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수도권 13개 대학 학생들이 포함된 수백 명 규모의 동아리에서 간부로 활동하며 집단으로 마약을 투약 및 유통한 동아리 회장 염모(31)씨가 도리어 마약 수사가 검찰의 권한 밖이라고 지적을 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 검찰이 염씨의 주장을 반박하는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26일 파악됐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은 염씨 등 마약 동아리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에 지난 19일 염씨 혐의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정당했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앞서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대마) 등의 혐의를 받는 염씨는 지난 4일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4부(재판장 장성훈) 심리로 열린 2차 공판에서 “마약류 취급·매매 혐의를 인정한다. 범죄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면서도 “공소제기 절차가 법률 규정을 위반해 공소 기각을 해야 한다는 변호인 의견서를 제시한다. (마약 등) 일정 범죄의 경우에는 검찰이 수사를 개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염씨 주장은 마약류관리법 위반 등 공소사실 전반에 관해 검찰 수사권이 없어 공소를 기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검찰청법 제4조에는 검사가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로 ‘사법경찰관이 송치한 범죄와 직접 관련성이 있는 범죄’가 규정돼 있지만, 이 사건의 경우 경찰이 송치한 범죄와 ‘직접 관련성’이 없다는 것이 요지였다.
그러나 검찰은 의견서를 통해 ‘본 사건은 경찰이 송치한 마약 유통사건의 재판을 진행하던 검사가 피고인의 여죄 정황을 포착해 수사를 개시한 것으로 송치 범죄와 직접 관련성이 있다’는 취지로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당시 재판을 진행하던 검사는 재판을 준비하며 수상한 계좌거래 내역을 포착한 뒤 직접 수사에 나서 대학생 연합동아리를 이용해 마약을 유통하고 투약하는 조직의 범행을 낱낱이 규명해내는 데 성공했다. 해당 검사의 집념이 아니었다면 염씨 재판은 단순 투약 사건으로 끝났을 가능성도 컸다.
법조계에선 이번 사태를 계기로 마약사범들이 검찰의 마약 수사 권한의 허점을 노리며 처벌을 피해나가려는 일이 빈번해질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새어나왔다. 실제로 마약류 단순 소지나 투약의 경우, 이번 사건처럼 송치된 건과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일반적으로는 검찰 수사권이 여전히 제한돼 있는 상태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번 대학생 연합동아리 마약유통 사건은 사회 각계각층에 퍼진 마약 범죄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대표적 사건으로 엄정 처벌을 통해 재발을 방지해야 하는 사건”이라며 “피고인은 마약 유통이나 투약 등 사실관계는 시인하면서도 검찰 수사권 관련 현행 법령의 미비점을 교묘히 이용해 처벌을 면해보려 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마약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나기 위해선 궁극적으로 검찰 수사권 개정이 다시 필요하다는 문제의식도 나온다. 한 법조계 인사는 “앞으로 여러 마약 사건에서 염씨처럼 검찰 수사의 적법성을 따져가며 처벌을 피하려는 시도가 많아질 것 같다”며 “마약 범죄 대응 역량을 키우려면 밀수, 유통뿐 아니라 단순 소지나 투약 등 모든 유형의 범죄에 대해 검찰 수사권이 회복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마약을 꼭 경찰, 검찰 중 한쪽에서만 해야 할 필요가 있겠나”라고도 했다.
한편 염씨 등에 대한 3차 공판은 오는 27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다.
[박정훈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