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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미얀마 편지⑩] 소수민족과 연합에 진정한 사과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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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군 취급하다 군부 대응 필요로

소수민족 무장단체에 연합 제안

학살·탄압 상처 탓 합류 쉽잖아

“탄압한 과거 반성을” 목소리 커져


한겨레

미얀마 양곤에서 19일(현지시각) 군부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민불복종 시위에 참가한 한 시민이 눈과 입에 검은 테이프를 붙인 채 저항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양곤/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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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에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지 19일로 107일이 지났습니다. 양곤에는 섭씨 38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 우기를 알리는 여우비가 내리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군부 반대를 외치며 저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쿠데타 이후 미얀마는 순식간에 10년 전 군부시절 ‘부익부 빈익빈’ 상태로 돌아갈 위기에 처했습니다. 망가지는 건 한 순간입니다. 미얀마는 한국보다 6.5배 넓지만, 이 넓은 나라에 양곤 같은 대도시는 수도 네피도와 제2 도시 만달레이 정도입니다. 양곤을 둘러본 외국인들은 이곳이 세계 최빈국이라는 것을 믿지 않지만 다른 지역을 가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군부 독재로 인한 극심한 부패와 경제 양극화는 미얀마가 세계 최빈국이 된 주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미얀마 군부는 1990년대 미얀마경제지주유한회사(MEHL)와 미얀마 경제협력(MEC)을 세워 사실상 미얀마 최대 재벌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민주정부 6년 동안 이뤄졌던 경제 성장은 멈췄고 거리의 화려한 꽃들도 이제 잿빛으로 다가옵니다. 물가가 급등해, 기름값이 한 달 전보다 두 배 가까이 올랐습니다. 미얀마 현지화폐 ‘짯’의 가치가 떨어져 환율이 급등했습니다. 서민들의 실업률이 증가해 생계가 위협에 처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우리 돈 15만원을 찾기 위해 은행 앞에 수 백 미터 인파가 줄을 섭니다. 지친 시민들은 하루 종일 주저앉아 자리를 지킵니다. 양곤의 도로가엔 차들이 넘쳐나고 고급 마트에는 장을 보는 사람들이 즐비합니다.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양극화 현상이 본격화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가 장기화돼 시위 동력이 줄어들까 걱정됩니다. 시민불복종운동(CDM)에 참여했던 수천 명의 공무원들이 해고돼 가족들과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최근 만난 한 미얀마 공무원은 “두 달 동안 30만원의 월급을 못 받았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출근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 말을 하면서 북 받쳐 오르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닦아냈습니다. 미얀마 시민들은 대략 우리 돈 20만원으로 한달을 사는데, 배고픔과 협박의 공포를 못 이겨 시위 현장에서 일자리로 복귀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은행 외에 제2 금융기관들도 문을 닫아 대출도 안 되는 상황입니다. 빈곤이 미얀마 민주화 시위에 또 하나의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쿠데타 뒤 민주진영이 꾸린 임시정부인 ‘연방의회대표자회의’(CRPH)가 지난 3월말 소수민족 무장단체와 연방군 창설을 논의한다고 했을 때, 시민들은 조만간 군부를 몰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연방군이 창설됐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미얀마의 아픈 과거사 때문으로 보입니다.

미얀마의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은 지난 70여년 동안 반군으로 내몰렸습니다. 군부 시절은 물론 아웅산 수치가 권력을 잡은 문민정부 시기에도 이들은 ‘반군’이었습니다. 이들을 ‘반군’이 아닌 ‘무장단체’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군부 쿠데타로 이들의 무력이 필요해졌기 때문입니다.

방글라데시 국경과 접한 미얀마 서북 지역 라카인 주에서 벌어진 ‘로힝야족 학살 사건’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로힝야족은 수세기 전부터 라카인 지역에 정착했지만,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서 무슬림인 로힝야족은 이질적이고 불편한 존재로 받아들여집니다. 지난 2017년 미얀마 군이 로힝야 족 수천여 명을 학살했고, 70만~80만명의 로힝야 족이 거주지를 떠나 방글라데시 난민으로 전락했습니다. 문민정부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로힝야족을 싫어하는 국민정서 때문에 최소한의 인권 조치도 무시됐습니다.

소수민족으로 전락한 아라칸족도 군부 정권과 문민정부 시절 반군으로 취급 받았습니다. 지난 3월 연방의회대표자회의가 아라칸군(Aarakan Aarmy)에 연방군 창설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한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카친족이 중심이 된 무장단체(KIA, KIO)와 카렌족 무장단체(KNU) 등도 문민정부 시절 반군으로 규정받은 상처가 있어, 연합전선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최근 미얀마 시민들 사이에서 로힝야족 탄압을 비롯해 소수민족을 탄압했던 과거를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반성과 함께 보상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소수민족 무장단체와 손잡기 위해서는 진정한 반성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미얀마 시민들은 새로 꾸려진 국민통합정부(NUG)가 1988년, 2007년 과거 민주화 시위와 이번 시위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국가 유공자급으로 대우하겠다고 밝혀 국민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번 싸움은 생각보다 오래 갈 것 같습니다. 시민들의 희망도 오래 갈 수 있게 고민이 필요할 때입니다.

양곤/천기홍 부산외국어대 미얀마어과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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