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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5·18 민주화 운동 진상 규명

진상규명위 “5·18 계엄군, 기관총·저격수 배치해 시민에 조준 사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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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송선태(가운데) 위원장과 안종철 부위원장, 이종협 상임위원이 1년간의 조사 성과를 설명하고 있다.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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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기관총과 조준경을 사용하고 저격수를 배치해 시민들을 향해 조준 사격했다는 당시 계엄군 장병들의 진술이 나왔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는 12일 서울 중구 위원회 대강당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1980년 당시 광주에 투입된 장병 200여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의미 있는 진술을 다수 확보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동안 시민군 등 피해자를 중심으로 계엄군의 기관총 및 조준 사격 의혹이 제기됐으나, 계엄군 등 가해자 쪽 진술을 통해 확인된 것은 처음이라고 조사위는 밝혔다.

조사위는 “3공수여단이 1980년 5월 20일 오후 10시 이후 광주역, 22일 이후 광주교도소의 감시탑과 건물 옥상에 각각 M60 기관총을 설치하고, M1 소총에 조준경을 부착해 시민들을 살상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11공수여단도 같은 달 21일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직후 금남로 주요 건물 옥상에 저격수를 배치해 시위대를 향해 조준 사격했음을 인정한 진술도 확보했다고 조사위는 덧붙였다.

이 같은 조준 사격 증언은 그동안 “무장한 시위대의 과격 행위에 자위권 차원에서 발포했을 뿐 발포명령을 한 적 없다”는 당시 신군부 핵심 관계자들의 주장과 배치된다.

특히 M60 기관총과 M1 소총을 사용한 사격은 그동안 일부 사망자의 사인이 카빈 총격으로 분류된 의혹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으로 조사위는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일부 사망자들의 사망 원인이 카빈 총상으로 분류된 데 대해 계엄군 측은 “당시 군은 M16 소총을 사용했기 때문에, 카빈 총상 사망자는 무장 시민군의 총격에 의한 사망”이라고 주장해왔다.

조사위 관계자는 “당시 M60이나 M1 총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은 채, M16 총상이 아니면 모두 카빈 총상으로 분류했다”며 “M60과 M1으로 사격했다는 진술이 나온 만큼, 이 부분에 대한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사위는 “M60과 M1 소총 탄환은 카빈 탄환과 구경이 같다”며 “탄도학 등의 관련 분야 전문가들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의 전문기관에 관련 진술 내용을 의뢰해 추가 정밀 분석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사위는 또 북한 특수군 침투설과 관련 ‘자신이 북한 특수군으로 직접 광주에 침투했다’고 최초로 말한 북한이탈주민 김명국(가명)씨를 조사, “내 말이 거짓이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조사위는 “5·18 민주화운동 관련 구속·송치된 616명 중 북한과 연계됐다는 공소사실이나 판결내용은 단 1명도 없다는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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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식 조사2과장이 광주교도소 관련 조사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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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위는 또 “광주교도소 양쪽 광주~순천 간 고속도로와 광주~담양 간 국도를 오가는 차량과 민간인에 대해 최소 13차례 차량 피격 사건이 있었음을 증언과 문헌을 통해 확인했으며, 교도소 옆 고속도로를 지나던 신혼부부를 태운 차량을 저격·사살했다는 복수의 장교·사병 증언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어 “주남마을과 지원동 일대에서도 그동안 알려진 마이크로버스와 구급차 피격 사건 외에 또 다른 승용차와 구급차 등 최소 5대 차량이 피격됐다는 증언을 확보했다”며 “증언들을 토대로 피해자를 특정하는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조사위는 1980년 5월21일 이후 광주봉쇄작전 중 송암동 일원에서 벌어진 계엄군의 오인사격과 민간인 학살의 실상도 확인 중이라고 했다. 특히, 만 4세 어린이가 총격에 의한 좌후경부맹관 총상을 입고 사망한 후 암매장한 사건은 가해자를 특정하고, 피해자 신원을 확인하는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사위는 이밖에 광주 봉쇄작전 중 사망한 이들의 시신 가운데 광주교도소 일원 41구, 주남마을 일원 6구, 송암동 일원 8구 등 최소 55구의 시신 행방을 추적 중이라고 밝혔다.

조사위는 “현장에서 암(가)매장을 지시·실행·목격했다는 3공수여단 장병 51명의 증언과 주남마을 11공수여단 4개 팀이 광주에 다시 내려와 사체 수습에 참여했다는 증언을 토대로, 사후 수습을 담당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사체처리반(가칭)’ 운용 의혹에 관한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조사 착수 1년을 맞아 열린 이날 간담회에서는 기관총·조준 사격을 포함해 광주 봉쇄작전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학살, 시신의 실종, 북한 특수군 침투설 등 7개 분야의 중간 조사 결과가 소개됐다.

조사위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최초 발포와 집단 발포 책임자 및 경위 조사를 포함한 12개의 사건을 직권조사 중이며, 올 하반기에는 국방부 및 군 기관과 국가정보원 등에 의한 5·18민주화운동 은폐·왜곡·조작사건 등 4개 과제에 관한 직권조사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사위는 “1980년 당시 광주에 투입된 2만353명의 계엄군 가운데 200여 명의 증언을 확보했으며, 향후 당시 계엄군의 10%에 해당하는 2000명 이상의 증언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송선태 위원장은 “저격수로 배치돼 시위대를 조준 사격한 병사가 피해자 유가족을 만나 진실을 고백하고 사죄하겠다는 뜻을 전해오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가해자와 피해자, 사회공동체가 반목과 갈등, 폄훼와 왜곡을 극복하고 대화합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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