. 대공수사권과 국내 일반정보활동은 폐지됐다. 밖에서 안을 얼마나 알겠는가만은 국정원이 움직인다는 소문은 요원하다. 점심시간에 구내식당과 산책로가 붐빈다는 탄성은 들린다. 국가자산이 공회전을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보의 세계에는 우방도 적도 없다. 드러난 북한의 위협보다 드러나지 않는 중국의 위협이 더 깊다. 방첩과 산업보안 위기는 국민 생계와 생활, 기업의 생존을 소리 없이 위협한다. 가짜뉴스 정보전은 국론 분열을 노린다. 미국은 한반도에 독자적 대북 ‘휴민트(인간정보)’ 자산을 일군다. 일본은 서방의 정보동맹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에 가담하려 애를 쓴다.

그뿐인가? 우리는 원치 않은 상황에서,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급격하게 새로운 위협과 맞닥뜨렸다. 코로나19는 비군사적 위협으로도 전쟁 이상의 공포와 불행을 겪을 수 있음을 명징하게 보여줬다. 포스트 코로나의 국제정치적·사회경제적 도미노는 이제 시작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 테러, 국가 핵심 인프라 공격, 사이버공격과 같은 비전통적 안보 위협은 날로 커지고 다양화한다. 지킬 대상은 국가에서 개인으로 확장한다. 신안보 위협은 잠복해 있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예측하기 어렵다. 위협은 연결되어 있고 초국가적이다. 국가정보기관이 아니고서는 효과적 대응이 어렵다.

국정원은 대통령의 지휘와 감독을 받는다. 오직 대통령과 국가안전보장회의에만 책임을 진다. 그런데 국정원의 진면목을 잘 모른 채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아왔다. 선거 국면에 이용까지 했다. 국정원 사용에 시행착오를 반복한다면 그로 인한 국민 피해는 누가 보상하나. 집권하려거든 국가정보공동체를 공부하고 사용법을 내놓아야 한다. 6월10일은 국정원의 환갑날이다. 어떻게 부려먹을지로 답해 달라.

조경환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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